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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zil] ‘마담 프레지던트’ 시대 맞는 브라질의 미래
입력 : 2011.04.22 16: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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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최근 기사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뛰어넘는 여성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질마 후세피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기사는 또한 “게릴라 출신 브라질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여성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억 명에 육박하는 인구, 세계 5위의 영토, 엄청난 규모의 식량과 자원 대국인 브라질이 세계무대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제가 뒷받침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예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선투표 결과가 예상처럼 질마 후세피 후보의 승리로 이어질 경우 브라질 국민들은 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갖게 된다. 세계적으로 현직 여성 정상들이 지금처럼 많았던 건 전례가 없을 정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 프라티바 파틸 인도 대통령, 알런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 등 현재 세계는 가히 ‘마담 프레지던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 그 동안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중남미 지역도 세계적으로 부는 거센 여풍(女風)으로부터 비껴가지는 못했다. 현재 유엔여성기구(UN Women) 초대회장인 미첼 바첼렛이 2006년 칠레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된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남편의 후광을 받아 아르헨티나 대통령직을 계승했으며 금년 2월 실시된 대선에서 라우라 친치야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코스타리카 역시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게 됐다.
끊임없이 ‘마담 프레지던트’를 생산하는 전 세계적 여풍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특히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오랜 기간 제약을 받아 왔던 중남미 지역에서 여성 대통령들이 연이어 배출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관계지향적·수평적 특징의 리더십 요구
예외 없이 가톨릭을 국교로 채택한 중남미 식민지 국가들은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관습을 유럽에 비해 훨씬 오래 간직해 왔다. 여성의 참정권만 하더라도 중남미에서는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보다 30여 년이나 늦게 보장했다. 여성 참정권을 1932년에 인정하기 시작한 브라질은 칠레, 아르헨티나(이상 1947년), 멕시코(1953년) 등 다른 중남미 국가들보다 비교적 일찍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셈이다.
하지만 사탕수수나 카카오 경작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의 특성으로 인해 사회구조 역시 절대적인 남성 권력을 수반으로 하는 가부장제를 기초로 하는 것이어서 브라질 여성들은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남성들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인내해야만 했다. 당시 사탕수수 농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한 남성 인물이 “여자와 깜둥이는 남자가 하는 말에 끼어들면 안 된다”고 하는 인종 편견에 빗댄 성차별적 발언을 통해 가부장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산업화와 함께 가부장적 사회의 틀은 와해됐지만 정작 사회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남아 있던 가부장적 전통의 사고방식이 바뀌는 데는 더욱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하지만 변하는 세월 앞에 버틸 장사는 없었다. 사회와 제도에 버팀목이던 가부장적 사고방식 또한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면서 존재 의미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아래를 모르던 권위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1960년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 계속된 브라질 군부독재는 대다수 브라질 국민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갔다.
불도저와 같은 밀어붙이기… ‘브라질 대처’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의 덕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질마 후세피는 당내경선에서 승리했고 유권자들의 지지율 역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20% 가까이 지지율 격차를 벌이며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여유 있게 꿰차고 있던 주제 세하의 지지율은 반대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불과 수개월 만에 전세가 역전되기까지 했다. 그러자 측근 한 명이 성형을 할 것을 권유했지만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주제 세하 후보도 충고를 받아들여 성형을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후보자는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켰고 다른 후보자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미 중남미 대륙에 상륙한 ‘마담 프레지던트’ 여풍의 위세는 때마침 부드러운 여성 이미지로의 변신에 성공한 질마 후세피 후보의 지지도에 날개를 달아줬다.
예상대로 질마 후세피가 차기 브라질 대통령이 된다면 성공적인 변화를 이룬 후보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대선 캠페인의 일등공신은 바로 룰라 대통령이라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룰라 대통령이 질마 후세피 후보에 쏟아 부은 물심양면의 지지는 눈물겨울 정도다. 후보 지명 때 당내에서 적지 않은 인사들이 반대 의사를 표했는데 이들 모두를 대통령이 직접 설득해 그의 후보지명을 끝내 이뤄냈다. 이후 전국 각지의 굵직굵직한 행사 때마다 그를 동행시켜 현 정부의 업적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국민들에게 반복적으로 상기시켰다. 당선이 확정된 이후에도 룰라와 동행하는 수많은 일정이 잡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도 그 중 하나다. 국제 행사장에 당선자 자격으로 참석시켜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얼굴을 홍보하여 외교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GDP 규모 세계 8위의 국가경제를 계승
정부 지원에 의지하려는 마음에 수혜자 스스로 자립심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저소득층 빈민 구제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 역시 현재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질마 후세피는 이에 대해 “빈민 구제 정책은 계속돼야 한다. 전 국민이 모두 소비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사회 지원 정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직업교육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말하고, “브라질은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숙련공이 부족하다. 사탕수수를 베던 단순 노동자를 용접공 같은 숙련 기술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질마 후세피 후보의 대선 캠페인 홍보 비디오에는 무엇보다 현 룰라 행정부의 업적을 찬양하고 이를 계승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대다수 국민들을 위해 “변화는 계속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다. 룰라 대통령이 현재 누리고 있는 지지율은 80%를 상회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룰라 행정부로부터 이어 받을 유산이 모두 ‘따 놓은 당상’은 아니다. 현 정부에 대한 가장 진지한 비판 중 하나는 공공지출 증가에 대한 우려다. 실제로 0.2%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작년 한 해 동안 사회복지 부문의 지출은 오히려 20%나 늘어났고 대규모 공무원 신규채용으로 인한 인건비 증가도 11%에 달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2009년 총부채 규모는 GDP의 64%까지 치솟았다. 총부채 증가율이 위험 수위 이상으로 GDP 증가율을 추월하고 있다는 점 또한 우려할 사항이다.
경제 안정 속에 성장을 거듭하며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세계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현재의 브라질이 있기까지에는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쓰디 쓴 처방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성장도 함께 이뤄내려면 차기 브라질 정부는 지출을 억제하면서 인프라 투자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플라날투 대통령궁의 다음 주인이 누가될 것인지는 불문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지도자라면 오래지 않아 긴축이라는 용기 있는 칼을 빼들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로 보인다.
[정재민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브라질)어과 강사 jaeminbr@gmai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호(201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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