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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이재명 시대 韓·日관계, 中보다 日 먼저 챙긴 李, ‘셔틀 외교 지속’
입력 : 2025.07.03 16: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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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6월 17일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 공동취재단> 지난 6월 19일 한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식이 열린 도쿄 뉴오타니호텔. 행사 개최 시간이 다가오자 엄청난 경찰 인력이 호텔을 감싸면서 경호하기 시작했다. 행사장에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호텔 입구에서부터 두세 차례 까다로운 검문을 거쳐야 했고, 행사장 내부에서도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했다. 일본 경시청이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군 데에는 이날 행사장에 일본 전현직 총리와 현직 각료가 대거 출동했기 때문이다. 경시청이 필수 경호로 삼은 경호 대상만 12명에 달했다.
이는 새 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에 거는 일본의 기대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일본 측이 한국의 신정부 출범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이를 위해 일본답지 않게 무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전현직 총리 4명 등장이날 행사에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계·관계·재계·학계 등을 아우른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기시다 후미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참석했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행사에 앞서 박철희 주일한국대사를 면담했다. 한국이 주최하는 행사에 일본 전현직 총리만 4명이 방문한 것이다. 또 장관급에서는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 나카타니 겐 방위상, 아베 도시코 문부과학상, 아사오 게이이치로 환경상 등이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도 주호영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 국회의원과 교민, 기업인 등이 함께 해 전체 참석자 수는 1000여 명에 육박했다.
10년 전 50주년 기념식 때는 양국이 같은 날 행사를 진행해 당시 양국 수장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각각 참석했다. 반면 올해는 6월 16일에 서울서 행사가 열렸고, 도쿄서는 이날 진행됐다.
10년 전 50주년 기념식 때는 양국이 같은 날 행사를 진행해 당시 양국 수장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각각 참석했다. 반면 올해는 6월 16일에 서울서 행사가 열렸고, 도쿄서는 이날 진행됐다.
서울 행사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관계로 불참해 외교 관례상 도쿄 행사에 이시바 총리도 불참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양국 간 우호의 의미를 강조하며 이시바 총리가 직접 행사장에 등장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미래 한·일 관계 강조한 이시바이날 행사에서 이시바 총리는 축사를 통해 “일본과 한국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이 엄중해지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로가 손잡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웃을 잘 알고 싶어하는 인간이 갖는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한국 사이의 교류가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다”며 “최근 젊은 세대를 포함해 양국 국민의 활발한 교류를 보면서 밝은 미래를 느끼고 있다”고 감상을 밝혔다.
이시바 총리는 최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일을 언급하며 “이 대통령과 전화 통화도 하고 직접 대화도 나눴다”며 “앞으로 양국 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서로의 생각을 맞춰가면서 뜻깊은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사람의 인생에서 환갑(60세)은 중요한 변곡점인 것처럼 한·일 관계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속 발전해 왔다”며 “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로서 함께 미래를 위한 협력을 심화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장 무대에는 60년 전인 1965년 6월 22일 한·일 기본조약 체결을 조용히 지켜본 병풍도 설치됐다. 12폭으로 된 병풍은 절반으로 나뉘어 주일한국대사관과 주한일본대사관이 각각 보관하고 있다. 한국 측이 제작한 병풍에는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자수로 새겨져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日 불안감 컸지만…애초 일본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한·일 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항상 한·일 관계에 많은 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문재인 정권 때만 해도 사상 최악의 한·일 관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일본 주류 사회는 한국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의 활동을 뒤집는 경우가 많다고 인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때의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백지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에도 일본에서는 불안감이 컸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결방법이나 사도광산 문제 등에 강경한 발언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6월 9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앞서 이시바 총리와 통화한 것에 대해 일본 언론은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이 대통령은 과거 일본과 관계 강화에 부정적인 발언을 거듭했다”며 “하지만 중국에 앞서 일본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이어 대일 관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전화 통화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일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이 회담에서 일본 언론이 주목한 것은 ‘셔틀 외교’ 재개다. 교도통신과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은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보도한 기사의 제목에 ‘셔틀 외교’를 넣었다. 교도는 “정상이 상호 방문하는 셔틀 외교를 지속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셔틀 외교로 안정적 관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에 정상 간 의견이 일치했다”고 보도했다.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뇌관이재명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첫 단추를 잘 꿴 느낌이지만 여전히 과거사 문제는 뇌관이다. 새 정부에서 한·일 관계에 영향을 줄 주요 변수로는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사도광산, 교과서 등 과거사와 영토 문제인 독도가 꼽힌다.
지난해에도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노역했던 사도광산 관련 추도식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났다. 추도식은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일본 정부가 열기로 약속한 조치로, 한국 정부는 추도식 하루 전에 전격 불참을 결정하고 따로 추도 행사를 열었다. 한·일 관계가 개선된 윤석열 정부에서조차 사도광산 추도식 갈등이 터졌다는 사실은 양국 간 과거사 갈등 해소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이 대통령이 내놓을 메시지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의 경우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역사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아 일본 언론에서조차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당장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이 대통령이 내놓을 메시지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의 경우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역사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아 일본 언론에서조차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첫 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사라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 문제는 잘 관리해 나가고 협력을 더 키워 미래지향적 관계를 꾸려 나가자는 쪽으로 정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승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