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uxury Goods] 한국고객 요리법, ‘제멋대로’ 명품 가격

    입력 : 2011.09.28 17: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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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매력적인 시장,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물건을 사게 만들까. 깎아줘? 아니면 반대로 확 올려? 유례없는 성장세를 구가하는 한국 명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글로벌 럭셔리 업체들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세계적인 경기불황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성장하는 이 시장에서 이기지 못하면 체면을 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책임자들의 머리는 슈퍼컴퓨터처럼 빠르게 돌아간다.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결과는 가격이다. 그래서 한국 시장에서 명품 가격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들쑥날쑥하고 있다.

    한국과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소비자들은 명품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양상이다.

    샤넬은 가격을 올렸다가 한·EU FTA 발효 후 다시 내렸고, 에르메스는 가격인하를 단행한 데 반해 루이비통과 프라다, 구찌 등은 오히려 가격을 인상했다. 이게 무슨 계산법일까. 거두들이 제각기 움직이니 상당수 다른 유럽산 명품들은 가격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제멋대로’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서 명품 판매는 한·EU FTA 발효 전에 비해 두 자리 수대로 계속 늘고 있다.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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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비통과 샤넬, 에르메스는 소위 ‘3대 명품’으로 불린다. 명품 블루칩인 이들 브랜드는 지난 7월 한·EU FTA 발효에 맞서 서로 각기 다른 가격정책을 구사해 관심을 끌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루이비통은 올렸고, 샤넬은 올렸다가 내렸고, 에르메스는 내렸다. 명품 가격 논란의 시작점은 루이비통과 샤넬이었다. 지난 2월 가격을 올린 루이비통은 불과 4개월 후인 6월에 또 한 차례 인상을 단행했다. 그 와중에 샤넬이 지난 4월 상당수 제품 가격을 평균 25%를 인상한 것. 프랑스의 자존심과도 같은 유럽산 대표 명품인 루이비통과 샤넬이 FTA 체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격을 올리면서 소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유럽산 공산품 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와중에 이들이 정반대 행보를 한 것이다.

    루이비통코리아와 샤넬코리아는 가격 인상에 대해 “프랑스 본사의 글로벌 정책에 의한 것”이라고 똑같은 답변을 했다. FTA로 인한 가격인하 방침에 대해서 루이비통코리아 측은 “계획된 바 없다”고 했고, 샤넬코리아 측은 “품목별 가격을 인하 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 루이비통이 FTA를 역주행하는 데는 남모를 사정이 있다. 올 들어서만 두 차례에 걸쳐 제품 값을 올린 루이비통은 현실적으로 이번 FTA로 인한 관세 철폐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유는 이렇다. 국내 유통되는 루이비통 전 제품은 홍콩을 거쳐 유입된다. 한·EU FTA에 따라 EU 국가가 아닌 지역에서 생산되거나 해당 국가 관세를 거쳐 유통되는 경우는 효력이 없다. 루이비통은 홍콩을 단순 경유하는 게 아니라 각 나라에서 생산된 물건을 홍콩 물류지에 집하시켜 한국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배분한다.

    더군다나 루이비통 제품 가운데는 비EU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상당수에 달한다. 미국을 비롯해 스페인, EU에 속하지 않은 동유럽 국가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많아 관세 철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루이비통은 ‘FTA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해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셈이다. 그럼에도 루이비통이 ‘왜 가격을 내리지 않느냐’는 언론이나 소비자의 따가운 시선을 모른척 하는 것은 ‘100% 메이드 인 프랑스’라고 믿고 있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제3국가에서의 제조가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격 논란을 해명하다가 원산지 문제로 번질 경우 이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내서 영업 중인 유럽산 명품 중에는 루이비통처럼 이번 FTA에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가 많다. 프라다와 구찌, 버버리 등 패션 제품들을 비롯해 까르띠에 등 고급 시계보석류가 그렇다. 프라다, 버버리 등은 홍콩지사를 통해 들어오며 까르띠에와 구치, 아르마니 등은 스위스를 통해 들어온다.

    원산지를 증명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 ‘메이드 인 프랑스’라는 태그가 붙어 있다고 해서 FTA 혜택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유명 남성복 와이셔츠 제품이 디자인은 이탈리아, 원단 생산은 중국, 버튼 등 각종 부자재 생산은 베트남에서 한다고 치자.

    이 경우 제품에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태그가 붙지만 서류상 원산지는 중국이 된다. 제품에서 원산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따지는 ‘치프 밸류(Chief Value)’라는 규정에 따라 이탈리아 명품 와이셔츠는 중국산으로 면세 혜택에서 제외된다.

    유럽산 명품 중에서 한·EU FTA의 최대 수혜자는 에르메스다. 면세 주요 요건인 원산지와 생산지, 선적지가 EU권이어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기 때문. 에르메스는 EU권내에서 99%이상을 생산하는 리얼(real) 명품이라는 자신감에서 유럽산 명품 중 처음으로 7월 중순부터 한국에서 판매되는 전 제품(보석류, 실크 스카프 제외) 가격을 3~10% 가량, 평균 5%대로 내려서 판매하고 있다.

    에르메스코리아 측은 “대부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EU국가에서 생산되고 있어 수입 브랜드 중에서도 한·EU FTA 발효의 큰 수혜자”라며 이에 따라 “고객들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기 위해 이와 같은 가격인하 방침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에르메스가 가격을 내리자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에르메스가 가격을 내린 이후 2주 동안(7월15~28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강남점, 센텀시티점 매장 매출이 직전 2주(7월1~14일)와 비교해 34% 늘었던 것. 이에 따라 샤넬도 가격인하를 전격 결정했다.

    샤넬코리아는 “7월1일부터 한·EU FTA 발효에 따라 발생하는 관세 철폐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한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샤넬의 대표적 상품인 클래식 캐비어 미디엄 사이즈는 579만원에서 562만원(3%)으로, 2.55 빈티지 미디엄 사이즈는 639만원에서 620만원(3%)으로 각각 내렸다.

    아르마니 등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아직 FTA로 인한 가격 혜택을 소비자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명품 본사마다 사정이 다르고 관세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한 것도 요인이다.

    한편 관세청은 FTA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대한 논란이 일자 유럽 명품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는 이유를 미흡한 FTA 규정이나 잘못된 규정 적용 때문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업체들이 물품의 중간 경유지를 다른 나라에 두고서 하는 사업 특성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관세청이 고의로 세금을 물게 하려고 규정을 잘못 적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유럽산 명품들은 지난 10년간 국내 시장에서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20~50%대 높은 성장을 해왔다. 이처럼 명품에 로열티를 보여 온 한국 소비자에게 세금 인하의 혜택을 되돌려줄 명분과 논리적 타당성은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쌀수록 잘 팔리는’ 심리를 이용하는 짝퉁적 행태를 명품업체가 그대로 따라가서는 곤란할 것이다.

    [김지미 /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차장 jimee@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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