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트로(Newtro) 신드롬- 패션, 콘텐츠

    입력 : 2019.07.26 15:54:17

  • 경험하지 못한 윗세대 트렌드의 신선함 럭셔리·길거리 패션도 ‘뉴트로’ 중독 김창규 패션칼럼니스트

    폴로 옷을 훔치거나 갈취해 입고 다녔던 폴로 갱의 로-라이프
    폴로 옷을 훔치거나 갈취해 입고 다녔던 폴로 갱의 로-라이프
    석 달 전 한 글로벌 가전 브랜드의 CEO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는 내게 “한국은 세계적인 트렌드를 선도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에서 트렌드를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5초쯤 머뭇거리다가 “뉴트로”라고 말한 뒤, 대략적인 설명을 더했다. 그는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를 경청한 뒤 “최신 사양의 상품을 예전 디자인의 케이스와 박스에 넣어 파는 것?”하며 반문했다. 뉴트로에 대한 정의로 가전제품 회사 CEO에게 그보다 정확한 비유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맞다”고 하자 그는 맞은편 임원진들에게 내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했다. ‘앞으로 우리의 디자인과 마케팅이 나가야 할 방향은 이것’이라는 듯 말이다.

    로-라이프 스타일을 유행시킨 우탱 클랜의 ‘래퀀’
    로-라이프 스타일을 유행시킨 우탱 클랜의 ‘래퀀’
    뉴트로 트렌드는 내 예상을 벗어나 이미 몇 년간 패션계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어글리 스니커즈’ ‘클래시즘의 부활’ ‘바버숍 열풍’ 등 세분화된 갈래가 따지고 보면 ‘뉴트로’라는 전체 집합의 구성원인 셈이기 때문이다. 1년 뒤 계절이 돌아오면 작년에 구입한 옷이 촌스러워 보일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도 있었지만, 뉴트로만큼은 조금씩 변형을 가하면서 길게 살아남고 있다. 그 이유는 뉴트로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사실 트렌드는 10~20대의 연령대를 지배하는 조류를 말하는 것이지, 30~40대 이상의 연령대에 작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트렌디하다’라는 말 자체가 ‘젊은이 같은 옷을 입는다’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처럼 트렌드는 어떤 것이 유행한 지 2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한 번도 그것을 실제로 마주한 적 없는 신세대들이 스무 살 안팎의 나이로 성장했을 때 다시 등장한다. 새로운 세대들은 항상 경험하지 못한 오래된 것에서 신선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얼마 전 유행하던 것과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 뉴트로 트렌드는 20~30년 전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올해 재론칭한 폴로 스포츠
    올해 재론칭한 폴로 스포츠
    ▶뉴트로의 핵심 브랜드, 랄프 로렌

    현재 뉴트로의 대상이 되는 오리지널 스타일은 1990년대 길거리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한 유행을 선도하는 가장 핵심적인 브랜드는 ‘랄프 로렌’이다. 랄프 로렌은 지난해 1993년 선보였던 컬렉션을 재현한 ‘더 스노우 비치 컬렉션’을 발표했다. 25년 전의 옷을 다시 선보인 이유는 ‘폴로 갱(폴로 옷만 입는 흑인 갱단)’ 집단의 로-라이프 스타일이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로-라이프(Lo-Life)는 ‘밑바닥 인생’을 뜻하는 ‘Low Life’의 흑인 발음에 폴로의 ‘로’를 상징하는 단어를 붙여 ‘거리의 삶을 살지만 값비싼 폴로를 입는다’는 의미를 표현한다. 그들은 뉴욕 빈민가에 거주하면서 폴로 옷을 입고 다니는 중산층을 협박해 옷을 갈취하거나 폴로 매장에서 훔쳐 입었다. 특히 화려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움을 뽐냈던 스페셜 컬렉션에 집착했다. 그들은 강도이자 도둑이었지만, 함께 교류하며 같은 스타일을 추구한 뉴욕의 힙합 스타들 덕분에 ‘쿨한 폴로 스타일의 상징’이 됐다. 힙합 스타들로는 뉴욕 하드코어 힙합의 상징적 존재인 우탱 클랜의 ‘래퀀’과 제이지의 히트 넘버들을 프로듀싱한 ‘저스트 블레이즈’가 대표적 인물로, 이들이 입고 다닌 1993년의 스노우 비치 오리지널 아이템들은 풀오버 한 장이 2000달러 이상의 가격에 거래될 정도다. 현재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버질 아블로가 ‘파이렉스’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도 로-라이프의 스타일에서 적지 않은 영감을 받았다.

    폴로는 이후 ‘스태디움 1992’ ‘CP-93’ 컬렉션 등 1990년대 초반 스페셜 컬렉션들을 리메이크 하다 단종된 브랜드였던 ‘폴로 스포츠’를 재론칭하기에 이르렀다. 폴로 스포츠는 스포티한 스타일을 추구한 폴로의 캐주얼 라벨로 힙합신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브랜드다. 새롭게 선보이는 의상들도 로고가 새겨진 은빛 트레이닝팬츠와 트러커 데님 재킷 등으로 예전과 다르지 않다.

    로에베의 데님
    로에베의 데님
    ▶다양한 얼굴로 진화하는 뉴트로

    ‘로에베’는 최근 몇 시즌째 밑위가 긴 데님 팬츠를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로에베 매장에 가면 촌스럽게 보일 정도로 예전 스타일의 데님이나 그것을 리폼한 것처럼 보이는 바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스타일링하는 방식마저도 예전의 느낌을 추구하진 않기에 보다 폭 넓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스 브랜드 ‘MSGM’은 하이엔드적인 감각의 스포티한 캐주얼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그들은 최근 1980년대 풍의 일본 만화 캐릭터를 크게 프린트한 티셔츠를 출시해 큰 반향을 얻었다. 이 옷은 뉴트로 스타일을 추종하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출간 당시의 추억이 있는 40대들에게까지 사랑받았다.

    1980년대 일본 만화 캐릭터 티셔츠로 인기를 끈 MSGM
    1980년대 일본 만화 캐릭터 티셔츠로 인기를 끈 MSGM
    이러한 트렌드는 올 가을·겨울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 시즌을 앞두고 선보인 ‘프라다’의 ‘프랑켄슈타인 프린트 셔츠’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고, ‘발맹’도 극단적으로 작은 프레임의 아이웨어와 과장된 어깨의 슈트 재킷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프라다는 뉴트로 스타일에 편승한 수많은 디자이너스 브랜드들과 달리 자칫 유치해보일 수도 있는 과감한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온 브랜드이다. 사진과 같은 원색의 키치적인 프린트 셔츠는 원래 프라다보다는 자매 브랜드인 ‘미우미우’를 통해 더 자주 선보이던 느낌이지만, 요즘엔 그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프라다에서도 미우미우만큼이나 이러한 룩이 자주 보인다.

    디스이즈네버댓은 한국의 뉴트로 트렌드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디스이즈네버댓은 한국의 뉴트로 트렌드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전 세계 트렌드를 선도하는 한국의 뉴트로

    도입부에 말했듯이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CEO와 디렉터들이 거의 매 시즌 한국을 찾고, 우리나라만을 위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행사도 자주 열릴 정도다. 한국인이 동경하던 뉴욕, 파리, 런던 등에서 온 젊은 관광객들이 서울의 패션과 멋진 숍, 케이 팝, 코리안 바비큐에 열광한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패션 매거진에서 한국인 모델의 얼굴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뉴트로라는 테마와 관련해 서울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꼽으라면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을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다. 디스이즈네버댓은 2010년 론칭한 한국의 브랜드로 현재 미국과 홍콩 등의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뉴발란스’ 등의 브랜드와 캡슐 컬렉션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존의 메이저 브랜드들이 SS와 FW로 시즌을 나눠 컬렉션을 전개하는 방식과 달리 비정기적으로 소규모 컬렉션을 자주 발표하는 새로운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 유명한 ‘슈프림’이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새 컬렉션이 발표되는 날이면 매장 앞에 몇 백 미터씩 줄을 선 젊은이들의 행렬을 볼 수 있다. 디스이즈네버댓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순수 국내 브랜드 중에 발매 첫 날 항상 매장 앞에 줄을 세우는 유일한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국내 브랜드인 LMC는 해외유수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을 발표했다.
    국내 브랜드인 LMC는 해외유수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을 발표했다.


    ‘LMC’ 역시 비슷한 성향과 인기를 지닌 브랜드다. 2015년 론칭했으며, ‘라이풀’이라는 브랜드의 하위 라벨로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데일리 웨어로 입기 편한 이지&클린 이미지의 룩 위주로 전개하던 라이풀과 달리 강한 느낌의 스트리트 스타일을 추구하며 ‘푸마’ ‘엄브로’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 브랜드로는 ‘미스치프(Mischief)’가 있다. 스트리트 컬처를 사랑하는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미스치프는 2010년에 론칭했으며, 1990년대 힙합 무드를 보여주는 성격 덕분에 여성 래퍼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반스’ ‘포터’ 등의 해외 유수 브랜드와의 협업 컬렉션을 발표한 적 있으며, 스트리트 웨어에만 국한하지 않고 여성용 블레이저 등도 다양하게 선보인다는 점이 특이하다.

    ▶럭셔리 워치 분야의 뉴트로

    뉴트로는 고급 시계 업계에서 더욱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20~30년 전의 유행이 아니라 50~60년 전의 유행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 스타일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재조명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이 패션계의 뉴트로 트렌드와 가장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한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한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오메가’는 올해 ‘인류 최초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이 착용했던 스피드마스터를 리메이크한 ‘스피드마스터 아폴로 11 50주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을 6969점 선보인다. 1969년의 시계에 사용했던 4세대 스피드마스터를 베이스로 새롭게 디자인한 이 시계는 다이얼 9시 방향에 위치한 스몰 세컨드 다이얼에서 버즈 올드린이 우주선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케이스백에는 달에 내디딘 첫 번째 발자국도 사실적으로 새겨 넣었다. 베젤은 블랙 세라믹과 오메가 세라골드™ 소재로 만들어 최신 사양을 적용했으며, 로고와 핸즈에는 문샤인™ 골드를 적용했다. 두꺼운 우주복 위에도 착용할 수 있게끔 블랙 코르크 소재의 벨크로 스트랩이 추가적으로 제공되는데, 이는 강한 열로부터 우주인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춘 것이다. 탑재한 무브먼트 역시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사양의 핸드와인딩 칼리버 3861로 최근 오메가의 기술력을 담았다.

    ‘카시오’의 ‘지샥’은 브랜드 출범 35주년을 기념해 18K 골드를 손으로 깎아 만든 ‘G-D5000-9JR’ 모델을 35점 발표했다. 시계의 모습은 35년 전 발표한 지샥의 디자인을 따르고 있으며, 가격은 무려 770만엔(약 8500만원)에 달한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비싼 전자시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매와 동시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1960년대  독일군의 다이버워치를 리메이크한 블랑팡
    1960년대 독일군의 다이버워치를 리메이크한 블랑팡
    ‘블랑팡’은 1953년 등장한 세계 최초의 다이버 워치 컬렉션인 ‘피프티 패덤즈’를 올해 리뉴얼하며, 1960년대 후반 선보인 ‘바라쿠다’ 워치를 리메이크했다. 해군 특수 부대에서 애용했던 피프티 패덤즈는 프로 다이버 기어 업체인 바라쿠다를 통해 독일 분데스마린에 시계를 납품했는데, 이 시계는 워치 컬렉터들에 의해 바라쿠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2019년 새롭게 등장한 ‘피프티 패덤즈 바라쿠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시계가 오래되어 발그레하게 색이 변한 올드 라듐 야고아 안료의 색을 슈퍼 루미노바로 재현했으며, 당대의 트로피컬 러버 스트랩도 적용해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뉴트로 아이템답게 300m 방수 케이스와 하이엔드적인 피니싱의 셀프와인딩 1151 무브먼트를 적용해 최신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태그호이어의 오타비아 컬렉션
    태그호이어의 오타비아 컬렉션
    ‘태그호이어’는 2017년에 이미 1966년의 ‘오타비아’를 리메이크해 시계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다. 해당 모델의 거대한 성공에 힘입어, 까레라에 흡수되었던 오타비아 컬렉션은 정규 라인업으로 편성되는 영광을 안았다. 올해 새롭게 출시한 ‘오타비아 아이소그래프’는 오타비아 컬렉션의 베이스 모델을 담당하고 있다. 42㎜ 지름의 케이스는 스테인리시 스틸 버전 5종과 브론즈 케이스 2종으로 출시되었고, 그라데이션 다이얼로 더욱 뉴트로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무브먼트인 칼리버 5에는 태그호이어 매뉴팩처가 개발한 아이소그래프 밸런스 스프링이 적용되었다. 이 스프링은 기존의 것과 달리 카본 콤퍼짓 소재로 개발되어 자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 데다 온도와 충격에도 내구성이 강하다. 때문에 고장이 적고, 더욱 정밀성이 향상되어 칼리버 5가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콘텐츠 소환된 개화기 의상·시트콤 레전드 ‘미달이’ 박지훈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유행은 유행에 뒤떨어지게 돼 있다(Fashion is made to become unfashionable).”

    1957년 미국 주간지 라이프(LIFE)에 실린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말이다. 유행은 계속 돌고 돈다. 새로운 유행으로 밀려나 한물 간 패션으로 인식되던 아이템은 어느새 다시 최신 트렌드로 돌아온다.

    ‘레트로’는 전통에 대한 향수나 추억에서 시작한다.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서 출발한다는 뜻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유행했던 이유도 그 당시를 살았던 세대에게 당시의 문화와 관심사·소품·음악 등을 재현하고, 거기서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트로’는 이미 과거를 알던 세대를 자극해 소비하게 만든다. 뉴트로가 레트로와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은 당시의 감성이나 문화에 대해 모르는 1020세대들이 소비한다는 점이다. 밀레니얼세대로 통칭되는 젊은층들은 옛것을 소비하되 자신들의 취향에 맞춰서 소비한다. 이런 소비 트렌드를 ‘뉴트로(New-tro)’라고 한다.
    익선동 카페거리에 벨벳 드레스를 입은 방문객들
    익선동 카페거리에 벨벳 드레스를 입은 방문객들
    ▶밀레니얼세대 저격한 ‘한국민속촌·익선동’

    최근 1020 사이에 ‘힙(Hip)한’ 데이트코스로 꼽히는 공간이 바로 한국민속촌이다. 주말이면 한복을 차려입은 커플이나 친구들과 단체로 찾는 놀이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30대 이상에게는 썩 내키지 않는 현장학습 장소로 기억되는 이 공간은 뉴트로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체험형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한국민속촌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방문객이 7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추억의 감성이 가득 담긴 콘텐츠가 자리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유행하던 라디오 DJ부스, 동네 골목길 세트에서 벨을 누르고 도망가면 주인아저씨가 쫓아오는 일종의 가상극(일명 벨튀아저씨), 흑백 사진관, 문방구 등 어른들에게 향수를 일으킬 만한 공간을 향유하는 이들은 이러한 문화를 모르는 젊은 세대가 다수다.

    다양한 복고문화 공간 중에서도 한국민속촌 입장객이 유독 두드러지게 증가한 이유는 과거의 공간을 현재로 옮겨와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에게 직접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추억의 그때 그놀이 축제의 메인 프로그램 벨튀체험이 바로 대표적인 예다. 벨튀체험은 골목길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는 관람객을 ‘이놈아저씨’로 분장한 민속촌 직원이 쫓아가 벌을 주는 콘텐츠다.

    뉴트로 감성을 통해 부활한 ‘익선동 한옥거리’도 좋은 예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 한복판의 대표적인 ‘노후지역’ 중 하나로만 인식됐다. 최근 익선동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개화기 의상’ 체험이다. 익선동의 오래된 한옥 건물 골목 사이에는 오버사이즈 정장과 벨벳 드레스, 챙이 넓은 모자 등 1900년대 개화기를 떠올리는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붐빈다. 방문객들이 사진을 SNS에 올리며 ‘포토존 명소’라는 입소문을 타자 민속촌이나 고궁에서의 한복 체험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듯이 익선동에는 개화기 의상 체험이 특색 있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특히 <미스터 션샤인> 등 개화기를 그린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익선동에 개화기 전문 의상 대여점과 사진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한복을 빌려 입듯이 개화기 의상을 빌려 입고 있다. 덕분에 익선동은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에까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반면 관광객과 회사원 등으로 북적이던 인사동은 최근 유동인구가 줄어들고 상권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조회수 340만회를 기록하고 있는 순풍산부인과 유튜브 영상
    조회수 340만회를 기록하고 있는 순풍산부인과 유튜브 영상
    ▶과거 콘텐츠에 입힌 뉴트로 감성

    최근 10대들의 SNS 채팅방에 심심치 않게 공유되는 소위 ‘짤방’이라 불리는 영상클립이 바로 10~20년 전 시트콤이다. <순풍 산부인과>(1998~2000)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하이킥> 시리즈(2006~2012)… 등은 최근 유튜브에서 다시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콘텐츠다. 대표적으로 1998~2000년 방영된 <순풍산부인과>에 등장하는 초등학생 ‘미달이’는 2009년 현재 초등학생들에게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 ‘SBS 나우’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이 인기를 끌어 <순풍산부인과> 클립의 누적 조회수가 5000만 건을 넘자 지난 4월 ‘미달이’ 김성은과 함께 특집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MBC의 <뉴 논스톱>, <지붕 뚫고 하이킥> 등의 콘텐츠도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MBC클래식’ 채널을 통해 15분여 한 회 방송분을 게시하는 동시에 ‘MBC엔터테인먼트’ 채널에서는 ‘오분순삭’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짧게 오려내 공유하기 쉬운 길이로 편집해 영상을 올린다. 이 과정에서 ‘짤방’을 만드는 데 유용하게 쓰일 자막을 새로 얹는 등 젊은 시청자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다. 과거 콘텐츠가 인기몰이를 하자 SBS는 최근 자사의 애칭 ‘스브스’와 ‘레트로’ 혹은 ‘뉴트로’를 결합한 이름의 ‘스트로’ 채널을 개설하고 과거 영상을 올리고 있다. 단순히 과거 영상을 다시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젊은층의 감성에 맞게 새로운 편집이 가미되기도 한다. ‘스트로’ 채널은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10년 전 ‘디바’ 영상을 올리면서 최근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교차편집을 적용한 것이 한 예다. ‘짤방’으로 돌기 유용한 길이로 편집하고 자막을 넣는 것은 물론 좋은 화질의 리마스터링 영상을 올려 콘텐츠 품질의 이질감을 줄이는 등 다양한 시도도 펼쳐지고 있다.
    한국민속촌의 명물이 된 ‘벨튀 아저씨’
    한국민속촌의 명물이 된 ‘벨튀 아저씨’
    ▶추억의 게임들 뉴트로 열풍에 재출시

    복고에 새로움이 가미된 뉴트로 문화는 기술적으로도 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몇 해 전부터 다시금 유행하기 시작한 LP 음반이 대표적인 예다. 기술의 발달로 초고음질의 음악을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에도 음원을 일부러 저품질 LP파일로 인코딩해 듣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갤러그, 테트리스 등 추억의 고전 게임이나 소위 레트로 게임을 즐기는 부류 중에는 오락실 기계, 애플 컴퓨터 등을 구비해 순전히 옛 방식을 고수하기도 하지만, 스마트기기로 수만 종의 고전 게임을 간편히 즐기는 뉴트로 방식도 지지를 얻고 있다. 국내 게임시장에서도 올해 초부터 같은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넥슨은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PC온라인게임 크레이지아케이드 IP를 모바일로 옮겨온 ‘크레이지아케이드비엔비M’을 출시했다. 아케이드 대전액션 IP가 모바일게임으로 등장한 사례도 눈길을 끈다. 조이시티가 출시한 ‘사무라이쇼다운M’과 넷마블이 사전예약을 진행 중인 ‘킹오브파이터즈올스타’는 모두 1990년대를 풍미한 SNK의 대표 IP를 모바일 RPG로 전환한 예다. 카카오게임즈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도 이런 시류에 동참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모바일 액션게임 콘트라: 리턴즈’를 출시했고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의 첫 번째 DLC로 e스포츠의 전설적인 목소리로 꼽히는 전용준 캐스터, 김정민 해설위원, 엄재경 해설위원의 목소리를 게임 내 콘텐츠로 담아내기도 했다. 게임업계의 뉴트로 열기는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한 개발사 관계자는 “30~40대가 추억을 지닌 게임들을 10~20대가 새롭게 접하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며 “게임개발사 입장에서는 폭넓은 층의 유저를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김창규 패션칼럼니스트 박지훈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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