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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쟁 시대] 흔들리는 韓 에너지 안보 | 대외 의존 90% 자립도 최하위권인데…적폐 몰렸던 해외 자원개발 철수 급급
입력 : 2022.11.10 16: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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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서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 크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외 에너지 의존도는 90%를 넘는다. 석유는 나지 않고 미래 가치가 높은 광물 자원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우리의 에너지 안보 수준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인 셈이다.
우리의 대응책은 일단 가격 인상이다.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을 더 이상 정부 지원에 의해서만 감내하기에는 한계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국내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한전의 누적적자는 30조원이나 된다. 한전의 누적적자는 전기를 만드는 연료 가격을 비싸게 사오고 싸게 공급하는 구조 때문이다. 에너지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6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00일 글로벌 에너지 공급 위기 장기화의 국내 경제·에너지 부문 영향과 대응전략보고서’에서 “억제된 에너지 가격은 에너지 수요 증가와 에너지 소비 구조 왜곡을 유발하며 이는 또다시 에너지 수입 확대로 귀결된다”면서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에너지 수입비용 요소의 누적은 우리 경제에 장기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우인터내셔널 미얀마 가스전 전경. 정부와 한전이 내놓은 ‘전기요금 조정 및 요금체계 개선 방안’에 따르면 4인 가구 월평균 사용량(307㎾h·킬로와트시) 기준 전기요금이 2270원 인상된다. 4인 가구 기준 한 달 평균 전기요금은 4만4110원(부가가치세 및 전력산업기반기금 제외)에서 4만6380원으로 오른다.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의 경우 더 많은 요금을 부담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과 대형 쇼핑몰의 경우 ㎾h당 11.7원, 중소기업과 소형 점포 등의 경우 2.5원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전기료 인상이 이번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추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결국 이는 물가 상승을 더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전기요금 운영에 있어서 원가를 적절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정책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전례 없는 동시다발적 에너지 위기에 우방국이라고 해도 자국 우선주의를 취하고 있어 이 역시 해법은 될 수 없다. 한국의 최대 LNG 수입국인 호주가 가스 수출 제한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호주는 내년 가스 공급량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LNG 수출 제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이 러시아의 대안으로 호주에서 LNG 공급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호주가 실제 가스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하면 우리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른 산업에 쓰이는 원자재의 수입선 다변화도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이 9월 캐나다 광물업체 3곳과 코발트·리튬 공급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자리에 이례적으로 이창양 산업통상부 장관이 참석한 것이 정부의 원자재 수입선 다변화와 관련된 고충을 대변한다.
물론 정부도 자원 안보와 관련해서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개정)과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관리 기본법, 자원안보특별법(이상 제정) 등 공급망 3법의 제·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자원안보특별법이 현재의 에너지 위기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특별법은 국가자원안보 컨트롤타워를 설립해 선제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위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또 핵심자원에 기존 석유, 가스, 석탄 외에도 최근 가치가 높아진 핵심광물들도 포함시키며, 석유·가스·주요 광물들에 대한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한다. 민간 중심의 해외 자원 개발 산업 생태계 회복에도 적극 나설 전망이다. 민간 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 진출에 대한 융자와 공공기관 지원도 확대할 예정이다. 위험성이 높은 부문에 투자할 경우 공공기관과 위험 분담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정치권은 여야 간 치열한 공방 속에서도 에너지 위기와 관련해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5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대해 각종 세금 우대 제도를 도입하는 ‘해외자원개발 투자에 대한 조세특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골자는 국내 기업이 해외 자원 개발을 위해 다른 나라에 법인을 세웠을 경우 국내 법인과 동일하게 통합투자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5년 단위의 자원안보 기본계획 수립 및 자원안보위원회 설립 등을 골자로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차전지 등 친환경 에너지 생산의 필수 소재로 사용되는 ‘녹색광물’의 확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공급망 확보 전략도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우리 정부도 다가오는 겨울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경제 충격을 선제적으로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유럽처럼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나설 예정이다. 건물 난방온도를 기존 18℃에서 17℃ 낮추는 등 모든 공공기관에 에너지 10% 절감 이행 계획을 마련토록 하고, 30개 기업과 에너지 효율혁신 협약도 체결했다.
석유 공급 줄어들면 언제든 에너지 위기글로벌 탈탄소 움직임 속에 관심이 뜸해지는 듯했던 석유와 가스는 러-우크라 전쟁발 글로벌 에너지 대란 속에 다시 뜨거운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로 가는 길이 아직 먼 것을 감안하면 석유와 가스 같은 전통 화석연료에 대한 자립도 역시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여전히 석유와 가스의 대외의존도는 높고, 설상가상으로 자원개발률까지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개발률이 추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 자립도가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석유공사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석유는 자원개발률이 2015년 9.6%까지 증가하다 지난해 6.5%까지 내려갔다. 가스도 2016년 37.3%까지 올랐던 자원개발률이 지난해 21.2%까지 감소했다. 이는 일본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2020년 일본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은 40%를 넘는다. 이는 새로 시작되는 해외 사업은 줄어들고 있고 종료사업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1년 해외자원개발보고서를 보면 2011년을 기점으로 신규사업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신규사업은 총 47건으로 2011년 한해 신규사업(41건)에 그치는 숫자다. 이유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MB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부실로 전락함에 따라 생긴 후폭풍이다. 석유·가스 공사는 MB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과감한 해외 투자에 나섰으나 투자 실패로 자본잠식 위기에 빠져 있는 상태다. 지난 10년간 신규 사업들이 추진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현재의 자원 대란에 재평가 기류도 있지만, 당시 투자 실패로 낙인찍힌 사업들의 숫자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석유공사가 해외 투자 중인 곳은 총 27곳. 이 중 생산에 들어간 18곳 중 투자비 대비 회수액이 많은 곳은 베트남 11-2, 베트남 15-1, 페루 8, 예멘 LNG 등 4곳밖에 없다. 그런데 이 중 MB 정부 당시 투자된 곳은 없다. 현재도 공사는 부실을 떨치기 위해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최근 영국 자회사인 다나 석유의 네덜란드 자산을 해외 민간 원유·가스 탐사업체인 왈도프 프로덕션에 매각하기로 했다.
다나 석유는 석유공사가 2010년 29억달러에 적대적 인수를 한 곳이다. 지금까지 50억달러 가까이 투자됐다. 하지만 다나 석유는 이익을 낸 것보다 손실을 본적이 더 많았다. 당시 고평가 인수 논란도 있었다. 현재 장부가액은 8억5600만달러로 투자 대비 초라한 수준이다.
2011년 미국 석유회사로부터 지분 24%를 인수한 이글포드 광구도 현재 매각 대상에 올라있다. 2018년부터 매각을 시도했지만 아직 팔리지 않고 있다. 이글포드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알짜 투자처로 꼽힌다. 역시 자원개발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 캐나다 하베스트도 매각 대상에 올라있다. 2009년 석유공사가 인수를 했고, 지금까지 40억달러가량이 투자됐다. 하지만 회수액은 3400만달러에 그친다. 인수 후 이 사업 역시 손실을 면치 못했고 ,최근 5년 새 입은 손실만 1조원을 훌쩍 넘긴다.
베트남 남동부 해상에서 약 50㎞ 떨어진 쿨롱(Cuu Long) 분지에 위치한 베트남 15-1 광구의 현지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미 매각된 곳도 있다. 지난해 2008년 1조2000억원에 매입한 미국 멕시코만 앵커해상유전이 올 7월 매각됐다. 전체 4개의 광구 중 3개가 매각됐는데, 나머지 한 곳도 매각에 들어갈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익이 나고 있는 곳 중에서는 베트남 15-1 광구가 눈에 띈다. 23억3700만달러를 투자해 35억달러를 회수했다. 베트남 11-2 광구의 경우 회수액(7억9800만달러)은 투자비(7억6700만달러)가 넘었지만 수익성 악화로 최근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생산량이 크게 줄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가스전 개발사업도 사정은 석유와 마찬가지다. 2020년 말 기준 총 21곳에 100억520만달러가 투자됐지만 39억달러를 회수하는 데 그치고 있다. UAE 알 다프라 사업지의 경우 아직 회수 금액은 미미하지만 사업 기간이 2042년까지여서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다. 가스공사 역시 개발 부실을 떨쳐내기 위해 매각에 나서고 있는데, 자원외교 당시 추진됐던 이라크 아카스, 인도네시아 크룽마네, 캐나다 혼리버와 우미악 4군데가 현재 매각 대상에 올라와 있다.
이라크 최대 유전 투자로 관심을 모았던 아카스의 경우 총 투자액은 4억2000만달러, 하지만 회수액은 4300만달러에 그친다. 손실 규모는 한화로 5000억원을 넘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상광구 탐사사업인 인도네시아 크룽마네는 2019년 매각을 추진했으나 한 차례 실패했다. 올해 다시 매각을 추진 중이다.
국내 최초의 북극권 자원 개발 사업으로 관심을 모았던 캐나다 우미악은 2200만달러가 투자됐지만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한 상태로 사업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6억7000만달러가 투자된 캐나다 혼리버의 경우 2016년부터 생산에 들어갔으나 높은 개발원가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혼리버 역시 투자비 회수는 현재까지 0원이다. 매각 대상에 올라 있지는 않지만 자원외교로 추진된 사업 중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곳은 현재까지 별로 없다.
물론 가스공사의 투자 중 성공한 사례도 있다. 현재 해외 가스전 중 이익이 나는 곳은 미얀마 2곳, 카타르, 오만 등 총 4곳이다. 이 중 카타르 라스 가스 사업(LNG)과 오만 LNG 투자는 가스공사가 해외 투자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다. 특히 두 사업은 속된 말로 ‘대박’을 쳤다. 1999년부터 시작된 라스 가스 LNG 사업에서 공사는 1700만달러를 투자해 12억4600만달러를 회수했다. 사업 기간이 아직도 한참 남아 있어 이익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시작된 오만 LNG 사업에서도 공사는 200만달러를 투자해 2억7600만달러를 회수했다. 이 사업은 2025년에 끝난다.
2001년 시작된 미얀마 A-1, A-3 사업도 성과가 좋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공동 투자한 사업으로 총 3억6500만달러가 투자됐고 2020년 말까지 회수액은 5억7300만달러다. 모자비크 Area4 가스전도 대를 모으고 있다. 아직 회수액은 없지만 사업기간이 2054년까지여서 여전히 기대감이 크다. 초대형 가스전이 발견된 상태다. 이처럼 석유와 가스의 해외 투자 성과가 썩 좋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국제 정세 불안 속에 당분간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석유·가스발 에너지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정권 바뀌더라도 일관된 공급망 관리 필요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이란 글로벌 트렌드 속에 석유 공급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하지만 석유의 수요가 줄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10년 안에 심각한 석유 공급망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더 큰 문제는 우리의 경우 자원외교의 실패로 이에 대처할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석유 공급과 관련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지만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부분이어서 쉽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관련 공기업 정상화부터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김연규 한양대 에너지거버넌스센터장도 역시 한 토론회에서 “정부와 공기업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통해 해외민간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수입선 다변화 정책과 관련해선, 전문가들은 “그나마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급망 관리 대책”이라면서 “하지만 장기적 대책은 될 수 없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되게 지속되는 자원 관리 정책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