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전쟁 시대] 에너지 전쟁 현황과 배경은 | 우크라 전쟁으로 촉발된 유럽發 가스 위기, 사우디 가세로 자원무기화 설상가상

    입력 : 2022.11.10 14:44:29

  • 지난 9월 말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해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에서 천연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해저를 지나는 구간 3곳에서 해저 가스관이 폭발되면서였다. 민감한 시기에 터진 이 폭발을 우연적 상황이라고 보는 이들은 없었다. 당사자들인 러시아와 유럽은 서로를 향해 사보타주(파괴 공작)라는 의심을 감추지 않았다.

    노르트스트림 폭발의 파장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유럽으로 가스가 공급되는 주된 통로인 이 가스관이 손상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어려워진 유럽연합(EU) 내 에너지 사정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2020년 기준 유럽에서 사용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비중이 41.1%에 달한다.

    물론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이 러시아 소행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부인한다. 하지만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이 러시아의 소행이라는 의심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러시아를 빼고는 이 폭발사건에서 얻을 이익이 있는 국가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올 6월부터 ‘노르트스트림1’의 유럽 가스 공급량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기 시작했고, 올 9월에는 아예 밸브를 잠그는 등 유럽을 향한 자원의 무기화 움직임을 노골화했다. 방공망 구축, 대공미사일 등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유럽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G20 정상회의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G20 정상회의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로 인한 유럽의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30유로 수준이던 천연가스 가격이 현재 190유로 선에서 거래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유럽 최대 러시아산 가스 수입업체인 유니퍼가 급등한 가스값을 감당하지 못하자 독일 정부가 아예 국유화해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각종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데 필수적인 기본 요소가 에너지인데, 이것이 부족해지자 각국은 경기 침체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놓였다.

    유럽 경제대국 독일의 경우 올해 국내 총생산이 1.4%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특히 내년은 0.4%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에서 1%로 낮췄다. 영국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3%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경제 전망과 관련해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가 경제·사회 위기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뿐만 아니다. 미국도 러시아의 자원무기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NN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천연가스를 사용해 난방하는 가구의 올겨울 에너지 비용이 전년 대비 평균 200달러(약 28%) 증가한 931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가구의 절반이 천연가스를 사용해 난방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지울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을 더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미국의 오랜 동맹 사우디아라비아의 돌발 행보다. 사우디는 전 세계가 에너지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돌연 석유 감산 이슈를 돌연 꺼냈다. 사우디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23개국으로 구성된 OPEC+가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의 석유 감산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복병이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사우디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감산의 이유는 경기 침체 우려로 원유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금리 인상을 통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행보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유 감산은 석유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러시아발 원자재 인플레이션을 오히려 더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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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같은 사우디의 행보는 전 세계 에너지 혼란을 부추길 수 있어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싫을 이유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와의 대리전 성격도 띠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사우디의 행보는 친러시아적으로 비치기에 충분한 것이다. 또 사우디 역시 글로벌 자원의 무기화 행렬에 슬쩍 끼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러시아는 OPEC+의 감산 소식에 곧바로 “환영한다”고 했고, 사우디와 석유공동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있다고도 했다.

    미국은 이런 사우디를 향해 분노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관계를 재검토하겠다”는 압박 속에, 자국 기업들에게 사우디에서 벌이는 사업의 확장을 자제하라는 권고까지 검토하고 있다. 의회 차원에서도 사우디에 판매하는 무기를 축소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사우디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사우디는 자국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소한 사우디계 미국 시민권자인 사드 이브라힘 알마디(72)에게 징역 16년 형을 선고했다. 로이터통신은 “미 동맹이 미국 시민을 억류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OPEC+의 원유 감산 조치에 대해 “세계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분명히 우리가 직면한 여건하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각국 ‘4차 산업시대 석유’ 리튬 확보 사활

    2022년 벌어지고 있는 자원 무기화 흐름이 간단치 않은 것은 미국 등 다른 강대국이라고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국 안보에 이익이 된다면 지렛대로 자원을 활용하는 선택을 어렵지 않게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산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큰 폭으로 인상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가해지는 첫 원자재 제재로, 알루미늄의 주요 생산국인 러시아에게 타격을 주기 위함이다. 알루미늄은 자동차, 스마트폰 등 첨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실제 러시아산 알루미늄에 대한 제재가 단행된다면 세계 산업계에 미칠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동시에 미국도 자체적으로 자원 안보망을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바이든 정부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핵심 광물자원 공급망 확보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골자는 자국 내에서 핵심적인 광물의 채굴 생산 재활용 등을 확대하는 것이다. 글로벌 산업의 핵심 광물로 떠오르고 있는 리튬의 경우 미국도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의존도가 높다. 이같은 미국, 유럽, 러시아, 중동 간의 자원 무기화 흐름에서 한발 비켜 서 있는 듯이 보이는 중국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국도 자원안보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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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올해 경제 성장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로코로나 정책을 강하게 펼쳤는데, 그 결과 에너지 소비가 크게 줄었다. 현재 중국 정부가 발표한 자국 내 석유·석탄·가스의 매장량은 각각 18년·50년·30년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해 에너지 소비가 준 것을 감안할 때 관련 자원이 해외 수입 필요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등 해외에서 석유뿐만 아니라 석탄, 가스 등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천연가스 수입선 확보를 위해선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와 중국 본토를 연결하는 PNG 수송망을 확충했다. 쓰촨성, 신장, 네이멍구 등 자원 매장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석유·가스 탐사에도 주력하고 있다.

    석유·가스 이외의 광물자원 확보 전략도 꾸준하고 지속적이다.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광물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개발 진척이 더딘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해왔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시진핑 주석의 트레이드마크인 일대일로의 핵심 거점으로 포함되며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를 중국 기업들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것이다.

    중국은 4차 산업 시대의 석유라고 불리는 리튬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은 7%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리튬 강국이다. 이는 배터리에 쓰이는 리튬화합물 생산국 1위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리튬의 최대 매장지는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 중남미지만 여기서 생산된 리튬으로는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지 못한다. 제련 단계를 거친 후 배터리에 사용될 수 있는 고순도 리튬 화합물이 돼야 하는데, 중국이 이 시장을 꽉 잡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행보가 계속 주목을 받는 것은 중국이 장악한 리튬을 활용해 언제든 또 다른 자원의 무기화 전략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산업 선진국들이 리튬의 독자적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전기차 시대에 앞서 나가는 우리의 리튬 확보는 미래 성장동력 지속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시급한 과제지만,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배터리 핵심 원자재 공급망 분석: 리튬’ 보고서를 보면 대중국 리튬 수입 비중은 2020년 47%에서 올해 1~7월 기준 64%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월 체코의 수도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서 수 만명이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한 대책 등을 촉구하며 반정부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9월 체코의 수도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서 수 만명이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한 대책 등을 촉구하며 반정부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자원의 무기화 흐름은 강대국뿐만 아니라 약소국들에서도 나타난다. 아세안의 자원 부국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요성이 커진 니켈의 세계 1위 매장국이다. 자연스레 세계 각 기업이 인도네시아를 주목했는데, 이 국가는 2020년 니켈 원광의 수출을 금지해버렸다. 자국 니켈을 쓰고 싶으면 채굴 단계에서부터 참가하라는 이유에서였다. 인도네시아는 알루미늄의 원재료인 보크사이트의 수출 금지 카드도 꺼내들었다. 전기차 필수 소재로 거듭나고 있는 알루미늄은 보크사이트 제련을 통해 얻게 되는데, 인도네시아는 보크사이트 세계 6번째 매장국이다.

    리튬의 주 생산지가 몰려있는 중남미 국가들도 자원 보호주의 경향을 짙게 띠고 있다. 칠레는 리튬 생산과 판매에 민간기업을 배제하고 대신 국영기업이 전적으로 맡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멕시코도 리튬 생산을 담당할 국영기업의 설립방침을 밝혔다. 볼리비아는 이미 리튬 산업을 국유화했다. 일본은 올 5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해 반도체나 희토류 등의 주요 광물 등을 특정 중요 물자로 지정해 관리 감독 강화에 나섰다.

    에너지 수입국 대응에 골머리

    현 글로벌 에너지 대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EU의 에너지 가격 급등은 이미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 독일과 프랑스는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내년 전기료를 10배 이상 인상할 예정이다. 영국은 10월부터 연간 에너지 가격 상한을 3549파운드(약 570만원)로 올리려다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물러섰다. 예정대로 올렸다면 기존보다 80% 인상되는 수치였다. 그래도 영국은 가구당 에너지 지불액이 1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뛰었다.

    스페인의 전기요금도 1년 전에 비해 5배 정도 폭등한 상태다. 이에 각국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공급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기에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일단 EU 각국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나가고 있다. 손쉽게 접근하는 것이 에너지 절약이다. EU는 모든 27개 회원국이 피크시간대 전력 사용을 5%씩 의무적으로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각 회원국이 자발적으로 10%까지 전력 소비를 줄이기로 했다. 프랑스의 경우 정부와 공공기관의 건물 내부 온도를 19℃ 아래로 제한하고, 화장실에서 온수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국가 소유 운영 건물의 연간 전략 사용량을 기존 대비 10분 1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가정에서도 실내 온도를 19℃ 이하로 유지하고 온수 가열기 온도는 55℃ 이하로 낮추라고 권고했다.

    독일도 문화재나 공공 분수대 등의 전원을 차단하는 등 일찌감치 에너지 절감 조치에 나선 상태다. 이탈리아는 프로축구 리그까지 나서서 경기장 조명 소등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한국전력이 10월부터 전기료를 인상함에 따라 국민들의 에너지 요금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전력이 10월부터 전기료를 인상함에 따라 국민들의 에너지 요금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기료·가스비 인상 도미노… 재생에너지 정책 드라이브

    이와 함께 유럽연합은 횡재세 도입 계획도 가지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 기업으로부터 횡재세를 걷어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들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재생에너지 정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가스와 전력 시장을 디커플링하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EU 회원국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벨기에의 경제 싱크탱크 브뤼겔에 따르면 EU 국가들은 지난 1년간 전기료 급등에 따른 피해 보상을 위해 2800억유로를 썼다.

    아시아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본의 지난 8월 도시가스요금은 전년 동월 대비 26.4%가 오르며, 무려 41년 3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전기요금도 21.5%나 올랐다. 이에 8월 일본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같은 달 대비 2.8% 급등해 30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전기요금과 도시가스비를 지원키로 결정한 상태다.

    인도네시아·태국 등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는 동남아 국가들도 최근 글로벌 에너지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9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30% 이상 올렸는데, 국제유가 상승에도 보조금으로 가격을 유지하다 재정 부담이 커지자 결국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9월 물가상승률은 2015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통계청(BPS)에 따르면 9월 자국의 물가상승률은 연 5.95%로 나타났다. 유원노 통계청장은 “연료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운수부문 비용 상승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태국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러-우크라 사태 발발 초기부터 에너지 관련 지원책을 펴왔지만 재무건전성 악화로 결국 손을 들었다. 태국 역시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동남아 부국 싱가포르는 전 가구에 1조5000억원 규모의 생활보조금을 지원키로 했다. 싱가포르 근원물가지수는 지난 8월 5.1% 상승해 2008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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