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untry Report]일본 국가주의의 근본을 파헤친다

    입력 : 2012.08.06 10: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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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1.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2. 일본에는 태평양 전쟁 전사자들 위령비가 곳곳에 설립돼 있다. 사진은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에 있는 신사 입구에 설립된 가미카제 특공대 위령비
    2. 일본에는 태평양 전쟁 전사자들 위령비가 곳곳에 설립돼 있다. 사진은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에 있는 신사 입구에 설립된 가미카제 특공대 위령비
    일본 규슈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현.

    지난 7월 초 가고시마현에서 열린 지사 보궐선거에 일본 열도의 관심이 집중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정계에서 반(反) 원전파와 친(親) 원전파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원전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지자체 단위의 선거가 처음 열렸기 때문이다.

    반 원전 단체의 지원을 받은 무코하라 요시타가 후보는 지역 내 센다이 원전의 즉각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맞서 이토 유이치로 후보는 원전 유지론을 들고 나왔다. 이토 후보는 “원전을 중단할 경우 전력 사정이 악화돼 지역 기업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지역 경제는 더 악화될 것”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결과는 이토 후보가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표차로 압승을 거뒀다.

    일본은 아직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주민 수십만명이 아직도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내각부도 안전 점검을 이유로 전국 54기의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시켜 ‘원전 제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야당 정치인과 환경 단체는 물론이고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회장 같은 기업인들도 “원전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가고시마현 주민들의 선택은 놀랍게도 ‘원전 유지’였다.

    가고시마현 주민들이 원전을 선택한 이유는 원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사고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일본인들은 아직도 국가를 ‘우리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어렵더라도 국가는 부강한 나라,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을 희생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인들의 정서 속에는 ‘국가주의’ 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에도시대 말기까지 봉건주의가 지배했던 일본에 국가 관념이 각인된 것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유신 주도세력들이 내건 기치는 막부 타도와 왕정 복고였다. 강력한 중앙집권, 부국강병의 통치를 통해 일본의 근대화가 이뤄졌고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메이지유신 40년 만에 아시아 최강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미개한 섬나라에서 아시아 최강국까지 승승장구하는 일본의 역사.

    메이지 유신 이후 러일 전쟁까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일본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역사의 한 대목이다.

    NHK 방송이 일본 국민들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야심으로 제작했던 <구름위의 언덕(2009년)>이나 <료마전(2010년)>은 모두 당시를 배경으로 한 역사 대하드라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역사의 장면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세 명의 영웅이 등장하는 전국시대 말기다. 다만 전국 시대의 역사물을 ‘재미’로 받아들인다면 메이지시대는 ‘감동’으로 받아들이는 차이를 보인다. 메이지시대에 대한 국민적 향수는 일본의 현대 정치에도 반영되고 있다.

    바로 ‘오사카 유신회’의 등장이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이 정치단체는 민주-자민 양당체제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전면에 부상했다. 이 단체의 이름 가운데 ‘오사카’는 지역기반을, ‘유신회’는 메이지유신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사카 유신회는 관서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일명 평화헌법으로 지칭되는 헌법 제9조를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일본도 이제 수동적인 ‘자위’ 개념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강화하는 ‘국방’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핵심 논리다. 하시모토 시장의 높은 인기와 메이지 시대의 부국강성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으로 오사카 유신회는 일본 정계에서 양당 체제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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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계의 또 다른 국가주의 요람은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인 故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사재 70억엔을 투입해 설립한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이다. 이 학원은 제2의 메이지유신을 목표로 일본 정재계에서 확고한 국가관을 갖춘 엘리트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취지로 1979년 설립됐다. 마쓰시타 정경숙의 모델은 에도막부 말기의 사상가였던 요시다 쇼인이 세운 사설 학원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이다. 쇼카손주쿠는 일본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다카스기 신사구, 야마가타 아리모토, 기도 다카요시,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 메이지시대 일본 근대화를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배출해 낸 곳이다. 마쓰시타 정경숙도 노다 요시히코 현 일본 총리를 비롯해 마에하라 세이지 정조회장 등 28명에 달하는 중·참의원을 배출해 냈다. 이들은 아직 일본을 혁명적으로 개혁할 만큼 정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 정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의 국가주의는 언론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큰 특종 기사라도 국가 이익에 반한다면 기사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기자들에게 “특종 보다 국익이 더 앞서는 게 사실이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들을 들었다.

    하지만 일본 기자들의 답변은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틀렸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외국인들의 탈 일본 러시가 진행됐던 긴박한 상황에서도 방송과 신문 등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차분한 논조를 유지하며 원전 주변의 극한 상황을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 언론인 미국 CNN 방송이나 영국 BBC 방송은 일본에서 큰 혼란이 일어나는 상황을 시시각각 보도했지만 일본 TV방송을 보면 지나치게 평화롭고 한가한 상황들만 방송됐던 게 사실이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막부시대 쇼군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칼의 심판이 따랐던 일본 특유의 복종 문화가 현대사회에도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일본의 국가주의에도 최근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사회 활동의 주역에서 물러나고 헤이세이(平成) 세대가 사회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다. 헤이세이 세대란 쇼와 천왕이 사망하고 헤이세이 천왕이 즉위한 1989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헤이세이 세대는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번영을 경험하지 못했고 그 대신 잃어버린 20년으로 대변되는 우울한 침체기에 성장한 세대다. 따라서 국가주의 관념보다는 개인주의 관념이, 진취적인 기상 보다는 수동적인 방어 의식이 더 강한 특징을 보인다.

    지난 2009년 중의원 총선에서 보수우익을 대변해 왔던 자민당 시대가 55년 만에 막을 내리고 진보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룬 점도 일본 국민들의 기저에서 불고 있는 변화 바람을 상징하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미국과 맞먹던 아시아의 맹주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는 일본. 일본의 국력이 쇠하고 일본인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질수록 근대 일본의 가치관이었던 국가주의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개인주의가 빠른 속도로 메워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채수환 매일경제 경제부 차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3호(2012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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