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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최초로 임금공유제 첫발…윈-윈 선택한 SK하이닉스 노사
입력 : 2015.07.06 1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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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이자 모범 이번 SK하이닉스 노사(勞使)의 임금 공유 프로그램은 산업계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상생모델이다. 노 측이 먼저 올 임금인상분(기본급의 3.1%)의 10%를 협력사 직원들과 나누기로 했고, 사 측도 이에 상응하는 금액을 내놓으며 결과적으로 임금인상분의 20%를 지원하게 됐다. 협약 덕분에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실제 임금인상분은 2.8%에 그쳤다. 하지만 협력사 직원 4000여 명이 임금 인상, 복리 증진 등의 혜택을 입게 됐다. 지난해 연간 급여가 1조6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약 66억원이 협력사에 지원될 예정이다.
노사의 ‘통 큰 결단’을 이끌어 낸 주역은 김준수 청주공장 노조위원장과 박태석 이천공장 노조위원장이다. 이미 협약은 진행됐지만 사실 첫걸음을 떼기는 쉽지 않았다. 올 임금인상률(3.1%)이 지난해(7.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천 대의원회 투표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협상안에 대한 찬성률이 82%나 됐다. 대의원회를 거친 청주 노조원들의 찬성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타결이 알려진 뒤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는 “함께 일하는 분들과 나눈다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결정은 처음이지만 뿌듯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화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실질적인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했다”는 박태석 이천공장 노조위원장은 “가진 사람이 조금씩 양보하고 나눠주는 SK하이닉스의 사례가 기폭제가 돼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장비 세정이나 물류처럼 어렵고 힘든 일을 대신하는 협력사 직원들의 처우가 계속 본사 직원들의 50~60% 수준에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며 말문을 연 김준수 청주공장 노조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여건이 어려워 시행하지 못했는데, 지난해 최고 수준의 실적을 올리고 성과급을 받은 김에 ‘올해 바로 실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영업이익 5조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1983년 설립(당시 현대전자) 이후 줄곧 워크아웃과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고, 2008년엔 순손실이 4조원을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매출이 흑자로 돌아서며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게 된 건 불과 2년 전부터다. 업계에서 “어려움을 알아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채권단 관리, 해외 매각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느끼게 된 건 노사는 공동운명체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노 측의 이러한 상생 노력에 사 측도 적극 반응했다. 현순엽 기업문화본부장은 “임금공유를 매년 노사 합의로 결정하면 일시적인 지원에 그칠 수 있다”며 “올해 규모만큼은 앞으로도 협력사 직원에게 매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16일 이천 SK하이닉스에서 열린 ‘노사 사회적 책임 실천 협약식’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태석 SK하이닉스 이천노조위원장, 박영진 케이텍맨 파워 대표, 동일범 삼구INC 대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 김현주 SMC엔지니어링 대표, 신동진 토스 대표, 김준수 SK하이닉스 청주노조위원장
협력사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원도급업체와 하도급업체 간 임금 격차는 국내 노동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그동안 정부가 나서서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이끌었지만 이렇다 할 성공 모델이 없었다. 실제로 노사정위원회에서 올 3월까지 해법을 찾기로 논의했던 우선과제는 동반성장과 비정규직 이슈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 통상임금 개선 등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문제’, 사회보장제도 사각지대 해소 등 ‘사회 안정망 정비’였다. 하지만 타결에 실패했고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 결렬을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일부 기업이 협력사와 함께하는 성과공유제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SK하이닉스처럼 월급쟁이의 월급을 나누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SK하이닉스의 동반성장 노력이 처음은 아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14 동반성장지수’를 보면 ‘우수’등급이 선명하다. 회사가 주도적으로 협력업체들의 성장을 지원한 데 따른 결과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위탁한 기술특허 240건 가운데 41건을 15개 중소기업에 무상 이전하는 ‘기술 나눔 협약’을 했다. 당시 양도된 기술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등록된 반도체 장비·소자 우수 특허로 대기업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SK하이닉스는 2008년 동반성장을 전담하는 상생협력팀을 설립한 이후 협력사에 기술과 재무·특허 등을 지원해 왔다. 매년 한번씩 ‘동반성장 협의회 정기총회’와 ‘동반성장 데이’를 개최해 협력업체들과 선행 기술로드맵이나 윤리경영 방침, 동반성장 정책 등을 공유하고 있다. 동반성장 지원은 2차 협력사까지 확대됐다.
2015년 SK하이닉스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 내용 1. 임금공유제 실시
- 직원들이 임금인상률 중 10%인 0.3%를 내고, 회사가 같은 규모인 0.3%를
매칭그랜트로 내 약 66억원을 협력사에 지원
-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닌 도급비 상승에 따른 비용 상승으로 매년 반영
2. 노사협력 임금체계 개편 위원회 설치
-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의 시행방안을 적극적으로 수립하고 산업구조 변화에 맞는
통상임금과 생산직의 임금 및 직급체계 개편을 위해 상시 위원회 운영
3. 도시-농촌 상생협력 프로그램
- 직원들에게 지역 농가의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매년 복지포인트를 제공해
지역 농가에 연 100억원 규모의 안정적인 소득 보장
- 지역사회와 직접적인 동반성장 도모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8호 (2015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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