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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석의 클릭 차이나] ⑧ 언론통제 후유증…골 깊은 불신풍조 뼈아픈 대가 치러
입력 : 2012.10.05 17: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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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톈진 부근의 한 백화점에서 화재가 났을 때 웨이보에는 정부가 사상자 규모를 축소해 발표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또 지난 7월 폭우로 베이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사건시에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상자 발표 수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가 인터넷과 신문 등 언론에도 실린 적이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국민들이 정부의 공식 발표를 제대로 신하지 않는 일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많은 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가장 간단한 것부터 꼽는다면 인터넷 실명제가 아직 실시되지 않은 상황을 이용해 일부 사람들이 정치적 혹은 상업적인 이유, 심지어 단순히 장난으로 국민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루머를 퍼뜨리는 경우이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쿠데타가 발생됐다는 루머는 국내 일부 사람들이 해외 한 반정부 매체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전파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 때문에 당사자가 사법 처리를 받았다.
중국도 모바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어떤 정보든지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는데 루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루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정부의 공식발표와 다른 정보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어 널리 전파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국 정부가 지금도 언론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통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개혁 전에 비해서는 크게 완화됐기 때문에 사회제도를 위협하지 않는 전제하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가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기자들이나 혹은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려는 목적에서 인터넷이나 신문 등 언론을 통해 정부에 확실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기사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도 드디어 국내 언론의 비판과 제약을 어느 정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들이 알권리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세 번째다. 중앙정부를 포함한 중국 각급 정부가 실제로 국민들의 불신을 야기할 행위를 한 경우 국민들이 정부의 공식 발표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국 이래 중국은 장기간 정부가 정치적인 원인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언론을 통제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대로 발표할 경우 국민들 가운데서 혼란이 일어나 불필요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 이유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대에서는 언론이 정부에 유리한 것만 보도하고 불리한 것은 감추는 이른바 ‘보희불보우(報喜不報憂)’ 현상이 극치에 달했다.
강력한 언론통제하에서 중국 국민들은 장기간 자신이 직접 본 사실 외에는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는 ‘정보결핍’ 사회에 살아 왔다. 1976년 7월 28일 중국 허베이성 탕산(唐山)시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일반 국민들은 수십 년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 최대 규모의 지진 피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75년 8월 8일 허난성 주마뎬(駐馬店) 지역에서 폭우로 큰 댐이 붕괴돼 30여개의 현을 물바다로 만들고 100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특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대다수 국민들은 그런 비극적인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는 다만 그 곳 주민들이 어떻게 정부의 지원 하에 수재를 극복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만 내보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후 정부의 한 조사 보고서에서 2만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수치마저 ‘내부 소식’으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재조사에 의하면 그 당시 실제 사망자가 정부 발표치의 10배 이상인 20여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개혁이후 정치적인 통제가 크게 완화되고 ‘극좌’ 시대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면서 이른바 역사적 진상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세계적인 정보화 혁명의 물결을 타고 중국에서도 정부가 소수 신문과 방송을 독점해 정보를 차단하던 시대가 영영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에는 개인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만 수백만 개 이상이고 무려 1000만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거느린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다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실시간 전달이 가능한 정보의 위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지금도 정부가 여전히 그 전처럼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회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의 발표내용이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공신력이 있어야 할 정부가 신뢰를 의심받게 되는 사회에서 기업이나 개인 간의 신뢰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중국의 ‘멜라민 분유 파동’ ‘쓰레기 식용유(地溝油) 사건’이 보여 준 것처럼 이윤 때문에 국민건강마저 해치는 일부 악덕기업들이 있는데 그들 때문에 수많은 정직한 기업들도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가짜 짝퉁 이미지를 벗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중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직면한 큰 과제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문제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한 청년이 버스에서 내리던 노인을 도와주려다 오히려 가해자로 오인 받아 고소당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 이후 자신에게 영향이나 피해가 올까봐 교통사고를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현상이 나타나 중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즉 현재 사람들 간에 서로 불신하는 풍조가 사회적인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시장경제 제도는 신용을 기반으로 해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제도 확립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사회적인 신뢰관계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 국민들은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 아파트 경비원들은 한국처럼 나이 든 아저씨들이 아니라 모두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고층 아파트를 보면 6층 이하의 대다수 창문에 모두 철창을 설치한 것을 볼 수 있다. 또 중국의 상당수 가정에서는 철 덧문을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도둑을 막아야 할 아파트 경비원들에 대해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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