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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퍼거슨과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승리의 방정식
입력 : 2011.09.15 16: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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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브라이언 롭슨과 마크 휴즈 그리고 에릭 칸토나 등이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고 데이비드 베컴과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와 네빌 형제 등으로 대표되는 황금 유스 세대를 비롯해 앤디 콜, 반 니스텔루이와 웨인 루니까지 수많은 스타들이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영광의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그곳엔 항상 팀의 수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있었다.
위기 때마다 발휘된 강한 승부사 기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1980년대 초중반 스코틀랜드 클럽 에버딘에서 6년 동안 세 번의 리그 우승 타이틀과 4개의 FA컵 트로피 그리고 UEFA컵 위너스컵을 들어 올리며 ‘우승청부사’로 불렸다. 그리고 1986년 11월6일 맨유 감독으로 부임했다. 올해로 25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셈. 최근 프리미어리그의 감독들이 파리 목숨처럼 경질되는 것을 고려하면 실로 경이적인 장기집권이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 첫 시즌이었던 1987년 퍼거슨 감독의 맨유는 1부 리그에서 11위에 그쳤다. 요즘 같으면 해고됐을 법도 한데 구단 수뇌부와 팬들은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 라이벌 리버풀과의 원정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따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1986~87시즌 맨유의 유일한 원정 승리였다.
부임 초기 퍼거슨 감독은 나이 어린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러셀 비어즈모어나 리 마틴, 마크 로빈스 같은 선수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선수들로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긴 쉽지 않았다. 특히 1989~90시즌은 퍼거슨 감독에게 가장 큰 위기가 닥친 시즌이었다. 리그 성적은 강등권에 근접해가고 있었고 팀은 오랜 기간 동안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잉글랜드 언론에선 퍼거슨 감독이 곧 해임될 것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의 승부사 기질은 유난히 큰 경기에서 발휘됐다. FA컵 3라운드에서 당시에는 강호로 군림하던 노팅엄 포레스트를 꺾은 데 이어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결승에서는 재경기 끝에 리 마틴의 결승골에 힘입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현지 올드팬들과 베테랑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만약 그때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면 퍼거슨은 해임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큰 위기를 겪은 퍼거슨은 1991년 UEFA컵 위너스컵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1991~92시즌엔 리즈 유나이티드에 이어 리그 2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맨유에겐 가장 큰 숙제가 있었다. 1967년 맷 버스비 감독 체제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25년 동안 들어 올리지 못했던 리그 우승 타이틀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퍼거슨은 맨유팬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주진 못했다. 또 적지 않은 팬들은 프리미어리그 출범과 함께 유능한 스타 감독을 새로 영입해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구단 수뇌부들은 큰 경기와 토너먼트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퍼거슨에 신뢰를 보냈다. 그의 주도하에 육성되던 유스 시스템에선 라이언 긱스와 같은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1군 무대에 데뷔하며 좋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br>2010~2011 프리미어리그 우승 확정 후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맨유 선수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리즈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멍청한 행동 중 하나로 기록됐다. 칸토나는 데뷔하자마자 마크 휴즈와 함께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1993~94시즌엔 PFA(잉글랜드 프로선수협의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가 됐다. 그리고 1997년까지 맨유에 5시즌 동안 4번의 리그 우승 타이틀과 2번의 FA컵 우승을 선사했다. 칸토나의 활약과 더불어 퍼거슨 감독이 공들여 키워온 유스 시스템에서는 라이언 긱스와 게리 네빌, 데이비드 베컴 등이 속속 1군 주력 선수로 성장했다. 1950~60년대 이후 맨유의 또 다른 전성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저비용 고효율로 일궈낸 우승 폴 스콜스, 게리 네빌, 필 네빌,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니키 버트 등 이른바 ‘퍼거슨의 아이들’로 불리는 어린 선수들이 맨유의 전성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퍼거슨의 유스 시스템도 분명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2번의 우승을 일궈내긴 힘들었을 것이다. 과거 허약한 재무구조에 놓여 있던 팀을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클럽으로 성장시킨 데는 그의 경제적 마인드가 큰 역할을 차지했다. 2000년 중반부터 프리미어리그를 접한 팬들이라면 최근 상황만 보아도 그의 능력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듯싶다.
2005년 맨유는 미국인 사업가 말콤 글레이저 가문에 인수됐다. 인수금액은 7억9000만 파운드(약 1조3900억원)였다. 하지만 이 중 2억7500만 파운드(약 4850억원)만이 글레이저 가문의 돈이었고 나머지 인수금액 중 2억7500만 파운드는 IB(투자은행)에서 나머지 2억4000만 파운드는 이자율이 높은 헤지펀드를 통한 현물출자대출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J모 투자은행과 리파이낸싱 과정을 거치며 5억 파운드의 우선순위부채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5억 파운드의 이자가 발생하고 있고 2017년 만기인 현물출자대출의 이자도 계속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헤지펀드를 통한 현물출자대출의 경우 약 14%가 넘는 높은 이자율을 자랑한다. 그러다 보니 맨유는 매 시즌마다 중계권료와 입장 수익 그리고 기타 부가마케팅으로 엄청난 매출을 달성하고도 그 돈을 고스란히 이자를 갚는데 써야 할 형편이다.
최근에는 글레이저 가문이 채권을 발행하는 고육지책을 쓰거나 또는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05년 이후부터 급격히 오른 입장권 가격과 불안정한 재정구조에 신물이 난 맨유팬들은 2년 전부터 경기장 안팎에서 그린앤골드 캠페인을 통해 구단주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맨유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맨유팬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바 있었다. 결국 현재 맨유의 선수 영입 예산은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등에 비하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리그 우승을 통해 맨유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또한 쉽지 않았다.
돈이 있는 클럽이든 없는 클럽이든 명장은 현실에 맞는 클럽 운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내야 한다. 퍼거슨 감독은 해외자본의 급속한 유입과 중계권료 상승으로 다른 중상위권 클럽들의 이적 예산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짠물 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효율적인 선수 이적시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후 그것을 알토란 같은 선수 영입에 사용했다.
2003년 18살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약 1200만 파운드에 영입해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무려 8000만 파운드에 이적시킨 것은 클럽의 재정 부담을 크게 완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2004년엔 에버튼의 축구 신동 웨인 루니를 뉴캐슬 등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약 2600만 파운드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호날두와 루니 모두 나이에 비해 이적료가 적지 않았지만 퍼거슨 감독은 확실한 선수라고 판단할 경우엔 다른 빅클럽들이 고민을 하는 사이에 재빨리 적정한 수준에서 영입을 마무리 짓는 결단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는 모두 대성공을 거뒀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친 멕시코 대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치차리토) 또한 남아공 월드컵 본선이 열리기 전에 비교적 적은 이적료로 낚아챈 경우다.
지혜로운 리더십으로 하나의 팀을 만들다 퍼거슨 감독은 유망주를 길러내는 힘과 적절한 타이밍에 최고의 선수를 영입할 줄 하는 혜안을 지니고 있다. 또 상황에 따른 전술대처 능력과 교체를 통한 분위기 반전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많은 스타 선수들을 보유하고 전술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리그 우승을 하긴 만만치 않다.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하며 많은 스타 선수들을 영입한 더비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또 리그 라이벌 리버풀도 많은 감독들을 교체하며 우승을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퍼거슨의 맨유와는 격차가 있다.
프리미어리그 해설을 하다 보면 맨유의 경기력이 나쁠 때 퍼거슨 감독이 하프타임을 이용해 드레싱 룸에서 ‘헤어드라이어(선수들을 크게 호통치며 화를 내는 것을 빗댄 표현)’를 돌릴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퍼거슨의 승부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또 그런 행동으로 후반에 경기 흐름의 반전을 이루며 팀을 위기에서 건져낸 적도 많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축구팬들에게 유명한 베컴의 ‘축구화 사건’(퍼거슨 감독이 경기가 끝난 후 화가 나 걷어찬 축구화가 베컴의 눈가에 맞아 찢어진 사건)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퍼거슨 감독은 선수들에게 화를 낼 때와 다독일 때를 유효적절하게 구별해내는 ‘냉온정책’을 잘 구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한 성격’하는 스타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좋은 작용을 했다. 그 어떤 감독도 다루기 힘들어했던 에릭 칸토나를 리그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큰 평가를 받을 만하다. 자유로운 성향의 칸토나에게 포지션에 구애 받지 않는 프리롤 역할을 부여하며 능력을 극대화시켜줬다. 관중 발차기 사건 이후에도 그를 옹호하며 오히려 주장 완장으로 책임감을 부여했다. 로이 킨이나 웨인 루니처럼 자존심 강한 선수들도 퍼거슨 휘하에선 팀에 잘 녹아들었다.
잉글랜드에선 감독을 헤드코치보단 매니저나 보스라는 표현으로 쓰길 좋아한다. 그만큼 잉글랜드에서 감독의 역할은 비단 선수들을 관리하고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국한되지 않고 정신적으로 팀 전체를 통솔하거나 경영적으로 효율적인 클럽 운영을 하는 데 리더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최종적인 지향점은 지속적인 우승을 통한 명문클럽으로의 자리매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알렉스 퍼거슨은 잉글랜드에서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감독임에 분명하다.
[장지현 / SBS 스포츠 축구 해설위원 tarzan2839@hotmai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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