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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zil] 경제성장 발목 잡았던 브라질의 인플레 공포
입력 : 2011.06.17 16: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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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가까이 논의한 끝에 브라질 정부는 500억 헤알 규모의 예산삭감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는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의 1.8%에 해당하는 규모다. 공공 지출을 대폭 줄여서 인플레 압력의 주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싹을 차제에 제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조치다. 룰라 집권 8년 동안 전년 대비 연방 지출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2009년도 지출 확대는 국제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국내 경기를 부양시켜야 했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10년의 경우에는 국내 경기가 과열 조짐까지 보이는 상황임에도 경기부양책을 유지했는데 이는 대선운동에서 지우마 후보를 돕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이와 같은 정치적 선택은 곧잘 다른 부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룰라 행정부 6년 동안 GDP의 3% 수준을 유지하던 기초수지 흑자율이 작년에 갑자기 1.25%로 추락한 사실은 2010년 한 해 동안 공공지출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보여준다.
긴축 재정으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는 연방정부의 부채 이자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절약한 이자 비용은 인프라 시설과 공공서비스 개선 등 건설적인 투자에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브라질 정부가 성장 속도를 조절하고 지출을 삭감하는 데 성공한다면 몇 년 안에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담보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사이클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인프라 투자 계획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인건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거세질 것이다. 현재 의회에 상정돼 있는 사법공무원 임금 인상안에 대한 처리 결과는 인건비 삭감이라는 예민한 사안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연방 지출 규모는 2003년 대비 67% 증가한 수치인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GDP 성장률을 41%나 상회하는 것으로 우려할 만한 불균형이 아닐 수 없다. 공공지출이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GDP 규모를 넘어선 안 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 차이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2003년 32.5%에 머물던 브라질 국민의 조세부담률이 올해 37%로 증가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최근 수년간 증가 추세에 있던 연방지출은 특히 작년 최고조에 달했다. 0.2%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2009년 사회복지 부문의 지출은 20%나 늘어났고 공무원 인건비도 11%로 대폭 증가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방공무원 수는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3만6000명이나 늘어났다. 이는 2008년 신규 채용된 연방공무원 수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시·주정부를 모두 포함하면 2009년 한 해 동안 전국 공무원 채용 규모는 전년 대비 400%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공무원 채용이 정부가 표면적으로 표방하는 공공서비스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지 덩치만 키우는 격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체 공무원 숫자가 증가함으로써 공무원퇴직연금에 대한 국가 부담이 늘어난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경기부양책 중단하지만 사회복지·공공투자 유지지난 2월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 둘째줄 맨 오른쪽이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
실제로 브라질 연방정부는 최근 들어 환율정책이나 조세정책을 통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달러 대비 헤알화 가치를 올려서 수입품 가격의 인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환율을 조작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적당한 한계 내에서 내려가는 것에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이다. 또 국내 기업들의 해외 자금 조달과 높은 국내 금리를 좇아 대규모로 유입되는 투기성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기 위해 단기 투자에 대한 세율을 대폭 인상한 바 있다.
브라질 정부가 외환 유입을 억제한다는 건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외환보유고가 적어 애가 닳던 상황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현재 브라질이 갖고 있는 외환규모는 3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데 최근 수년 동안 유입 추세가 지나칠 정도로 증가한 게 인플레 인상을 압박하고 있을 정도에 이른 것이다.
넘치는 달러를 어디에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앙은행은 지난 1월 인플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11.25%로 인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만테가 장관은 인플레가 안정되면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 전망했다. 이에 반해 대부분 금융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올해 연말까지 연 12.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인플레 관련 시각이 정부의 예상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브라질 정부가 발표한 500억 헤알 규모의 예산삭감계획이 없었다면 금리는 더욱 치솟았을 것이다.
연 12.5% 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로 브라질에 대한 외국인 투자 열기를 세금 부과로 가라앉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브라질 정부는 과거의 경우처럼 지나친 긴축정책으로 모처럼 찾아온 경제성장 드라이브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더군다나 바라지 않는다. 전임 룰라 행정부의 높은 국민적 지지 기반이었던 각종 사회복지정책에 손상을 주거나 고용률을 떨어뜨려 갓 출범한 지우마 호세프 행정부에 오명을 씌우는 결과 또한 결코 원치 않는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서 브라질 정부의 정책적 딜레마가 있다.
경제 안정을 이룩하고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브라질이 있기까지에는 20여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인플레를 잡기 위한 쓰디쓴 처방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지출 줄이고 인프라 투자에 역점브라질 상파울루 증시.
[정재민 /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 강사 jaeminbr@gmai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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