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00여 명 떠난 KT, 그 후…“판도라 상자 열었더니 고난 끝에 희망이 보였다”

    입력 : 2014.06.12 13: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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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떤 이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했고 다른 이는 “더 이상 내놓을 게 없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지난 1월 KT의 새로운 수장이 된 황창규 회장에 대한 세간의 왈가왈부다. 그도 그럴 것이 “통신을 중심으로 융합서비스를 선도해 1등 KT를 실현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남겼지만 이후 3개월여 동안 공식적인 반응이 없었다. 그에 비해 전임 이석채 회장이 남긴 생채기는 생각보다 깊었다. 내 사람이라고 들어앉힌 이들이 우후죽순 같았고 무궁화 3호 위성, 케이블 방송과의 날선 대립, 이동통신 포화시장에 드리운 적자의 그림자까지 무엇 하나 녹록한 구석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황 회장의 입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지난 5월 20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를 가진 황 회장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니 문제도 많고 고민도 많았다”며 “그 끝에 희망이 보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과연 KT란 판도라 상자 안의 고난과 희망은 무엇일까.



    그 후… 정공법·속전속결 100여 명의 기자가 모인 간담회 현장은 입구부터 북적였다. ‘KT, 대한민국의 융합형 GIGA시대를 열다’란 주제로 진행된 행사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을 연상시켰다. 각본대로 움직였지만 삼성의 ‘언팩’을 벤치마킹한 듯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첫 순서는 올 들어 터진 KT의 악재 퍼레이드였다. 누가 묻기도 전에 작정이나 한 듯 먼저 고백하고 나선 것이다.

    영상으로 편집된 내용은 지난 2월 계열사 KT ENS 직원이 연루된 3000억원 규모의 사기 대출 사건과 3월 1200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황 회장 취임 직후 KT는 지난해 말 기준 당기순손실이 603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창사 이래 최초의 적자였다.

    연이어 앞선 두 사건이 불거지며 기업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황 회장도 “예기치 않은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며 “이곳에 온 후 45일간 밤에 잠을 못 잤다. KT ENS 이슈는 3주간 계속됐는데, 대국민 사과하는 영상이 이후에도 계속 나와 우리 애들에게…”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삼성 출신 회장의 취임 후 KT는 서서히 개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정공법’, ‘속전속결’이란 말이 돌았다.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땐 이튿날 황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고, 당기순 손실에는 회장이 먼저 기본급 30%와 회복 기미가 보일 때까지 장기 성과급을 반납한다고 선언했다. 똑같은 사건에 사장을 내보내 대국민사과를 시켰던 전임 회장과는 확실히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회장 취임 당일에는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전체 임원의 27%를 축소하고 지원부서의 임원급 자리를 반이나 줄였다. 칼바람은 매서웠다. 전 회장 시절 영입된 임원들이 하나둘 옷을 벗었다. 표현명 T&C부문장, 서유열 커스터머부문장,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 김홍진 G&E 부문장 등 사장급 인사와 옛 정보통신부 출신 서홍석 대외협력실장, MBC 출신 윤정식 CR본부장과 김은혜 커뮤니케이션실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동생 오세현 전무, 오 시장 시절 정보화기획단장을 맡았던 송정희 부사장, MB정부 행정관 출신 장치암 상무가 회사를 나갔다.

    약 일주일 후 문재철 KT스카이라이프 사장, 이희수 KT렌탈 사장, 이강태 BC카드 사장, 이상홍 KT파워텔 대표 등 계열사 대표에겐 해임이 통보됐다. 반면 한동훈 경영기획부문장, 임헌문 커스터머 부문장, 전인성 CR부문장 등 KT를 떠났던 인물들이 다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직원들의 신망이 높은 통신전문가를 주요 임원으로 전격 발탁해 사내 신뢰를 강화했다. 황 회장이 직접 이들을 만나 복귀를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이 외에도 남규택 마케팅부문장, 신규식 G&E 부문장, 윤경림 미래융합전략실장, 이동면 융합기술원장, 박정태 윤리경영실장 등이 KT 출신 경영진이다. 회장 직속기구인 9개 사업 부문 중 8곳을 KT 출신이 차지했다. 삼성 출신 임원들도 중용됐다. 지난 2월 초 김인회 전 삼성전자 상무를 재무실장(전무)으로 영입하더니 최일성 전 삼성물산 상무는 KT에스테이트 대표로, 서준희 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은 BC카드 대표, 최성식 전 삼성생명 상무는 경영진단센터장으로 임명했다.

    ‘전임 회장처럼 또다시 자기사람 심기 아니냐’는 언론과 재계 일각의 시선에 황 회장은 “사람을 쓸 땐 첫째도 전문가, 둘째도 전문가, 셋째도 전문가”라며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고 당당히 맞받아쳤다. 통신업계 고위 인사는 “조직 문화를 바꾸기 전에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구조조정과 개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방만한 경영으로 저하된 사기와 경쟁력의 회복을 위해 꺼내든 카드는 ‘하나 된(Single) KT’의 실현이었다. 지난 3월 임원 270여 명이 참석한 ‘1등 KT 결의대회’에서 황 회장은 “모든 의사 결정과 실행에 부서 간의 벽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부서는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부서이기주의가 있다면 그 벽과 함께 책임자도 부술 것”이라며 ‘싱글 KT’로 거듭날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이 같은 주문은 계열사 대표들에게도 이어졌다.

    지난 4월 ‘2014년 계열사 1등 전략회의’를 통해 계열사 사장단과의 첫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한 황 회장은 “싱글 KT, ICT 기반 시너지 창출을 통해 전 계열사가 1등 KT 실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역설했다. 또한 “KT와 전 계열사가 한몸처럼 ‘싱글 KT’가 돼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며, 계열사가 아닌 그룹 CEO의 시각으로 전체가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체질 개선 작업은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현장 인력을 보강해 영업력 강화에 집중했다. 지난 4월에는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창립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8320명의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KT 측은 “매년 약 7000억원의 인건비 절감효과를 예상하고 있다”며 “특히 고비용 저효율의 인력구조를 효율화하고 젊고 가벼운 조직으로 체질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명예퇴직 신청이 끝난 지난 4월 24일 전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수십 년간 회사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떠나게 돼 KT의 수장으로서 가슴 아프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퇴직하시는 분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힘내 일어나자.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은 버리고 1등 KT가 되도록 다 같이 최선을 다하자”고 임직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기자간담회에 황창규 회장과 함께 참석한 임원진. 앞줄 오른쪽부터 황 회장, 김철수 고객가치혁신 CFT장, 정준수 기업문화실장, 윤경림 미래융합전략실장
    기자간담회에 황창규 회장과 함께 참석한 임원진. 앞줄 오른쪽부터 황 회장, 김철수 고객가치혁신 CFT장, 정준수 기업문화실장, 윤경림 미래융합전략실장
    그 후… 제2의 황의법칙 취임 100일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황 회장은 “기가인터넷과 미래 융합 서비스로 반드시 글로벌 1등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곤 “제가 직접 이끌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현재의 인터넷보다 최대 10배 빠른 기가(Gbps)급 통신 속도를 활용해 초고화질의 미디어 콘텐츠 등 체감형 서비스가 제공되는 융합형 기가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2002년) 이후 12년 만에 또 다른 황의 법칙을 발표한 셈이다.

    이를 위해 KT는 앞으로 3년간 융합형 유무선 기가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4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계획이 실현될 경우 기가 인터넷은 기존 인터넷보다 10배, LTE에 기가 와이파이를 결합한 이종망 융합기술과 구리선 기반의 초고속 전송기술(GiGA Wire)은 약 3배 빨라진다. 또한 이러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스마트 에너지, 통합 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 등 5대 미래 융합 서비스를 중점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스마트 에너지 부문은 핀란드 헬싱키 에코캠퍼스, 미국 캘리포니아 UC버클리 시트리스 빌딩을 비롯해 전 세계 12개 실증단지에서 사업을 검증하고 있다. 6월까지 실사를 끝내고 비즈니스를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KT 측은 “융합 에너지 최적화 프로젝트인 KT-MEG(마이크로 에너지 그리드)를 중심으로 에너지 관리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 국가전력 위기 예방과 함께 에너지 사용량을 15% 이상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차세대 미디어는 연내 초고화질(UHD) TV를 상용화하고 도심 밀집지역에서도 DMB보다 10배나 선명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올레파워라이브(eMBMS) 기술 등을 활용해 새로운 장을 연다는 목표다.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회사의 비전을 밝힌 황 회장은 “오늘 발표한 비전은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할 수 있는 분야”라며 “기획부터 사업 준비까지 구체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5대 융합 서비스를 통해 3만7000개의 일자리와 9조3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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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특별 명예퇴직 후폭풍 새로운 황의 법칙에 간담회장은 술렁였지만 일부에선 현재 상황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지난해 사상 최초로 적자를 기록했는데, 과연 언제쯤 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었다. 황 회장이 내놓은 답은 “1분기도 썩 좋지 않지만 더 나은 하반기, 더 나은 내년…”이라며 다소 두루뭉술했다. 통신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통신시장이 포화상태인 마당에 당장 올해 실적을 어떻게 채울 것이냐라는 단기적인 미래의 해답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무선 사업 경쟁력 약화와 유선 사업 가입자 이탈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노동계 인사는 “전임 회장도 취임 당시 ‘새로운 KT’를 외치며 조직의 슬림화를 진행했다”며 “전임 회장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초심의 지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자간담회가 열린 시각 서울 광화문 사옥 정문 앞에선 KT새노조와 민주노총의 ‘황창규 회장 퇴진’ 시위가 열렸다.

    지난 4월 특별명예퇴직 신청 이후 불어닥친 후폭풍이다. 당시 KT 측은 “총 8320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인사위원회를 거친 후 4월 30일 퇴직할 예정”이라며 “노사 합의에 따라 근속기간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된 이번 명퇴 신청자들의 평균 연령은 51세, 평균 재직기간은 26년이었고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 69%, 40대가 31%였다”고 밝혔다. 또한 “퇴직자들이 원할 경우 KT M&S, ITS(고객서비스법인)에 2년간 재취업을 선택하도록 했고, 퇴직자들이 퇴직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1인 영업점’ 창업 지원이나 창업·재취업컨설팅 등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KT의 제2노조는 사측이 최근 신설 부서를 만들어 명예퇴직 거부자들을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신설된 CFT로 발령받은 직원 일부가 명예퇴직을 거부한 이들인데, 사무실이 오지에 있어 직원퇴출을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신설된 부서로 배치된 인원은 291명이며 서울에는 사무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KT 측은 “업무지원 CFT는 현장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신설된 정규 조직이며 직원 퇴출을 위한 부서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또 “희망 근무지역 조사를 위한 기본면담을 실시한 후 최대한 고려했고, 근무환경에 따라 직원이 원할 경우 사택을 제공하는 등 생활상 불이익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T 관계자는 “KT 제1노조에 2만4000여 명의 사우들이 가입해 있고 새노조라는 제2노조는 1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며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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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규 회장과의 一問一答 미래 사업 분야로 스마트 에너지, 통합보안, 차세대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를 선택한 배경과 성과라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기획하고 준비한 만큼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거라고 자신한다. 세계 최초의 융합 에너지 최적화 프로젝트인 KT-MEG(마이크로 에너지 그리드)를 예로 들면 전 세계 빌딩이 모두 사업 대상이다. 최소한 10%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통 3사 영업정지가 모두 풀렸다. 앞으로의 경쟁구도를 전망한다면. 보조금 경쟁으로는 미래가 없다. 차별화된 기술, 상품, 서비스, 품질 경쟁력으로 완전히 판을 바꾸겠다. 기가인터넷과 미래 융합 서비스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KT의 실적반등 시기는. 1분기도 썩 좋지 못하다. 하반기는 더 좋은 실적으로, 내년에는 더 많은 분야에서 더 좋은 실적을 내놓겠다.

    계열사 조정 계획은. 와서 보니 계열사가 상당히 많았다. 5대 사업을 성장축으로 계열사와 KT그룹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쪽으로 재편하고 있다. 경쟁력이 나오지 않는 부분은 조정작업을 할 예정이다. KT스카이라이프, KT미디어허브, KT뮤직 등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미디어 사업부를 조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KT스카이라이프, KT미디어허브의 합병설도 들린다. 양사는 각기 다른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다른 계열사로 존재하다 보니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다. 앞으로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시너지를 내는 쪽으로 가려고 계획 중이다. 합병 단계는 아니고 사업적으로 대내외적인 부분을 효율화하고 선점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인사 기준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전문성이다. 전문성 없는 임원들은 모두 나갔다.

    추가 구조조정 계획이 있나. 고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직원들에게 감사한다.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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