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씨티그룹 CEO…판디트 축출사건의 재구성

    입력 : 2012.12.07 1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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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권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지난 10월 15일 저녁. 비크람 판디트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오전에 시장기대치를 훌쩍 넘어선 3분기 실적을 내놓은 뒤 곳곳에서 축하 인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위기에 몰린 씨티그룹을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으로 이끌어왔는데 드디어 터널 끝에 빛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축하 이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한 뒤 판디트 CEO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씨티그룹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오닐 회장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분기 실적에 대한 시장반응을 알려주기 위한 의례적인 방문이었다. 오닐 회장으로부터 덕담을 들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방에 들어선 뒤 얼핏 오닐 회장의 얼굴을 본 판디트 회장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 판디트 회장이 자리에 앉자 오닐 회장은 다짜고짜 “이사회가 당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내뱉었다. 지난 5년간 씨티그룹을 이끌어온 CEO에 대한 해고 통보치고는 예의에 벗어날 정도로 간단하고 차가웠다. 청천벽력과 같은 최후통첩을 받고 판디트 CEO는 어안이 벙벙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45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받았지만 지난 5년간 이를 다 갚았고 자본 확충도 한 데다 3분기 실적 호전을 디딤돌로 본격적인 씨티그룹 확장을 준비하고 있던 그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갑작스런 해고 통보였기 때문이다.

    오닐 회장은 매몰차게 그에게 세 가지 보도자료를 내밀었다. 첫번째 보도자료는 ‘판디트 CEO가 곧바로 사임한다’, 둘째는 ‘판디트 CEO가 올해 말 사임한다’, 셋째는 ‘판디트 CEO가 해고됐다’였다. 자존심이 무너진 판디트 CEO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곧바로 두 번째 보도자료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6일 씨티그룹은 일사천리로 판디트 CEO 사임을 발표했다. 판디트 주변 세력도 동시에 척결됐다. 판디트 CEO의 오른팔인 존 헤이븐스 최고운영책임자(COO)도 처음에는 토사구팽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해 반발했지만 결국 판디트와 함께 물러났다.

    갑작스런 판디트 CEO 사임에 충격을 받은 월가는 판디트 축출 배경에 대해 몇 가지 분석을 내놨다.

    그중 판디트 회장 축출 배후에 마이클 오닐 회장이 있다는 설이 유력하게 수면 위로 부상했다.

    사실 씨티그룹 CEO직은 당초 오닐 회장이 원했던 자리였다. 지난 2007년 12월 씨티 CEO직을 놓고 당시 씨티그룹 이사회 의장이었던 루버트 루빈은 오닐 대신 판디트를 선택했다. 판디트에게 CEO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오닐 입장에서 판디트 CEO가 예쁘게 보일 리 없었다. 판디트 CEO에게 구원(舊怨)이 있던 오닐 회장은 이후 와신상담 끝에 지난 4월 판디트 CEO 후견인 역할을 하던 리처드 파슨스 씨티그룹 회장이 물러난 뒤 씨티그룹 회장과 이사회 의장자리를 넘겨받았다. 당연히 월가 내부에서는 케미컬이 맞지 않는 오닐 회장과 판디트 CEO간 알력 다툼을 염려했다.

    실제로 오닐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판디트 CEO 심기를 수시로 건드렸다. 씨티그룹 트레이딩 룸을 방문해 트레이더들을 만나고 주요 부서원들과 회사경영에 대해 논의하는 등 CEO 역할을 노골적으로 침범했다. 파슨스 전 회장이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동을 오닐 회장이 스스럼없이 하면서 판디트 CEO를 의도적으로 깎아 내렸다.

    당연히 판디트 CEO는 이 같은 오닐 회장의 경영 월권행위가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른 체 했다.

    하지만 오닐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꼼꼼하고 치밀하게 판디트 축출을 위한 쿠데타 준비에 들어간 것.

    이를 위해 이사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

    이사회를 설득할 때 오닐 회장이 가장 많이 활용한 것은 판디트 CEO가 필요 이상으로 규제당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월가에서 씨티그룹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3월 13일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19개 대형은행을 상대로 스트레스 테스트(자산 건전성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총 4개 은행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씨티그룹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나오기 전 씨티그룹은 자신만만하게 내부에 쌓아놓은 유보금을 활용해 주주 배당금을 늘리고 자사주도 사들여 주가를 견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수표가 됐다. 미국 연준이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불합격한 씨티그룹에게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을 금지하는 한편 자본 확충에 나서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오닐 회장은 “씨티그룹이 충분히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할 만큼 자산 건전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판디트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미국 연준이 씨티그룹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판디트 회장의 외골수적인 리더십과 성격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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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어 지난 4월 씨티 주주총회에서 1490만달러에 달하는 판디트 CEO 보수지급 안건에 대해 과반수를 넘는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주주반란까지 나타나면서 씨티그룹은 또 한 번 대외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됐다. 이때부터 이사들이 판다트 CEO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반란 세력의 힘은 더욱 커져갔고 결국 판디트 CEO 축출로 연결됐다. 이처럼 오닐 회장의 개인감정이 상당부분 섞여있지만 판디트 CEO 축출이 월가 금융기관에 만연한 제왕적 CEO시대가 마무리되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월가 금융기관 권력의 추가 CEO에서 이사회로 넘어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지난 5년간 판디트 CEO가 씨티그룹을 이끌면서 공과가 있었지만 판디트 재임 기간 중 씨티그룹 주가가 90% 곤두박질치고 신용등급은 떨어졌다.

    지난 9월 판디트 CEO가 인수했던 스마스바니증권을 모건스탠리에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29억달러의 대규모 영업권 상각손실을 낸 점 등 이사회가 판디트 CEO의 책임을 물을 만한 사안이 적지 않았다는 게 판디트 CEO책임론을 거론하는 월가 일부의 설명이다.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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