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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School] 대원외고의 경쟁력
입력 : 2011.07.01 15: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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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 정현희 판사<br>최윤영 아나운서 / 최나연 선수
먼저 재계 쪽 동문 가운데는 2·3세 경영인들로 기업의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젊은 리더들이 많다. 대원외고 3기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막내인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이 있고 최용선 한신공영 회장의 아들인 최문규 한신공영 상무는 4기 동문이다. 만 스물아홉의 나이에 부회장 자리에 오른 설윤석 대한전선 부회장 역시 대원외고 출신이다.
사시·행시·외시 합격률 최고대원외고 정문
사시뿐 아니라 행정고시(행시)·외무고시(외시) 성적표 역시 우월하다. 지난해 행시에 합격해 올해 부서 배치를 받은 신임 사무관 297명의 출신 고교를 분석한 결과 합격자 수 상위 20위에 특목고가 11곳 포함됐다. 그 중 대원외고 출신이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매년 합격자 수가 가장 적은 외무고시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 회에 한 명도 나오기 힘든 합격자가 복수로 배출되고 있는 상황. 35회 외시에 수석 합격한 박은주 씨는 10기 동문이며 지난 44회에도 무려 5명의 합격자가 대원외고 출신이었다. 이 중 대원외고 22기인 이일재 씨는 2000년 이후 최연소 합격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재계나 고시 출신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대원외고 출신들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방송 쪽에서는 최윤영 아나운서와 박사임 아나운서가 대원외고 졸업생으로 알려졌다. 연예계로 진출한 동문도 많다. 가수 호란 씨 외에도 작곡가이자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는 윤종신 씨, 서울대 출신 배우로 주목받았던 고 안재환 씨, 영화배우 유준상 씨, 가수 김민우 씨 등이 대표적인 대원외고 출신 연예인이다. 하버드 출신 가수로 화제가 된 유범상 씨도 대원외고 동문. 한편 골프부를 두고 있는 대원외고는 최나연 선수 외에도 유소연·김송희·장하나 선수 등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런 학교의 명성 때문에 대원외고에 사회 저명인사들의 자제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아들 동일 씨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바 있으며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손녀 소연 씨는 대원외고 유학반 4기다. 대원외고 측은 졸업생 및 재학생 가운데 사회 유력인사의 자제가 많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족학교’의 이미지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국내 첫 번째 외고 대원외고는 어떻게 오늘과 같은 명문고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대원외고를 설립하고 명문고로서 초석을 다진 이원희 전 대일학원 이사장은 KBS, MBC, 동양방송, 중앙일보를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과거 동양방송과 같은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제일제당 전무로 재직 중 대원학원을 설립했다. 이 전 이사장은 현업에 있으면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때 대원외고 장학제도 중에는 ‘이건희 장학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이사장은 1982년 처음으로 외고 설립 인가를 신청했지만 정부에서는 허가해주지 않았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상황에서 그 자리는 결국 대원외고가 아닌 대원여고가 들어섰고, 다음해 다시 인가 신청을 냈다. 어렵게 허가를 받은 대원외고는 대원외국어학교라는 이름으로 1984년 개교했다. 대일외고도 같은 시기 개교하면서 대원과 대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어고등학교가 됐다.
설립 초기에는 각종 학교로 분류되면서 지금처럼 여러 과목에서 두루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보다는 어학에 특별히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 주로 선발됐다. 1992년 특목고로 지정이 되면서 대원외국어고등학교라는 명칭을 쓰게 됐고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초기 졸업생들의 높은 대학 진학률이 증명되자 학교의 지명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출발선이 비슷했던 대일외고를 따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어 1998년 대원외고는 특목고를 포함해 국내 고교 가운데 처음으로 유학반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 시기가 외국어고등학교에는 위기였다. ‘어학특기자 양성’이라는 외고 설립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전 과목 성적 우수자들이 몰려 고교평준화제도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게 됐기 때문. 야간자율학습, 0교시 보충수업, 모의고사 등을 금지한 교육부의 깐깐한 감시도 이어졌다. 수시입학과 같은 내신 위주의 입시제도가 강화되면서 외고 기피 현상도 나타났다. 높은 수능점수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해 수능성적 우수자들이 몰려 있는 외고에 유리했던 대입특차제도가 사라지고 수시제도로 대체되면서 내신이 불리한 외고는 대량 미달, 자퇴 사태가 발생한다. 실제로 전년도까지 최소 3대 1 이상을 기록하던 외고 경쟁률은 1998년 크게 떨어져 2대 1이 채 안 되는 학교도 있었으며 자퇴생도 적지 않았다.
외고 위기 속에서 처음으로 유학반 운영대원외고 교내
국제고·자사고 사이에서 경쟁력은 미지수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대원외고가 요즘 남몰래 속병을 앓고 있다. 과거에는 ‘잘 나가는 귀족학교 이미지’를 부담스러워 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그 이미지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지금까지 외고 사이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였지만 국제고와 자사고의 설립으로 명성에 도전을 받게 된 것. 대원외고는 높은 국외 명문대 진학률을 자랑했지만 국제고가 설립된다면 굳이 처음부터 국외 명문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외고에 진학할 필요가 있을까. 수능과 내신 공부를 따로 할 필요 없고 미국 고등학교 커리큘럼에 충실한 국제고는 여러 면에서 외고보다 매력적이다.
강남의 한 영어학원 강사는 “조기유학이나 원정 출산 등으로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 귀국한 후 다시 외국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외고에서 이런 학생들을 흡수했지만 국제고가 설립되면 커리큘럼이나 문화적인 차이가 적고 각종 특별활동이 다양한 국제고로 진학하려는 학생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국제고에 대한 강남 학부모의 관심은 높다”고 전한다. 비싼 국제고의 학비를 부담할 여력이 있는 학부모들일수록 외고보다 국제고에 관심을 갖는 추세라는 것.
입시제도도 변수다. 지금까지 외국어 특기자들을 우대하는 수시전형에서 대원외고를 비롯한 외고 재학생들의 합격률이 높았지만 지난해부터 이상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대원외고의 연세대 수시 1차 글로벌리더, 언더우드 국제전형 합격자는 10여 명. 전년도 30여 명에 달했던 합격자가 크게 줄었다. 본래 외국어 특기자들이 유리한 전형이지만 연세대에서 지난해와 달리 같은 전형의 내신 비중을 높이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정부에서 ‘의도적인 외고 우대 대학에 제제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연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조건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또 정부의 ‘외고 개편안’은 우수한 학생들이 자사고 진학으로 방향을 바꾸는 원인이 되고 있다. 외고 개편안은 외고 선발에 영어 내신만 반영하기로 돼 있다. 따라서 전 과목 성적이 고루 우수한 데 영어 내신이 최상위권이 아닌 학생들은 외고보다 자립형 사립고로 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자사고의 경우 교육 과정을 최대 50%까지 학교 뜻대로 편성할 수 있는 자율권이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맞는 스펙 관리 시간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할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고의 수업 편성 자율권도 최대 20%까지 주어지지만 외고의 경우 영어 및 전공어 수업에 특정 시간을 편성해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물론 이대로 위기를 맞을 대원외고는 아니다. 여러 모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우수학생 유치나 제도에 대한 항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이유는 지난해 불거진 불법 찬조금 논란으로 몸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원외고는 2007년부터 3년간 학부모들로부터 약 21억원의 불법 찬조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포착되면서 설립자인 이 전 이사장이 물러나고 개교 때부터 대원외고에 몸담고 있던 최원호 교장은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대원외고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지금은 어떠한 대외 인터뷰나 취재 요청에 응하기 곤란한 상황이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정고은 / 자유기고가 kony0923@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호(2011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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