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20] 대표성·정당성 위협받는 G20

    입력 : 2011.06.17 16: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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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20은 2008년 금융위기의 산물이다. G20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던 2008년 11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국제적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주요 20개 국가의 정상을 워싱턴에 초대함으로써 시작됐기 때문이다. 초기 G20은 이처럼 위기에 처한 세계경제를 구하기 위한 비상대책회의(crisis committee)와 다름이 없었다.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G20 정상들은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재정공조, 국제금융기구의 위기대응 능력 강화를 위한 재원 확충 및 개편, 금융시장의 불안전성을 줄이기 위한 금융규제감독의 강화 등 국제공조의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이를 토대로 G20은 2009년 4월 런던 정상회의에서 5조 달러 규모의 재정을 확대하고 IMF 재원을 7500억 달러 확충하는 등 전례 없는 비상대책을 발표했다.

    G20 서울 정상회의 .
    G20 서울 정상회의 .
    많은 전문가들은 런던 회의가 신흥개도국에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위기가 신흥시장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평가한다. 런던에서 국제공조의 성과를 과시한 G20 지도자들은 2009년 9월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G20을 국제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premier forum)으로 승격시키고 G20을 정례화하기로 결정했다. 1975년 출범한 후 10여 년이 지나서야 정례화된 G7 정상회의와 비교해 G20은 아주 빠른 속도로 제도화됐다. 2010년은 G20이 경상수지 불균형 등 국제금융시장의 구조적 불안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중국과 다른 신흥개도국들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축적했는데 이는 미국이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운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같은 경상수지 불균형은 미국의 자금유동성을 확대해 2008년 금융위기 전에 형성된 자산버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G20 지도자들은 피츠버그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협력틀’(G20 프레임워크) 구축에 합의하고 2010년 토론토와 서울 정상회의에서 구체적인 프레임워크 액션플랜을 논의했다. 그 결과 서울정상회의에서 시장원칙에 따른 환율정책, 경상수지 불균형 수준을 측정할 예시적 가이드라인(indicative guidelines) 제정 등 글로벌 불균형 완화를 위한 회원국 거시정책의 기본 원칙과 기준에 합의했다.

    2011년 프랑스 G20 정상회의는 서울정상회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프레임워크 실행 방안을 구체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1년 G20 의장국인 프랑스는 프레임워크 협상 등 과거 회의에서 넘어오는 지속과제 이외에도 국제금융시스템 개혁, 식량안보(food security) 등 새로운 현안에 대한 합의를 주도할 예정이다.

    G20의 역할과 의의
    2008년 9월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주요 인사들과 함께 금융위기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오바마(맨 오른쪽)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도 보인다.
    2008년 9월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주요 인사들과 함께 금융위기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오바마(맨 오른쪽)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도 보인다.
    G20은 세계경제 운영위원회로서 크게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새로운 규범을 제정하는 입법 기능과 IMF 등 국제기구에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집행을 감시하는 감독 기능이다. 별도의 국제기구가 국제경제의 각 분야에서(국제금융 분야의 IMF, 국제개발 분야의 세계은행, 국제무역 분야의 WTO 등) 활동함에도 G20이 전체 국제경제 전반의 국제공조의 방향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기존 국제기구체제로 국제사회가 당면한 주요 현안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전후 다자주의 경제 시스템을 설계할 때는 국제경제정책을 분야별로 분리해 독립적인 국제기구로 하여금 해당 정책을 조정하고 집행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당시의 국제경제는 승전국 지도자들이 분야 간의 정책을 직접 조정해야 할 만큼 통합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세계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분야 간 정책조정과 신속한 정치적 결정이 요구됐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에 따라 1975년부터 G7이라는 새로운 거버넌스 기구를 중심으로 국제공조를 추진했다. G7의 가장 큰 업적은 환율안정이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엔화를 2년 만에 100% 가까이 절상시킨 1985년 플라자 합의다. G7의 5개국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경상수지 적자국가인 미국의 달러화를 절하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에 합의한 것이다. G7은 신흥개도국 금융안정 문제도 지속적으로 논의했다. 1999년 재무장관회의로 출범한 G20도 G7 재무장관회의가 주요 신흥 경제국가들과 금융안정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새롭게 설립한 협의체다.

    2008년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당시 재무장관회의로 운영되던 G20을 정상회의로 격상시켜 G7을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경제 운영위원회를 만들었다. 세계경제의 권력이동으로 인해 더 이상 선진국들만으로 세계경제의 주요 현안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1990년 중반에 20%에 불과하던 신흥개도국의 세계 GDP 비중이 2008년에는 30.7%로 급증했다. 또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중국 등 신흥국의 협조가 없이는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G20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G20의 제약을 동시에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G20 지도자들이 스스로 인정하듯이 G20은 주요국 정치지도자들의 포럼이다. 포럼은 참여자들이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쟁점 이슈에 대한 합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대화의 장이다. 국제규범을 만드는 공식 국제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 G20은 포럼으로서 자체 사무국이나 집행 기구를 두지 않는다. G20 결정 사항을 관련 국제기구와 회원국 정부를 통해 집행한다.

    G20이 세계경제의 운영위원회로 기능하지만 그렇다고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유일한 거버넌스 기구는 아니다. G7, G8 등의 비공식 네트워크 그룹, 국제금융기구, 지역협의체, 양자 간 협력기구, 시민단체 등 여러 기구가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여한다. G20도 이들 기구의 역할을 존중하고 이들과 협력해야 한다. 특히 G20은 G7과의 관계 설정에 신중해야 한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일부 G7 회원국은 아직도 G7 환원을 지지한다. 이들 국가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대립 구도가 형성된 G20에서 의미 있는 국제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당분간 G7은 G20 내부의 선진국 모임으로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지진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G7 회원국들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G7은 아직도 국제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기구다. G20의 환율조정 논의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G20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리더십 G20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국가를 선출한다면 한국도 강력한 후보자일 것이다. 한국은 G20 초기부터 가장 열성적인 G20 지지국가로 활동해왔다. 사실 G20이 20개 국가로 구성돼 있지만 G20 성공에 강력한 의지를 보인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영국, 한국, 호주 그리고 G20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미국을 다른 기구보다 G20을 우선시하는 국가로 꼽을 수 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등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다른 G7 국가는 G7과 G20을 동등하게 취급하거나 G7을 선호한다. 2012년 정상회의의 개최를 계기로 프랑스가 G20을 우선시하는 진영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해에 G7 정상회의를 동시에 개최해서인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G7과 G20의 선택 문제에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G7을 공개적으로 선호하는 국가로는 일본과 이탈리아를 들 수 있는데 이들 두 국가는 G20에서보다는 G7에서 자신의 입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은 G7에서 아시아를 대표하지만 G20에서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호주, 인도와 더불어 아시아 6개 회원국 중 하나에 불과하다. BRICS의 경우 어떤 형태의 거버넌스 구조가 선택된다 해도 자신의 위치가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G20 유지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다. BRICS는 G7 체제하에서도 하일리게담 프로세스를 통해 G7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G20 무용론 설득력 부족
    2008년 G7 워싱턴 회담에 참석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
    2008년 G7 워싱턴 회담에 참석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
    지난 3년의 성과에도 G20의 전도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놓여 있다. G20의 대표성 문제는 초기부터 G20의 발전에 걸림돌이 돼 왔다. G20에 참여하지 않는 비회원국의 입장에선 G20은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자의적인 기구다. 그들은 누가 G20에 세계 모든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할 권한을 부여했는지 묻는다. G20은 지역기구 대표의 초청, 비회원국 협력(outreach) 활동 확대 등을 통해 대표성 부족을 보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현재의 고정회원제를 바꾸어 회원국 선출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한 대표성 문제는 계속 G20의 정당성을 위협할 것이다. 대표성 문제는 처음부터 예상된 문제다. 하지만 최근에 제기된 G20 무용론은 G20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경제위기가 완화되면서 국제협력에 대한 G20 지도자들의 의지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G20이 런던정상회의 이후 국제사회를 놀라게 할 만한 괄목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 G20의 부진이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G20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G20제도와 개별 회의의 성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G20이 특정 회의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보였다고 해서 G20 시스템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가 무력하다고 해서 의회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진국과 개도국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G20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선진국과 개도국 진영이 독자적으로 세계경제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협력은 국제사회가 포기하거나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G20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이 협력할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종린 /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jrmo@yonsei.ac.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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