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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섭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이재명 시대 韓·中관계, 기술협력·인적교류… 커지는 관계 회복 기대
입력 : 2025.07.02 16: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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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한·중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이 대통령의 성장 스토리와 당선 과정을 집중 조명했고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재명 당선’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한·중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중국 네티즌들의 기대섞인 반응들도 쏟아졌다.
취임 후 약 일주일 만에 이뤄진 한·중 정상 간 통화에서도 ‘가까운 이웃’을 강조하며 양국 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감을 더 높였다.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앙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 간 만남이 점쳐지면서 지난 수 년간 경색된 양국 관계가 ‘해빙무드’에 접어들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習 “협력 관계 더 높여야”… 관계 회복 신호탄지난 6월 10일 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약 30분간 통화를 했다.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통화에서 이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축하하며 “한·중은 옮길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라며 “수교 초심을 지켜야 하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 간 각 분야 교류를 강화하고 전략적 상호 신뢰를 증진시켜야 한다”며 “글로벌 공급망 안정에도 함께 기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대통령은 “한·중은 경제, 무역, 문화적으로 긴밀하고 정서적으로도 가까운 나라”라며 “양국 협력을 더 내실 있게 발전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실은 두 정상이 양국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전했다. 또 인적·문화적 교류를 강화해 양국 국민들의 우호적 감정을 높이고 경제 협력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은 올해 11월 예정된 APEC 정상회의에 대한 논의도 다뤘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번 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을 초청하며 양국의 관계 발전을 위해 보다 긴밀한 의견 교환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 주석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면 11년 만의 한국 방문이 된다”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또 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도 당부했다.
앞서 중국 관영 언론들은 지난 6월 3일 밤부터 한국 대선 소식을 발 빠르게 전했다. 다음달 아침 신화통신 등은 자사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공식 확인했다며 오전 6시 21분 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했다는 점을 긴급 타전했다. 이 소식은 중국 SNS와 포털 등에서도 화제가 됐다.
美 견제구에… 中 “독립적 외교 기대” 압박중국 내 외교 전문가들도 한·중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잔더빈 상하이 대외경제무역대학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은 중국 매체 제일재경에 “한국 유권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권 교체로) 한국의 외교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한국의 대외 정책이 ‘일변도’ 상태에서 균형잡힌 위치로 바뀔 것이고 이는 한·중 관계에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기대는 단순한 축하 메시지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6월 5일 ‘중한 관계 발전의 새로운 출발점이 오길 희망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고 전날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 축전을 보낸 사실을 거론하며 “중국이 중·한 관계에 대한 진심어린 기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높은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첨단 기술 산업 등 중국 기업과 협력을 모색하는 일도 한·중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사진 연합뉴스> 특히 “윤석열 정권은 ‘가치 외교’를 내세워편향된 선택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더 큰 불확실성에 빠졌다”며 “이러한 ‘일방적 외교’를 조정하고 균형 외교로 돌아가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과 관계를 잘 형성하는게 이재명식 실용 외교의 필수적 요소”라고 짚었다. 그러고는 “중·한 관계 발전의 근본 동력은 양국 이익”이라며 “제3국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한국이 제3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고수할 것을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이 대통령 취임 첫 날 미국 백악관이 중국을 언급한 점을 겨냥한 발언인 셈이다. 백악관은 당시 한국 대선 결과와 관련해 이례적으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중국과 ‘거리두기’를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APEC서 첫 만남 유력… ‘한한령 해제’ 전망도한·중 정상 간 첫 공식 대면은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유력하다.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되면 2014년 이후 11년 만의 방한이다. 내년 APEC 개최국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답방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실제 정상 간 교류가 재개되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단되다시피 한 문화·관광 교류도 순차적으로 복원될 수 있다. 한한령 해제와 함께 인적 교류 등의 민간 협력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중국이 한한령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 없기 때문에 해제도 공식 발표보다는 ‘K-팝 아이돌 공연 허용’이나 ‘K-드라마 방영 승인’ 등의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한·중 간 산업 및 기술 협력 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중국은 최근 체화지능 로봇, 인공지능(AI) 대모형, 6G(6세대 이동통신), 전기차 등 첨단 기술 산업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첨단산업에서는 이미 한국의 기술력을 넘어선 분야도 상당히 많다. 즉, 중국 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모색하는 일도 한·중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됐다.
다만, 미국발 관세전쟁 등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한·중 관계 회복에만 온전히 치중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이재명 정부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한국뿐 아니라 중국, 유럽 등에 추가 관세를 잇달아 부과했다. 특히 중국과는 세자릿수 세율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주고 받다 오는 8월 중순까지 90일간 관세를 유예하기로 한 상태다.
이후 미·중 간 최대 쟁점은 중국의 대미 희토류 수출통제로 번졌다. 지난 6월 5일 양국 정상 간 통화 후 영국 런던에서 2차 무역회담을 거치며 중국은 미국에 희토류 수출을 허용하고, 미국은 중국인 유학생의 비자를 승인하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이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균형 외교’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이달 중 이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인사들로 구성된 대중 특사단을 파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 실용외교의 첫 시험대인 셈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APEC 정상회의 전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특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한·중 관계 복원의 실질적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송광섭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