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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lation] 투 스피드 인플레이션의 악몽
입력 : 2011.05.27 14: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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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실로 밤방 유도유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다보스포럼에서 던진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전 세계 인구는 올해 70억 명을 넘어 2045년에는 90억 명을 돌파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 절반이 아시아에서 거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쓸 에너지, 식량, 원자재는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투 스피드 인플레이션 시대 ‘투 스피드 리커버리(two speed recovery)’.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산지인 선진국의 회복 속도는 더디고,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같은 스피드 격차가 벌어질수록 세계 경제의 리스크도 커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투 스피드 리커버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월 업데이트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World Economic Outlook)의 서두를 장식했다. 당분간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가 될 것이란 암시였다. 말썽은 이미 시작됐다. 경기회복 속도에서 벌어진 격차가 물가 부문에서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투 스피드 인플레이션(Two speed inflation)’이다.
투 스피드 인플레이션이 가시권에 접어든 시점은 대략 2010년 하반기부터다. 대부분 신흥국에서 물가상승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상반기 2.6%였던 중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하반기 들어 4.0%로 껑충 뛰어올랐고 러시아도 같은 기간 6.6%에서 7.2%로 상승세가 확대됐다. 이런 현상은 브라질, 태국, 말레이시아, 칠레 등 대부분의 신흥국에서 똑같이 벌어졌다. 인도의 경우 2010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12.4%에 달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이 1%대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전혀 딴판인 셈이다.
전 세계 신흥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급속한 신흥국 경기회복이 화근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신흥국의 급속한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가 그 첫 번째 원인이다. 앞서 소개한 투 스피드 리커버리’처럼 경기회복 속도가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빨랐던 신흥국이 ‘인플레이션 쓰나미’를 맞고 있는 셈이다.
IMF에 따르면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인도, 한국은 이미 2010년 중 GDP갭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돌아섰다. 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도 올해 안에 플러스 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2014~15년에 가서야 GDP갭이 플러스로 전환될 전망이다. GDP갭(gap)이란 잠재GDP(물가상승률을 가속화시키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GDP)와 실질GDP의 차이를 말한다. GDP갭이 플러스이면 실질GDP가 잠재GDP를 초과하는 인플레이션 갭(Inflation Gap) 상태가 된다. 경기가 과열돼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때 풀린 돈 회수 안 돼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풀린 ‘뭉칫돈’이다. 경기를 띄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풀어놓은 돈이 고스란히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 신흥국의 경우 자체적인 통화량 확대뿐 아니라 선진국 등 외국에서 유입된 대규모 자금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외치며 뿌려놓은 돈이 정작 미국 내에서는 돌지 않고 신흥국 주식, 채권시장에 몰려드는 식이다.
일부 신흥국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인도와 말레이시아는 이미 2010년 초부터 금리를 올려왔고, 브라질 칠레 대만 태국도 작년 중반부터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있다. 신흥국의 대표 선수격인 중국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정책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다. 먼 데서 찾을 것 없이 한국이 딱 그런 사례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2008년 9월 5.25%였던 기준금리를 2.0%까지 떨어뜨렸지만 금리 정상화는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3%대 복귀마저도 숨이 찬 상황이다.
치솟는 식품가격이 물가대란 원흉지난해 9월30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린 제30차 UN식량농업기구(FAO) 아태 지역총회 개회식.
특히 신흥시장의 경우 식품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높기 때문에 식품가격 급등의 충격이 더욱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 물가에서 식품의 비중은 39%에 달한다. 선진국 평균(17%)의 2배가 넘는 것으로 인도의 경우에는 그 비중이 60.2%나 된다.
식품가격 급등의 근본원인은 신흥국 국민들의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이다. 경기회복으로 소득이 늘어나면서 식품소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인도의 경우 지난 5년간 1인당 소득이 39% 증가하면서 우유, 계란, 육류, 생선 등을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인구가 2억2000만명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수요는 늘어난 상황에서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기상 이변 때문이다. 인도 서부지역의 폭우, 중국의 폭설,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가뭄, 호주의 홍수 등이 그런 예다.
신흥국 물가 급등이 폭동까지 야기 선진국을 훨씬 앞지르는 신흥국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실질소득 감소의 문제가 아니다. 매우 민감한 정치·사회문제다. 특히 신흥국 인플레이션이 주로 식품가격 상승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물가 급등이 정치적 시한폭탄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민주화 시위의 경우 결국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책 실패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진 이집트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자크 디우프 사무총장은 지난 1월 튀니지 ‘재스민 혁명’을 예로 꼽으며 “식량가격이 급등하면서 발생 가능성만 거론됐던 폭동이 일부 국가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물가는 이미 신흥국 정치·경제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고 진단했다.
올해 다보스 포럼의 최대 화두도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신흥국 리스크’였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 가격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식료품과 연료 가격의 급등이 신흥국 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도 신흥국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위협 요인이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신흥국이 본격적인 긴축정책에 들어갈 경우 세계경제의 회복 동력이 급속히 사그라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 물가대란 상당 기간 지속될 듯 물론 식품가격 상승으로 야기된 신흥국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더러 있다. 모든 품목의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기후여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부 식품가격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다.
그러나 주요 예측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해보면 당분간 식품가격 상승세는 쉽사리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 정부의 싱크탱크 포어사이트(Foresight)는 최근 보고서에서 “식품을 싼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향후 40년간 가격 폭등이 일어날 것”이라며 “옥수수의 가격은 2050년까지 최대 100%, 쌀은 80% 정도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선진국을 크게 앞지르는 신흥국 인플레이션, 투 스피드 인플레이션은 2011년 글로벌 경제를 좌지우지할 핵심주제가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신흥국 펀드는 조심하고 원자재 관련 상품에 투자하라는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신 3고(高) 시대 대비해야지난해 11월서울 G20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오른쪽)과 수실로 밤방 유도유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이렇게 금리가 오르면 주가, 환율, 부동산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가압력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을 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가압력에 거세지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금리를 올리면 해당국가의 돈 가치가 높아져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은행 예금 등으로 시중자금이 이동해 주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高)물가는 올해 초 동남아시아 증시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에서도 가중되는 물가압력은 금리와 원화환율, 주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 누려왔던 ‘3저(낮은 원화값, 낮은 물가상승률, 낮은 금리) 시대’는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그 대신 새로운 ‘3고(높은 원화값, 높은 물가상승률, 높은 금리)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3% 중반~4%까지 오르고, 원화환율이 달러당 1000원대에 접어들고, 4%대 이상의 물가상승을 경험하게 되면 개인들의 살림살이와 재테크 지형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으나 앞으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미국의 통화정책이다. 경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여전히 돈을 풀고 있지만 언젠가 미국도 긴축으로 방향을 트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 시점이 아주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2012년까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록적인 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그러나 어쩌면 올해 안에 변화의 징조가 나타날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때 한국경제는 또 한 번 시험을 받을 수 있다.
[이진우 / 매일경제 경제부 차장 jeano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호(2011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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