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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만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美 동맹국과 中 포위 전략에 선택 강요받는 한국
입력 : 2021.11.30 10: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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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화상 정상회담은 신냉전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충돌방지에 대한 서로의 마지노선을 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16일(현지시간) 화면을 통해 마주한 시 주석을 향해 “중국에서 함께 여행했던 것처럼 다시 얼굴을 맞대고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했고, 시 주석은 “내 오랜 친구를 보게 되어 매우 행복하다”고 화답하면서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산당 상징인 붉은색 넥타이를, 시 주석은 미국 민주당 색깔인 파란색 넥타이를 각각 착용해 서로를 배려했다. 두 정상은 10년 전 부통령, 부주석 시절부터 8차례 이상 만났고 통역만 대동해 25시간 이상 밀담을 나눌 정도로 친밀했다. 당시 양측의 긴밀한 관계를 ‘국수 외교’ ‘농구 외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생으로 79세, 시 주석은 1953년생으로 68세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국익을 놓고 참모들과 함께한 첫 정상회담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개인적인 친분은 배제되고 전후반으로 나뉜 총 194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설전이 오갔다. 대만, 무역, 인권, 인도태평양, 에너지, 기후변화 등 양측의 현안이 폭넓게 다뤄졌다. 합의사항이나 공동성명은 없었다. 양국 정상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하는 소통을 통한 긴장 완화는 소기의 성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분수령인 2022년 11월 중간선거, 시 주석은 2022년 10월 3연임을 위한 공산당 당대회라는 정치적 대형 이벤트를 각각 앞두고 있기 때문에 대립하더라도 충돌을 막으면서 현재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충돌방지를 위한 가드레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시 주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호존중·평화공존·윈윈 협력 등 세 가지 원칙으로 중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기후변화 대응, 전략 비축유 방출을 통한 국제 에너지 가격 안정, 북한·이란·아프가니스탄 등에서의 협력 여지도 열어 놨다.
양국 모두 정상회담 직전에 중대한 내부 문제도 마무리하면서 부담을 덜어내고 미중 정상회담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에 도로, 다리, 상하수도, 공항 등 낡은 인프라를 뜯어고치는 1조2000억달러 규모의 물리적 인프라예산법안에 서명했고, 시 주석은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채택된 3만6000여 자 분량의 역대 세 번째 역사결의 전문을 공개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미중 패권전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 안정같은 경제안보에서도 한국은 미중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신세이다. 미국은 쿼드, 파이브아이즈 등 경제안보 협의체를 통한 동맹국들과의 대중 포위작전에 한국의 동참을 기대한다. 중국은 요소수 등 한국과의 경제적 연결고리로 해서 한국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11월 15일 워싱턴DC 백악관의 루스벨트 룸에서 화상을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시행해왔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만 독립 여부는 미국의 지원 여부가 아니라 대만 국민들이 결정할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또한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의 방어를 도와줄지라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시 주석과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의 대만 상황을 바꾸거나 대만해협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일방적인 중국의 노력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대만 문제에 있어서 중국 입장을 들어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명확히 정리한 셈이다.
시 주석은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최대한의 성의와 최선을 다해 평화통일의 비전을 이루려 한다”며 “만약 대만 독립·분열 세력이 도발하고 심지어 레드라인을 돌파하면 우리는 부득불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에 타 죽는다”라는 격한 표현의 경고 메시지까지 전했다. 군사적 충돌까지 불사하겠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 하나만 세계에 존재하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한국 정부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토대로 해서 대만과 실질적인 경제협력에 애쓴다는 방침이다.
▶“中 불공정 경제 손보겠다” vs “중국 기업 때리기 중단해야” 미중 간에 국익과 직결되는 경제무역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분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과 경제 관행으로부터 미국 노동자들과 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산업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격을 후려치는 중국 정부 중심의 반시장적 경제정책을 꼬집은 것이다. 백악관은 올해 말 종료되는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사항의 이행도 중국에 촉구한 상태다. 아울러 미국은 유럽연합(EU)과 손잡고 지난 9월 무역기술위원회를 신설해서 글로벌 무역·기술 이슈를 점검하고 비시장경제에 대항하겠다고 밝혀 중국 견제에 집중했다.
시 주석은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본질은 상호 공영에 있다”며 “중미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고 쌍방이 ‘큰 협력의 케이크’를 만들자”고 촉구했다. 또 “미국이 국가 안보 개념을 앞세워 중국 기업을 탄압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웨이와 SMIC 같은 중국 기업을 향한 미국의 제재를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미중 정상회담 후속조치 관심… 북핵문제 논의했지만 종전선언 미지수 이번 정상회담에서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초청 여부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서 전했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공식 외교사절단을 제외하고 선수단만 파견하는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는 가운데 중국 정부에서도 미국 외교 인사 참석 여부에 무리하게 집착하지 않는 모양새다. 동계올림픽이 시 주석의 독주 체제를 기념하는 자리인 만큼 가급적 잡음 없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다음날 “시진핑 중국 주석과 좋은 만남을 가졌고, 후속조치가 많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4개 그룹으로 나뉘어 참모들이 모든 이슈를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핵무기와 극초음속미사일 통제와 같은 전략적 안정, 전략 비축유 방출을 통한 에너지 협력 등이 기대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언론인들의 자유로운 입출국을 허용하기 위해 비자 발급을 완화하는 조치도 내렸다. 미국이 중국 언론인들에게 1년간 머물 수 있는 복수 비자를 발급하고, 중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약속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미중 간 충돌을 막기 위한 다양한 수준의 협력분야 중에서 북한을 언급했다. 대북 제재와 맞물려 남·북·미·중 종전선언을 통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 오갈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을 향해 적대적인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조건 없이 협상에 나서자고 촉구한다. 중국은 한반도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끊임없이 선택 강요받는 한국 미중 정상회담 기간에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미전략포럼에서 “한국과 중국이 좋은 관계인가, 나쁜 관계인가, 어떤 게 미국 국익에 좋은가”라고 반문하고는 “나는 명확한 답이 없다”고 말했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쪽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등 한국 외교당국의 고민이 담겨있는 말이다. 최 차관은 “우린 한반도 평화 구조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고, 분명히 미국의 지지와 지원, 동의와 협의 없이는 할 수 없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파트너십 또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중 무역규모가 한미·한일 무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중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미국 안방에서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언급한 것 자체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중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제안보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국 기업에도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가 중국 장쑤성 우시공장에 반도체 초미세공정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배치하려고 하자, 미국 정부에서 안보위협을 이유로 첨단장비의 중국 반입을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계만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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