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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만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바이든 두 개의 전쟁, 러 공세 막고 인도·태평양서 中 견제
입력 : 2022.03.03 10: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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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은 불가피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만약 러시아가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선택한 것이고 명분 없는 전쟁이 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미국인을 공격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 15일(현지 시간) 대국민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전방위 압박하는 러시아에게 이같이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일부 병력 철수 발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검증하지 못했다”며 “러시아군 15만 명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따라 위협적으로 포위하고 여전히 침공할 수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작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1975년 월남 패망과 같은 혼란스러운 철군으로 상처 입은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 강력한 제재 등 두 가지 카드로 러시아를 압박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러시아의 대치 등 불안한 동유럽 안보 상황은 장기 국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나토는 러시아 위협을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라고 평가하고 방어 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에너지를 집중하면서도 인도·태평양에서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게 21세기 가장 강력한 도전 국가는 중국이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1년 만인 지난 2월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중국의 강압과 공격성은 전 세계에 걸쳐 있지만 인도·태평양에서 가장 극심하다”며 전략적 우위를 갖기 위한 다양한 실행 계획을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5월 하순 대중국 견제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다가 한국에도 찾아와 새 대통령과 한미동맹·대북정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처럼 동유럽에서 푸틴 대통령의 공세를 저지하고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세력 확장을 막아야 하는 ‘두 개의 전쟁'을 마주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글로벌 리더십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 15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지역의 군사 분쟁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우려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15만 병력을 배치하고 군사훈련을 하면서 동유럽에서의 지배력을 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작년 12월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회담에 이어 별도 전화통화를 했고 2월에도 다시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토의 우크라이나 회원 가입 불가와 미사일 배치 금지 등의 법적인 러시아 안전 보장을 요구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볼모로 미국과 협상에 나서는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 전 세계 주요 정상들의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도 줄을 이었다. 전쟁 결정권을 지닌 푸틴 대통령의 입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러시아는 글로벌 경제에서도 영향력을 확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유가가 폭등하고 주가가 급락하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가뜩이나 7%대 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을 잃은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추가 유가 상승은 상당한 부담이다. 아울러 유럽 가스 수요량의 40%를 수송하는 러시아는 에너지까지 무기화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은행 홈페이지를 향한 사이버 공격도 러시아 소행으로 추정되는 등 러시아의 공격 옵션은 다양하다. CNN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지 않더라도 적절히 압력을 유지하면서 미국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속적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미국과 일부 서방국가에서 선수단을 파견하더라도 외교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 조치를 단행한 가운데 시 주석은 올림픽을 중국 체제 선전의 기회로 충실하게 활용했다. 이어 시 주석은 오는 10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3연임을 확정하고 장기 집권을 알릴 계획이다.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중국과 러시아 간 정상회의도 열렸다. 양국은 반미 연대를 재확인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공조하기로 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대하는 미국 입장을 주시하면서 앞으로 대만 병합을 위한 군사적 레드라인을 시험하는 대담한 접근법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美 ‘제2의 아프가니스탄 참사 막겠다’… 우크라이나 외교 총력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혼란스러운 철군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40% 안팎까지 추락한 배경에는 1975년 월남 철수를 연상시킨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급박한 대피 장면이 시발점이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조기 함락한 탈레반 진격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의 카불공항 테러를 막지 못했으며 미국인들을 모두 대피시키지 못했고 첨단무기마저 현지에 남겨두고 부랴부랴 빠져나와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이 돌아왔다’며 전통적인 동맹 규합과 글로벌 리더십 복원에 매진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제2의 아프가니스탄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동맹국들과 보다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 정상들과 수시로 통화하면서 직접 해결 방법을 조율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경제 제재와 반도체 수출 통제로 러시아 전략 산업에 치명타를 주려는 억지책도 서방 동맹국과의 공조를 통해 마련됐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수시로 유럽을 오가면서 각국 외교장관들과 회담을 하고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 군대 배치와 공습 작전 등 기밀 정보를 사전에 공개 중이다. 과거와 달라진 정보 취급 방법이다. 러시아의 군사작전과 활동을 외부에 노출시켜 실제 공격을 억지하려는 목적이다.
▶‘중국 견제’ 바이든표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 “각 국가와 세계의 미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 수십 년간 지속하고 번성하는 데 달려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첫 페이지에 실은 문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백악관에서 쿼드 정상회의를 열고 강조한 말이 보고서에 담겼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세계 최고 열강이 되기 위해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기술적 힘을 결합하고 있다”며 중국의 강압적인 공격성과 관련해 호주에 경제적 강요, 인도와의 국경 분쟁, 대만 압박,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이웃나라 괴롭힘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대만 국민들이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방어 역량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 협력을 모색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구축을 위해 올해 새로운 파트너십을 출범시킨다. 높은 수준의 무역 촉진, 디지털 경제 관리, 공급망 복원력과 안보 개선,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인프라 구축 등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앞으로 한국의 참여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포함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과 동맹국을 향한 북한의 어떠한 공격도 저지하고 격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한미일 3국 협력 확대도 1~2년 안에 실행할 10대 액션플랜 중의 하나이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창이던 2월 10일께 호주, 피지, 하와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순차적으로 찾아가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만나고 나서 인도·태평양 경제안보 전략을 가다듬었다. 그는 “세계는 넓고, 우리의 관심사는 글로벌하며, 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군사외교적 역량을 쏟아 붓지만 인도·태평양 상황 관리 모드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축은 쿼드이다. 남중국해에서 인공섬과 군사기지를 짓는 중국에 대항해 쿼드는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첨단 기술을 공유하며 코로나19 대응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5월 하순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방문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바이든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환상에 불과하다”고 반발한다. 미국이 역내 패권국 자리를 위태롭게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 동맹국들과 러시아 위협에도 맞서기 바쁜 상황에서 바이든표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 동력은 약화된다는 게 중국 측의 전망이다.
[강계만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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