• [Country Report]포퓰리즘 원조 페론주의

    입력 : 2013.04.08 15:07:16

  • 후안페론과 에바페론
    후안페론과 에바페론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것은 ‘페론주의’ 영향이 크다.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운동으로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의 정치 활동이 그 출발점이다. 반론도 많지만 페론주의를 현대 포퓰리즘의 원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46년 노동자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페론은 친노동 정책을 펼쳐 인기를 누렸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산업화 물결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도시에 직장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이었다. 페론 정부는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저소득계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등 ‘퍼주기식’ 물량공세를 펼쳤다. 페론 집권 후 연간 20% 이상의 임금인상과 복지 확대를 위한 지나친 재정지출 확대가 연이어져 페론 지지층으로 노동자들은 확고하게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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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론은 결국 가톨릭교회와의 갈등으로 1955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지만 1973년 10월 약 20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접고 귀국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재집권한 페론은 1973년 발생한 석유 파동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1974년 석유 수입액은 6000만달러에서 6억달러로 상승했다. 석유 파동으로 발생한 경제 위기는 좌우익 간 극심한 갈등과 정치혼란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페론은 1974년 7월 사망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무분별한 정부의 확대가 멀쩡한 나라를 어떻게 파산시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페론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군부와 노동자의 대결을 부추김으로써 사회적 위화감까지 조성했다. 이것은 사회의 균형감각을 잃게 했고, 각종 정책들이 극단을 왔다갔다 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 경제는 성장기반을 잃지 않을 수 없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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