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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 SPC그룹 회장 | ‘새로운 100년 플랜을 굽다’ 제빵왕 허영인의 끝나지 않은 도전
입력 : 2016.12.02 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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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까지 (SPC그룹의) 매출 20조원을 달성하고 전 세계 1만2000개 매장을 보유한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Great Food Company)’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10만 개 이상 창출해 세계 시장이 우리 청년들의 일터가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명실공히 한국 제빵사업을 이끌어온 SPC그룹의 ‘선장’ 허영인 회장의 새로운 비전은 ‘세계화’와 ‘청년일자리’다. 이미 치열하게 펼치고 있는 글로벌 사업을 통해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해 세계 시장을 우리 청년들의 일터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다.
가볍게 내놓은 빛깔 좋은 공염불(空念佛)이 아니다. SPC는 수십 년간 수없이 노크한 끝에 업계 최초로 세계시장을 개척하며, 제빵업을 수출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빵업은 대표적인 내수 산업으로 꼽히지만, 허영인 회장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제빵산업을 기술과 노하우, 브랜드 중심의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발전시켜 세계 곳곳에 진출했다.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맛의 신선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게 해 수출 가능 산업으로 만든 것이다.
“작은 빵집인 ‘상미당’에서 출발한 SPC그룹이 지난 70년간 품질제일주의와 창의적 도전을 바탕으로 성장해 세계 최고의 베이커리 기업이 됐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해주신 고객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SPC그룹은 70세 생일을 맞았다. 1945년 설립된 해방둥이이자 국내 제빵업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SPC그룹은 생소한 서양음식으로 여겨지던 빵을 대중화시키며 당시 가내수공업 수준의 머물렀던 제빵업을 국내에 처음으로 산업화시킨 주역이다.
긴 역사 속에 SPC의 거대한 변곡점은 파리바게뜨의 설립이다. 파리바게뜨의 등장 이후 SPC는 물론 국내 제빵 시장의 패러다임은 대량생산 제조업에서 프랜차이즈 산업으로 이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허영인 SPC 회장이 있다.
허영인 회장은 1983년 사업을 물려받으며 당시 삼립식품의 1/10 규모에 불과한 계열사였던 ‘샤니’를 모회사로부터 독립시키고 대표이사로 취임, 제2의 창업을 통해 국내 제빵산업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기존의 양산빵 사업 외에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프랜차이즈 형태의 새로운 사업을 도입한 것도 허영인 회장의 작품이다. 2세 경영자임에도 허영인 회장이 ‘창업형 기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로 외식산업의 다변화를 예상한 허영인 회장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1985년 세계적인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배스킨라빈스를 도입했다. 프랜차이즈 방식에 의한 아이스크림 시장은 당시에는 전혀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으나, 허영인 회장이 그 성장 잠재력을 예견하고 선점한 것이다.
특히 배스킨라빈스의 등장은 아이스크림의 고정관념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 아이스크림 하면 콘을 연상하는 것이 고작인 상황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 음료 등 다양한 아이스크림의 세계를 제시해 단순한 기호 식품이 아닌 ‘행복을 가져다주는(We make people happy)’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했다. 또한 31가지 다양한 제품을 골라먹는 재미를 전달해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SPC그룹은 1986년 프랑스풍 정통 고급 빵을 즉석에서 구워내 고객에게 제공하는 파리크라상을 서울 강남구 반포동에 개점했고, 1988년에는 파리바게뜨를 광화문에 가맹점으로 개점해 격조 높은 프랑스풍의 맛과 분위기로 갓 구워낸 신선하고 다양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 베이커리들의 이름이 고려당, 독일빵집, 뉴욕제과 등 ‘OO당’, ‘OO제과’ 일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파리바게뜨’라는 이름은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당시 회사 안팎에서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허영인 회장은 ‘파리바게뜨’라는 이름에 확신을 가지고 과감히 이를 밀어 붙였다.
당시 국내 베이커리들이 대부분 미국식 빵을 지향하고 있던 것과 달리 빵의 본고장인 정통 유럽 스타일의 빵을 소개하고 차별화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제빵국가인 프랑스의 정치, 문화 수도 ‘파리’와 프랑스빵을 대표하는 ‘바게트’를 소재로 삼아 세계 최고인 프랑스식 베이커리를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프랑스 파리 ‘샤틀레’점
허영인 회장의 뚝심이 이룬 세계화
국내에서 큰 성공을 이룬 상황이었지만 허영인 회장의 시선은 일찍이 해외시장에 쏠려있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이미 미국과 중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에 ‘파리바게뜨’의 상표등록을 완료했다. 2004년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2005)과 베트남(2012), 싱가포르(2012)에 잇따라 진출했다. 파리바게뜨는 중국에서도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며, 상하이·베이징·텐진·난징·청두 등 핵심도시를 중심으로 2016년 11월 현재 180여 개를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도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인 뉴욕 맨해튼에만 7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등 세계 시장에 K푸드 열풍을 이끌고 있다.
특히 2014년에는 파리바게뜨 브랜드의 지향점이자 빵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 진출을 선포했다. 그러나 당시 업계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라 평가절하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프랑스인들의 빵에 대한 높은 자부심으로 미국, 일본 등 제빵선진국의 기업들도 실패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프랑스 소비자들의 눈높이와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최상의 원료를 사용하고 회사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집중시킬 것을 주문하고, 제빵 장인들이 제품을 직접 만드는 ‘프리미엄 아티잔 불랑제리(Premium Artisan Boulangerie)’ 콘셉트를 선보였다. 결과적으로 파리바게뜨는 프랑스에서 ‘바게트’가 일 평균 7~800여 개씩 꾸준히 팔려나가며 까다로운 프랑스인들로부터 맛을 인정받고 있다. 당시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뿐 아니라 ‘르 피가로’를 비롯한 프랑스 현지 언론들도 한국 베이커리의 파리 진출에 주목해 보도하기도 했다.
SPC 측은 프랑스 시장 진출을 두고 허 회장이 ‘제빵의 길’에 뜻을 품고 경영에 뛰어든 지 45년, 프랑스풍의 정통 베이커리를 표방하며 ‘파리바게뜨’를 만든 지 26년 만에 이뤄낸 쾌거로 평소 “빵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낸 결과로 자평하고 있다.
2013년 매출 4조원을 돌파한 SPC그룹은 현재 국내 6000여 개 매장과 프랑스, 중국, 미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해외 5개국에 19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해외 파리바게뜨 매장은 250여 개에 달하며, 총 39개국에 상표를 출원하고, 29개국에 등록을 완료한 상황이다.
파리바게트의 전신이 된 ‘상미당’
R&D투자 통해 천연효모 상용화
허영인 회장의 품질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지금도 모든 제품을 직접 맛보고 점검한다. “나 스스로 빵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며 직접 미국제과제빵학교(AIB)에 입학해 공부하기도 했다. 이러한 열정은 품질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한 연구개발(R&D)과 기초연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이어졌다.
허영인 회장은 제빵업계최초로 1983년 정부 인증 식품기술 연구소를 만들었고, 2004년에는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열었다. 2009년에는 서울대학교 내에 SPC농생명과학연구동을 건립해 산학협력을 강화했다. 2012년에는 서울 양재동 사옥에 그룹 통합 R&D센터인 ‘이노베이션 랩(Innovation Lab)’을 설립했다. 이노베이션 랩은 매월 평균 500개 이상의 신제품을 개발하며, SPC그룹의 R&D 투자 규모는 연간 500억원에 달한다.
SPC그룹 경쟁력의 핵심은 이러한 적극적인 R&D 투자에서 비롯된 맛과 품질에 있다. 국내 최초로 무설탕 식빵 개발에 성공하고, 2016년 4월 서울대와 11년간 공동 연구 끝에 한국전통누룩에서 제빵용 토종 천연효모 발굴에 성공한 것은 기초연구분야에 끈기 있게 투자한 허영인 회장의 뚝심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제빵용 토종 천연효모의 발굴은 고유의 발효 미생물 종균이 거의 없는 국내 발효식품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허영인 회장은 2030년까지 R&D분야에 2조 6000억원을 투자해 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내 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나눔은 기업의 사명”
업 특색 살린 사회공헌 활동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사회공헌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어촌 지역사회,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고 나눔과 상생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계획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과의 나눔이 ‘기업의 사명’이라는 소신을 가진 허 회장은 사회공헌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업(業)의 특성을 살려 공유가치창출(CSV)을 위해 장애인 일자리는 물론 기업과 농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한 생산농가 직거래를 확대하는 등 SPC그룹의 사회공헌활동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전남, 경북, 경남, 강원 등 총 16곳의 시·군·자치단체와 농산물 거래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SPC는 사과, 딸기, 토마토, 찹쌀, 고구마, 마늘 등 14개 농산물을 직거래로 구매하고 있다. 2014년 1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행복한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하고 오는 2018년까지 1조원 규모의 농축산물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후 농산물 거래 지역은 20개, 품목은 22개로 확대됐다.
국내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 밀 살리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1984년 정부의 밀 수매 중단으로 밀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국내 밀 자급률은 1% 남짓으로 떨어졌다. 또한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2008년 우리밀 전문 가공업체 ‘밀다원’을 인수했다. 이후 군산, 김제, 해남, 강진, 부안, 하동 지역 등 주요 밀 생산지 지자체와 협약을 체결하고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던킨도너츠, 삼립식품 등을 통해 우리밀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제빵 특화 우리밀 재배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의령군, 의령군우리밀생산자위원회와 함께 ‘조경밀 특화재배단지 구축을 위한 행복한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했다. 영천 사과, 산청 딸기, 의성 마늘, 해남 고구마, 고흥 찹쌀, 익산 쌀 등 지역별 특화 농산물을 활용한 제품 약 200여 종을 파리바게뜨, 빚은 등 브랜드 매장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장애인 직원들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브랜드 ‘행복한 베이커리&카페’는 푸르메재단이 장소 제공과 운영을 담당하고, 애덕의 집 소울베이커리에서 직업교육과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SPC는 인테리어, 설비 및 자금 지원, 제빵교육 및 기술 전수, 프랜차이즈 운영 노하우를 지원하며 기업과 민간단체, 복지시설이 협력해 각자의 재능을 투자하는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을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12년 9월 종로푸르메센터 1호점을 시작으로, 서울시 인재개발원 2호점, 온조대왕문화체육관 3호점, 서울시립은평병원 4호점, 서울도서관 5호점,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 6호점이 현재 운영 중이다. 6개 매장에는 총 20명의 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일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2013년 한국경영학회가 선정하는 ‘제27회 경영학자 선정 경영자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5호 (2016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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