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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반려견
입력 : 2016.05.13 17: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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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0대 중반인 남자는 지난 겨울부터 퇴근길에 꼭 소시지 한 팩을 사들고 귀가한다. 와이프나 두 아들을 위한 게 아니다. 초인종 소리에 득달같이 뛰어와 반기는 ‘짱아’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말, 짱아의 아빠가 됐다… 여자는 30대 후반의 골드미스다. 나 홀로 가구의 전형인 그녀의 아침은 여느 맞벌이 여성과 다르지 않다. 함께 산 지 2년이 다 된 ‘토토’를 놀이방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짱아와 토토는 누구일까. 그와 그녀가 매일 안고 보듬는 반려견 이름이다.
그녀는 말한다. “2년 전에 친구 부탁으로 몇 달 맡아 키웠는데, 그냥 정이 들었어요. 그 뒤로 함께 지내는데, 제가 혼자 살다보니 평일엔 놀아줄 시간이 없잖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토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데, 알아보니 강아지 놀이방이 있더라고요. 두어 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놀이방에 보냅니다.”
비단 그와 그녀만의 일상이 아니다. 2016년 대한민국은 반려동물 사육 인구 1000만 명 시대를 맞았다. 2015년 총인구수가 약 5150만 명(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전산망 기준)이었으니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10가구 중 2가구에 해당된다. 그럼 어떤 동물을 반려동물(Companion Animal·伴侶動物)이라 부를까. 국어사전에 오른 ‘반려(伴侶)’란 ‘짝이 되는 동무’란 뜻이다.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해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이란 뜻의 ‘애완(愛玩)’과는 그 깊이가 다르다.
■ Part Ⅰ | 반려동물 붐업, 푹 빠진 1000만 명
한국 여자골프계의 여제라 불리는 박인비가 지난해 8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대회에 불참을 알렸다. 5주 연속으로 미국과 영국, 한국을 오가는 강행군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대회가 치러진 후 밝혀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반려견 ‘세미’가 위독했기 때문이다. 코커스페니얼과 진돗개의 믹스견인 세미는 박인비가 초등학교 시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뒤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보배였다. 무려 17년 동안 함께한 가족이었다. 투어생활을 시작하고선 부모님이 키웠지만 드라이버 헤드커버를 세미의 형상으로 바꿀 만큼 정이 두터웠다. 당시 박인비는 “세미는 강아지가 아니라 가족”이라며 “쉬는 동안 세미와 뒹굴뒹굴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최근 애견의류는 10만원대 이상 고가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엔 ‘김서룡 옴므’ ‘스튜디오K’ ‘S=YZ’ ‘HR’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한정판 애견의류를 내놓기도 했다.
경기도 분당에 살고 있는 프리랜서 이윤수 씨는 일주일에 두 번 자가용을 이용해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며 반려견 ‘에이미’와 함께 차에 오른다. 근무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에이미는 회사 근처 강아지 놀이방에서 지낸다. 비용은 1시간에 6000원(중형견).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는 놀이방은 종일 이용할 땐 비용이 4만5000원이다. 이씨는 “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놀이방에서 여러 다른 견들과 지내면서 사회성도 키우고 예절도 배우는 것 같다”며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는 금액”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의 변화된 일상에 대해 박상우 한국애견연맹총재는 “무엇보다 가족구조의 변화가 또 하나의 가족을 낳았다”고 말한다.
“이제는 3~4인 가구보다, 1인 혹은 2인 가구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출산율도 OECD 최저를 기록하고 있어요. 애완동물은 사람과 생활하는 동물이지만 반려동물은 사람과 정서를 교류하는 가족입니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반려동물이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사람의 ‘아래’가 아니라 바로 ‘옆’에 함께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결국 가족이 줄어든 그 자리를 반려견이 대체하고 있다고 봅니다. 항상 변함없는 애정을 주는 애견을 옆에 두고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지요.”
업계 관계자들은 “2000년대 들어 1인 가구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해 시장 규모가 성장했다”고 입을 모은다. 2014년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애완동물 사육에 가구당 지출한 월평균 비용이 사료와 간식비 5만4793원, 용품구입비 3만5528원 등 총 13만5632원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육비용이 높아지면서 이를 겨냥한 새로운 시장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애견연맹의 한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사랑이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사육에 불편한 사항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눈에 띄는 분야는 의료서비스다. 반려동물 전문 진료시장이 커지면서 동물병원도 전문화·대형화되는 추세다. 실제로 평일 오후에 찾은 서울 청담동의 이리온 동물병원은 규모만 작을 뿐 일반종합병원과 다를 게 없었다. 하루 평균 50여 명, 월평균 1500여 명이 찾는다.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장비는 물론이고 수술실과 집중치료실, 재활치료실까지 갖췄다. 그 외에 애견 미용실·놀이방·카페·호텔 등을 갖춰 반려동물에 관한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했다. 문재봉 대표원장은 “동물병원의 진료는 크게 예방진료와 질병치료로 나뉜다”며 “예방진료는 예방접종, 스케일링, 건강검진 등 사람과 비슷하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문화되고 있는 의료서비스의 비용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의료보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삼성화재에서 제공하는 ‘파밀리아리스 애견의료보험2’는 반려견의 질병과 상해와 관련한 비용에 대해 자기 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의 70%를 보상한다. 반려견으로 인해 발생한 배상책임 손해에 대해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롯데손해보험의 ‘롯데마이펫보험’은 개와 고양이가 대상이며 수술, 입원, 통원 치료비를 보장한다. 수술은 1회당 150만원, 입원 1일당 10만원 등 치료비 한도와 수술 2회, 입원 22일의 횟수 한도를 두고 있다.
반려동물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서비스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1~2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관리와 그 수요를 노린 것이다. 반려동물을 위한 놀이방, 호텔, 전문 TV채널, CCTV 등 다양한 시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려동물 호텔의 경우 1박에 3~4만원, 룸 형식인 경우엔 15만원대 등 시설이 다양하다. 여름철 휴가 시즌엔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소리도 들린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이라고 해서 반려동물을 그냥 부려놓는 게 아니라 철저히 관리해준다”며 “웹캠을 통해 주인이 24시간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반려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서비스는 강아지 놀이방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반려동물을 위한 TV도 화제다. KT가 송출하고 있는 ‘도그TV’ 서비스가 주인공이다. 반려동물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100만 시청견이 확보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반려동물의 건강관리 혹은 분실 우려 등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GPS칩이 내장된 센서를 장착해 비만도 체크를 통한 운동량 조사와 일정 영역 이탈 시 바로 신고해주는 센서, 반려동물과 놀아줄 수 있는 로봇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반려견 관련용품. 전용 물(3500원), 전용 우유(5000원), 수제간식(8000~1만원대) 등 종류가 다양하다. 수입제품인 밥그릇은 9만원이다.
영국 버밍엄이서 열린 세계명견경연대회 ‘크러프츠(Crufts) 2016’행사장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 삼성은 1993년부터 24년간 이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춘천시는 지역 중견기업인 더존IT그룹 계열사인 ‘동물과 사람’이 남산면 광판리 10만m²의 터에 애견 체험 박물관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올 상반기 착공해 내년 하반기 완공될 예정이다. 동물과 사람이 250억원을 투입해 건립하는 애견 체험 박물관에는 전 세계 주요 애완견을 볼 수 있는 실내외 전시관을 비롯해 체험관, 애견호텔, 견사, 훈련교육관, 상품 매장, 편의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동물과 사람은 박물관 건립과 연계해 한국애견연맹과 공동으로 지난 4월 10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제2회 강원펫페스티벌 및 세계애견연맹(FCI) 국제도그쇼를 개최했다.
이미 서울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과 상암월드컵공원에 ‘반려견 놀이터’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엔 보라매공원에도 문을 열었다.
큰손은 역시 40·50·60대 서울 강남지역의 한 백화점, 반려동물 관련 용품 숍에 고가의 외국 명품 브랜드가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는 “3000만원짜리 개집도 있다”고 귀띔이다. 20만원대가 주를 이뤘던 이 백화점의 매대엔 최근 고급화가 진행 중이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갤러리아백화점의 애견전문매장 ‘펫 부티크’는 문을 연 이후 매년 평균 20%씩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15만원 이상의 고가제품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50%나 늘었다. 이마트가 운영하는 애견전문매장 ‘몰리스 펫샵’도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10만원 이상 고가제품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6.2%나 증가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온라인 쇼핑몰에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40~60대 고객들의 클릭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큰손’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올 1분기에 G마켓의 반려동물용품 판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했다. 이 중 40대 소비자들의 구매율은 20%나 늘었다. 50대는 14%, 60대 이상은 전년 동기 대비 36%나 껑충 뛰어 올랐다. 반면 20대 소비자의 구매율은 5% 감소했다. 40대의 경우 같은 기간 구매한 연령층 중 32%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옥션도 마찬가지. 40대 고객의 판매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했다. 50대는 31%, 60대는 33%나 올랐다. 40대 이상 소비자들은 구매 비중도 높았다. 40대는 39%, 50대는 19%, 60대는 6%의 구매비중을 차지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8호 (2016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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