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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美·日 28년 만에 엔화 공동 방어 ― 40년 만의 엔저에 日 정부 ‘전전긍긍’
입력 : 2026.09.14 10: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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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이 28년 만에 엔화 매수 방향으로 공동으로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양국은 지난 7월 31일(미국 동부 시간) 일본 정부와 미국 재무부가 외환시장에 동시에 개입한 사실을 8월 3일 공식 확인했다.
양국의 엔화 매수를 통한 외환시장 개입은 동아시아 통화 위기인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엔저 ‘더는 방치 못해’이번 시장 개입의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엔저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달러화당 엔화값은 7월 하순 한때 163.99엔까지 떨어졌다. 약 4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일본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일본은행의 느린 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엔화 매도세가 누적된 것이다. 엔저는 일본 수출기업에는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지만, 일본 경제 전체로 보면 부작용이 더 크다. 원유와 원자재 등 달러로 결제하는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면서 일본 가계의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에너지와 식료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엔저는 곧바로 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일본 10년물 국채와 같은 장기금리 상승까지 겹쳤다. 일본 국채금리가 뛰는 상황에서 엔화까지 하락하면서 시장에서는 이른바 ‘일본 매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일본 재무성은 단순히 환율 수준 방어를 넘어서 과도한 변동과 무질서한 움직임을 막으려는 조치로 시장 개입에 팔을 걷어 올렸다.
일본 당국의 개입은 시장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대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7월 31일(한국 시간) 열린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앞서 이날 새벽 시간에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수, 달러화 매도에 나선 것이다. 시장에서는 개입이 있더라도 이날 오후에 진행되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의 회견 이후를 예상했었다.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인해 달러화당 엔화값은 162엔대에서 157엔대로 급격히 상승했다. 이어서 7월 31일(미국 동부 시간)에는 미국 재무부가 뉴욕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엔화 매수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다. 미국이 시장에 개입한 방식은 조금 달랐다.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산 것이 아니라, 유로를 팔고 엔화를 매수한 것이다. 이는 달러 가치는 변화시키지 않은 채 엔화 강세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환율 조작에 대한 중국 측의 문제 제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미일 양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한국 시간으로 8월 3일 공식 확인됐다.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미국 연방정부 각료회의 현장에서 촬영된 메모지에는 밑줄이 그어진 ‘할일(To Do)’이라는 문구가 있고, 그 아래에 ‘일본 엔(JPY) 50억~100억 달러 매입’이라고 적혀 있었다.
7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재로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자신의 메모장에 ‘해야 할 일(To Do)’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유로·파운드·호주달러도 엔화에 밀려이번 개입의 파장은 엔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유로·파운드·호주달러 등 다른 통화와의 거래에서도 엔화 매수세가 확산됐다. 8월 3일 유로화는 엔화 대비 한때 179엔대 초반까지 떨어지며 2025년 11월 이후 약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파운드화도 290엔대 중반, 호주달러는 109엔대 초반까지 밀렸다. 엔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대표적인 저금리 조달통화로 꼽힌다.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통화나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화가 갑자기 강해지면 투자자들은 기존 캐리 거래를 청산하기 위해 유로·파운드·호주달러 등 다른 통화를 팔고 엔화를 사들인다. 이번 개입이 미국 달러뿐 아니라 다른 통화에까지 파급된 이유다. 특히 엔화와 함께 원화도 크게 움직였다. 미·일 협조 개입 직후 원화값도 달러당 1400원대에서 급격하게 강세를 보이면서 한국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 가능성까지 시장에서 거론됐다. 미국 재무부 역시 이번 협조의 이유 중 하나로 아시아 통화시장 안정을 거론했다. 베선트 장관은 엔화 움직임이 한국 원화와 중국 위안화 등 역대 통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놓았다.
‘미국 국채’ 지키기 위한 개입 관측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왜’ 미국이 일본 엔화 매입에 나섰냐는 점이다. 미국은 동맹국 지원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지만 핵심 이유는 미국 국채 시장을 지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은 세계 최대 수준의 미국 국채 보유국이다. 일본이 엔화 방어를 위해서는 보유한 미국 국채 매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하게 되면 미국 국채 가격은 하락하고 반대로 금리는 오르게 된다. 이미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일본발 국채 매도가 더해지면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이 올라간다. 또 주택담보대출 등 민간 금융비용도 높아질 수 있다.
이를 의식해 미·일이 짜낸 묘수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이 미국 국채를 담보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FIMA 레포 창구를 통해 달러를 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당장 시장에 미국 국채를 내다 팔지 않고도 일본이 시장 개입에 충분한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도 중요하다. 미일 금리차로 인해 엔캐리 트레이드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엔화가 급격히 반등하면 캐리 트레이드가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글로벌 주식·채권시장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일본은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엔화의 방향성을 바꾼 사례가 많다. 이번과 비교할 수 있는 시장 개입 사례는 1998년이다. 당시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 일본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은 엔화 매수 방향으로 시장에 공동 개입했다. 2011년에는 정반대였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엔화가 급등하자 일본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와 함께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방향으로 공동 개입했다. 미·일 금리차가 급격하게 벌어진 2022년에는 일본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단독 엔화 매수 개입에 나섰다. 두 달 동안 약 9조1800억 엔을 투입했지만 엔화 약세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시장에서는 결국 승부처는 일본은행이 쥐고 있다고 본다. 엔저의 흐름을 막으려면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 엔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일본 국채금리 상승으로 일본 정부의 재정 부담은 커진다. 딜레마 속에서 묘수를 찾아야 하는 것이 현재 일본은행의 과제다.
[이승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