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st]한국, 과거 같은 고성장 이젠 어렵다…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입력 : 2012.11.12 11: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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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이제 과거 같은 고성장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상당한 정책적 재량권을 갖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 세계 경제 변동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막(Insulation)을 구축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 10월 10일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며 이 같이 밝혔다.

    제13회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한 크루그먼 교수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시장 허점을 메우라는 케인스식 경제학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저성장 시대 한국이 어떻게 성장 전략을 짜야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한국은 이미 선진경제”라며 “인류 역사상 대단히 놀랄 만한 성장의 역사를 보이면서 고성장을 구가한 만큼 이제 과거 같은 행태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했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인구 구조적인 한계를 손꼽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은 기술발전 측면에서 이미 선진국을 따라잡았고 생산성도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고까지는 말 못하지만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인구 통계학적으로 경제활동을 계속할 인구가 줄고 있다는 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개방경제 환경도 약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내구재 수출이 많아 해외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특히 여러 단계를 거치는 가공제품 생산이 많은 등 고부가가치 교역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정책적 재량권을 높이 평가하며 위기 극복 카드를 넉넉히 쥐고 있다고 분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은 국가채무가 심각한 상태도 아니고 자체 통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상당한 재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접경제 영향을 받지만 그만큼 ‘행동의 자유’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스웨덴과 닮은 점이 있다고 봤다. 주변 상황으로부터 경제를 완벽히 보호할 수는 없지만 경제 활동을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점이 같다는 평가다.

    기자가 한국 정부가 내년도 균형재정 수준 달성을 목표로 확장 재정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고 묻자 그는 “경제가 힘들지만 정책에서는 상당한 재량이 있기 때문에 자국 경제 지원에 조금 더 신경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확장재정 정책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시기라는 뜻이다.

    세계 경제 충격에 대처하기 위한 조언을 달라고 하자 “세계 경제 사이클을 따라 재정정책을 펴기보다는 경제 주기를 거꾸로 타보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대답했다. 경기 흐름을 역행해 정책을 집행해보라는 ‘역발상 전략’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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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어느 정도 방어막을 갖고 있고 재정정책도 극단으로 가지 않는 나라”라며 “세계 경제가 나쁠 때 지출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지출을 늘리는 등 경제 변동을 막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 최대 리스크 요인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유럽과 미국 정치변동 위험’을 꼽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한다. 긴축 정책을 펴면 경기 하강을 유발해 오히려 고통은 장기화하게 된다”며 유럽중앙은행(ECB)이 강력한 팽창적 통화정책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각각 3차 양적완화(QE3)와 무제한 국채 매입프로그램(OMT)을 결정했지만 재정정책을 동원해 더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 미국, 유럽이 떠안고 있는 위기 정체는 불황”이라며 “문제가 불황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소비를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경기가 바짝 얼어붙은 상태에서 가계, 기업 등 민간부문은 좀처럼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 상태에서는 정부가 소비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문제는 확장 재정정책 키를 쥔 미국과 유럽의 정치권이다. 역내 반발을 뚫고 재정정책을 동원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해법 제시는 쉬운데 정치적으로 실현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가 미국과 유럽 정치 변동을 최대 리스크로 평가하는 까닭이다.

    지금 긴축정책을 펴는 건 최악의 선택이라는 훈수도 잊지 않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그리스, 스페인이 부채비율을 낮춘다고 시장 접근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며 “긴축은 오히려 고통을 장기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유럽이 지금보다 더 빚을 늘려도 괜찮다”며 “지금 확장 재정이라는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더 큰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정정책 집행에 따른 비용보다 지속적인 경기 불황이 이어질 때 받는 타격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한편 그는 미국 재정절벽(Fiscal Cliff·내년 재정지출 축소와 연말 종료되는 소득세 감세에 따른 성장둔화 리스크)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지 발생할 것으로 봤다. 다만 “재정절벽이 나타나고 일시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떨어진 후 몇 달 만에 회복될 것”이라며 시장 예상보다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경기가 회복 초입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가계 디레버리징으로 부채 규모가 상당 부분이 줄었고 주택시장에서도 빠르게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현 정책이 유지되는 한 미국 경제 회복은 시간문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미국 경제와 이상적인 경기 회복세를 보인 후 모습 간에는 아직 25%가량의 갭(간극)이 있다”며 “지금 정책 페이스만 몇 년 간 유지된다면 그 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주택시장 회복 속도를 더 빠르게 하려면 추가적으로 부채탕감이나 담보대출에 대한 채무조정 등의 조치를 고민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하지만 여러 국가가 하나의 통화체제로 묶여있는 유럽은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로부터 유동성을 제공받으려면 긴축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문제국들은 사실상 유동성을 공급받기 어려운 상태”라며 “유럽은 (미국과 달리) 또 다른 침체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위기국들이 단일 통화정책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는 명목임금 등을 낮추는 ‘내적 절하(Internal Devaluation)’를 통해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크루그먼 교수는 “독일 등 핵심국 임금 수준은 높아지고 있지만 문제국 임금수준은 떨어지고 있다”며 “이미 일부 내적 절하는 일어나고 있는데 향후 관건은 이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단일통화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유럽이 쓸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묻자 ‘유럽중앙은행(ECB) 역할론’을 제시했다.

    그는 “유럽 전체적인 회복을 위해서라면 ECB가 이자율에 대한 정책도 펴나가야 할 것”이라며 “예컨데 ECB가 문제국가 국채 수익률(Yield)에 상한을 두고 관리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CB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처럼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현재 시장에서는 독일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ECB가 일정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유럽 전체 인플레가 1% 이상 올라가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며 “때로는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ECB가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는 “유럽연합(EU)이 유로화를 출범시킨 것은 실책”이라면서도 “지금 EU가 해체되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연합자체는 존속되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

    [김정환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6호(201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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