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EAN]中-동남아 고속철 내년 첫 삽…中, 고속철도로 아세안을 묶는다

    입력 : 2012.12.07 16: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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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범아시아고속철 건설이 내년 초 착공에 들어간다. 중국과 라오스 당국은 11월 초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기간 중국 수출입은행의 대출을 조건으로 420km 구간 고속철 착공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중국 서부와 동남아를 잇는 거대 경제권 개발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중국과 라오스가 착공하는 고속철 구간은 중국 윈난성 징홍에서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까지 420km다. 공사 규모는 70억달러(약 7조6300억원)다. 중국 건설사들에 공사를 맡기는 조건으로 중국 수출입은행에서 공사대금 전액을 대출한다.

    중국 윈난성 수도 쿤밍에서 출발하는 고속철은 국경도시 징홍을 거쳐 라오스의 루앙남타-우돔사이-루앙프라방-방비엥-폰홍-비엔티엔 역을 거치게 된다. 중국과 라오스는 당초 이 사업을 양국 수교 50주년인 2011년 착공해 공산정권 수립 40주년인 2015년 완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사업성과 재원조달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다 결국 중국이 차관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예정대로 2018년 공사가 끝나면 고속철이 중국과 라오스를 오가며 최대 시속 160km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게 된다. 라오스로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접하지 않고 ‘내륙에 갇힌(Land-Locked)’ 나라에서 ‘내륙으로 연결된(Land-Linked)’ 나라로 탈바꿈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고속철 사업이 내륙에 갇힌 소국 라오스를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줄지,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만 앞당길지는 미지수다. 라오스 의회에서도 10여명의 의원들은 고속철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70억달러에 달하는 차관이 라오스 재정을 고려할 때 너무 과도한 규모”라며 “결국 이 차관으로 인해 중국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염려한다.

    착공이 예정된 국경도시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중국 국경에 접한 북부 소도시 보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대던 곳이었다. 중국인 사업가가 대규모 카지노단지를 건설한 뒤 주말마다 중국 부자들이 몰려왔다. 중국인을 상대로 한 식당과 상가가 잇달아 지어지고 지역경제에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는 지난해 말 보텐 카지노 영업을 금지했다. 돈세탁과 강도, 인신매매 등 범죄가 급증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보텐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는 “중국 손님들이 오지 않아 택시 손님이 크게 줄었다”면서 “정부가 중국인들을 환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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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중국은 라오스를 시작으로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까지 고속철 노선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범아시아 고속철은 이미 100년 전에 처음 밑그림이 그려진 사업이다. 당시 아시아 각국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 영국 등 열강이 식민지 자원수송을 위해 중국-싱가포르, 베트남-중국 노선 등을 구상한 것.

    실제로 20세기 초반 프랑스 자본에 의해 베트남 하이퐁 항구에서 중국 쿤밍을 잇는 철도가 놓여지고, 나중에 베트남 남부 호치민까지 노선이 확장됐다. 여기에 더해 영국은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잇는 해안철도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후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인도차이나 공산혁명 등을 거치며 해당 철도노선들은 폐기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를 계기로 범아시아 고속철 사업이 다시 추진되기 시작했다. 기존 철도노선을 연결할 수 있는 쿤밍-싱가포르 먼저 고속철을 건설하자는 것.

    특히 중국이 의욕을 보이고 있다. 동부연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진 서부지역 개발을 위해선 서쪽 국경을 접한 동남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 필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여러 차례 수정안을 통해 쿤밍-싱가포르 노선 외에 왼쪽으로 미얀마를 거치는 노선과 오른쪽으로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치는 노선을 추가했다.

    이번에 중국과 라오스가 건설에 합의한 노선은 쿤밍-싱가포르 노선의 출발점이다. 태국에서 출발해 말레이사 싱가포르를 연결해서 쓸 수 있는 다른 노선과 달리 중국-라오스 구간은 새로 철로를 놓아야 하기 때문에 5년 가까운 공사기간이 소요된다.

    중국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범아시아 고속철 전체 구간 완공은 2020년 이후로 예상된다. 천문학적인 공사대금 조달이 최대 과제다. 범아시아 고속철 노선 가운데 중국-미얀마, 캄보디아-베트남 노선도 기존 철로가 없어 처음부터 새로 건설해야 한다. 동남아 국가들 대부분 고속철 사업을 감당할 재정이 부족해 결국 중국이 ‘돈줄’을 대야 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은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면서도 중국으로부터 정치정 입김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라오스의 ‘천지개벽’ 중국자본이 주도
    아셈회의
    아셈회의
    ‘동남아의 최빈국 라오스가 비상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국 라오스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5~6일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는 ‘뉴 라오스’를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행사였다. 세계 50여개국 정상과 수행원, 기자단 등 수천명이 한꺼번에 수도 비엔티엔으로 몰려들었다. 지난 1975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뒤 이 나라가 처음 치른 대규모 국제행사였다.

    ASEM에 앞서 지난 10월 말 기자가 찾은 비엔티엔 시내는 2년 전과 비교해 몰라볼 만큼 현대식 도시로 탈바꿈했다. 공항은 최신 시설로 확장공사를 마쳤고,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는 반듯하게 새로 닦였다. 라오스의 젖줄 메콩강변은 한강둔치처럼 깔끔하게 제방이 설치됐고, 메콩강변으로는 고층 호텔과 시민들을 위한 휴게시설이 들어섰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WTO는 지난 10월 말 총회를 열어 라오스를 새 회원국으로 승인했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 가운데 유일한 WTO 미가입 멤버였던 라오스가 비로소 세계 경제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이름을 내밀게 된 것이다. 라오스의 가입은 아세안 회원국 간 경제력 격차를 좁혀 2015년 목표로 하는 아세안경제공동체(ASEAN Economic Community) 출범 전망을 밝게 한다. 지난 10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7%에 달하는 라오스는 아세안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광산개발과 수력발전에 힘입어 라오스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8%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중국자본이 라오스를 석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셈 정상회의도 중국 지원이 없었다면 개최가 어려웠을 정도다. 국제공항 확장공사와 정상숙소 건립, 컨벤션센터 건설은 모두 중국이 무상원조 하거나 차관을 제공했다. 인구 70만 수도 비엔티안 현대화도 중국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개발회사 CAMCE는 현재 메콩강변 일대를 종합 개발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42만㎡ 면적에 호텔과 업무용 빌딩, 주상복합, 쇼핑몰 등을 짓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이미 호텔은 완공단계다.

    라오스 기획투자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라오스에 대한 외국인 투자 가운데 중국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이 2~3년 안에 라오스의 ‘정치적 형님’ 베트남을 제치고 라오스 최대 투자국이 될 전망이다.

    [박만원 매일경제 국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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