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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세계 10위 철강회사 진입 눈앞에 둔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입력 : 2011.05.13 1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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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서해대교로 진입했다. 눈발은 가벼웠지만 여전히 날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스산한 날씨에 ‘사고다발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내심 걱정을 증폭시켰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안개가 없어 가시거리는 괜찮았다. 오히려 경기 평택과 충남 당진을 바로 연결하고 있는 서해대교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서해대교가 아니었다면 한참 돌아가야 했을 길이다.
서해대교 건너편으로 여기저기 큼지막한 굴뚝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굴뚝의 크기도 크기려니와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허연 연기가 당진의 철강·제철사업 규모를 가늠케 해주었다.
당진 철강단지에서 단연 돋보이는 규모2010년 11월 23일 가동을 시작한 제2로고에서 방열복을 입은 작업자가 작업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매립보다 기존 도로를 옮기는 일이 훨씬 힘들었다”고 말한다. 계획한 대로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려면 부득이 더 넓은 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기존 도로를 멀찌감치 옮겨 놓아야 했던 것이다.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는 A, B, C지구로 나뉘어져 있으며 총면적 740만㎡로서 현재 여의도 면적의 2.5배에 달한다. 2개의 고로를 완성한 당진제철소는 고로 방식과 전기로 방식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제1고로가 막 상업 생산을 시작해 고로 방식만 따진다면 현재 연간 400만톤의 조강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2고로까지 완공했으니 조만간 고로 방식으로 연간 800만톤의 조강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열연강판 650만톤, 후판 150만톤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또 현대제철이 목표한 바대로 제3고로마저 모두 완성한다면 당진 일관제철소는 연산 1200만톤에 이르게 된다. 명실공히 세계 10위권으로 진입해 일류 제철소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아직 제3고로 건설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착공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루기 전에도 당진제철소는 전기로를 통한 철근과 열연강판을 생산하고 있었다. 특히 당진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철근은 뛰어난 품질을 자랑해 왔다.
당진까지 오면서 맞았던 눈발은 언제부터인지 가녀린 빗방울로 변해 있었다. 질척한 상태에서도 현대제철이 뽐내는 2개의 고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자랑이란 말인가.
제1고로를 가동한 지 10개월 만에 제2고로 화입식밀폐형 연속식 하역기
새로 지은 제2고로에서는 아직 ‘상업용 쇳물’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제2고로에서도 연신 쇳물을 방출해 냈지만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어서 몽땅 버려야 했다.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으면 철강 본연의 성질이 거의 훼손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다못해 고철덩어리로 만들어 철근으로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철광석을 쇳물로 만드는 과정을 몇 번 거친 후 고로가 완전히 깨끗해져야만 비로소 ‘맑은 쇳물’을 생산해낼 수 있다. 자동차용 강판이나 선박용 후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없는 맑은 쇳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제2고로에서 쏟아낸 쇳물을 담은 화차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1520도에 달하는 저 뜨거운 쇳물을 대체 어디다 버린단 말인가. 쇳물을 버리러 떠나는 화차는 따라오지 말라는 듯 계속 딸랑거리며 저만치 멀어져갔다.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를 방문하기 보름 전인 2010년 11월23일 오전, 이곳에서는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다. 제2고로의 화입식이 있었던 것. 화입식이란 새로 지은 고로에 처음으로 불씨를 넣는 행사를 일컫는다. 2010년 1월 연간 생산량 400만톤 규모의 제1고로를 가동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또 다시 같은 급의 제2고로에 불을 지핀 것이다.
현대제철 측은 “하나의 고로를 가동하기 전에 다음 고로를 건설하는 것은 세계 철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자랑했다. 즉 하나의 고로를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그 결과물을 보고 난 후 다음 고로를 건설하는 것이 철강사들의 관례인데 현대제철은 이를 과감히 깨뜨려버린 것. 제1고로의 가동 결과물이 채 검증되거나 평가받을 겨를도 없이 철강산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모험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착공에서 완공까지, 그리고 상업 생산을 하기까지 걸린 기간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짧았다”는 것이 현대제철 측 설명이다.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숙원사업… 마침내 꿈 이뤄 건설 기간을 짧게 한 데에 뭔가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었을까. 이를테면 고로 건설에 새로운 공법을 도입했다든지 불철주야 고로 건설에 매달렸다든지…. 이승희 과장은 “추진력과 결단력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고 말했다. 추진력과 결단력이라는 두 단어에서 정몽구 회장이 단박에 떠올랐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현대제철 제2고로 화입식은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했다. 정몽구 회장이 직접 첫 불씨를 넣었고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2시35분께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해 현대제철 제2고로 화입식은 그 역사적인 의미나 행사 규모에 걸맞지 않게 ‘조용히’ 묻혀 버렸다. 당초 2011년 예정이었던 것을 2010년 11월25일로 앞당겼고, 그마저도 이틀 앞당겨 23일에 진행한 것인데….
일관제철소 건설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때부터 이어져온 염원이자 꿈이었다. 고 정주영 회장은 1977년과 1994년 사업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정몽구 회장 역시 한번 좌절을 맛본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6조2300억원을 투자해 건설한 당진 일관제철소는 세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난 후 마침내 이뤄낸 꿈이다.
일관제철소라는 꿈을 이루기까지 현대제철이 걸어온 길은 길고도 험난했다. 한국전쟁으로 몸과 마음, 국토가 피폐해져 있던 1953년 6월10일 대한중공업공사 설립이 지금의 현대제철의 출발이다. 휴전협정을 맺기 한 달여 전 일이다. 1964년 인천제철이 설립되면서 철근 등을 생산해오다 1978년 현대그룹에 편입돼 본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철근은 물론 스테인리스 냉연공장을 가동했고, 세계 최고 품질의 H형강을 생산해오다가 2000년 강원산업과 삼미특수강 등을 인수했다. 2001년 비로소 현대차그룹으로 재출범하면서 이듬해 INI스틸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대제철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04년 한보철강의 당진공장을 인수하면서다. 꿈꿔오던 일관제철소 건립을 가능케 한 계기가 된 것이다. 2006년 사명을 현대제철로 바꾸면서 일관제철소 기공식을 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일관제철소를 건설함으로써 현대차그룹은 그룹 내에서 자동차 원재료, 자동차 부품, 완성차 생산·판매·A/S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 가능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즉 현대제철에서 철이나 자동차용 강판을 가공·생산·공급하고, 현대모비스에서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조달하며, 이를 현대·기아차에서 완성차로 생산·판매·A/S한다는 의미다.
당진 일관제철소가 현대·기아차의 자동차용 강판을 전부 책임질 수는 없다. 계획하고 있는 3고로까지 완공한다 해도, 당진제철소에서 생산하는 강판을 모두 공급한다 해도, 현대·기아차 완성차 생산의 30% 정도만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와 가치는 매우 크다.
당진제철소는 생산유발, 고용창출, 수입대체 효과 면에서 우리나라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자원순환형 그룹 체계’를 완성했다는 것이 현대제철의 더 큰 자랑거리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전기로뿐 아니라 고로까지 가동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자원순환형 체계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즉 현대제철에서 생산하는 철근이나 H형강 등은 현대엠코에서 건설자재로 쓰이고 남거나 못쓰게 버리게 된 것은 전기로 방식을 통해 또 다른 철강제품으로 탄생한다. 고로 방식으로 생산한 제품은 자동차용 강판과 조선용 후판으로 쓰이고 다시 전기로 방식을 통해 철강제품으로 재활용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원료에서 제품 생산까지 친환경시스템으로 운영 굳이 이 같은 자원순환용 체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진제철소 자체가 커다란 친환경공간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세계 최초로 원료에서 제품 생산까지 친환경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녹색제철소”라고 자신했다. 이 과장은 “회장 방문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첫째가 안전, 둘째는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당진 일관제철소에는 밀폐돼 있는 시설이 많다. 철광석이나 석탄 등이 제철소 내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광경을 전혀 볼 수 없다. 모두 밀폐된 시설에 저장돼 있고 원료들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 역시 밀폐돼 있다. 비산먼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돔구장처럼 생긴 밀폐형 원료 저장 시설이다. 밖에서 볼 때 느꼈던 압도적인 모습이 시설 내부로 들어가자 어둠침침했지만 사뭇 온화한 분위기로 변했다. 점점 거세지고 있는 빗방울을 가뿐하게 피할 수 있었다. 육중한 운반기계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고 양쪽으로 철강석 등 원료가 쌓여 있었다. 군데군데 자그맣게 나 있는 창문으로 쪽빛이 새어들어 왔다. 바깥 날씨만 맑았다면 환한 햇살이 치고 들어왔을 것이다.
당진제철소의 친환경 원료 처리 시스템은 부두에서 원료가 하역될 때부터 시작한다. 철광석은 대개 선박을 이용해 해상으로 운송된다. 당연히 초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어야 한다. 아산만은 서해에서는 유일하게 20만톤급 초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대제철은 자체적으로 25만톤급 이상까지 접안할 수 있도록 부두시설을 확장할 것이라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선박을 이용해 현대제철 부두로 들어온 원료는 밀폐형 연속식 하역기를 통해 밀폐형 벨트 컨베이어로 옮겨진다. 밀폐형 벨트 컨베이어는 원료를 돔구장처럼 생긴 밀폐형 원료 처리장으로 운반한다. 이곳에서 원료를 분류하고 1차 가공을 한 후 다시 밀폐형 벨트 컨베이어에 실어 후공정 단계까지 옮긴다. 하역부터 후공정 단계까지 원료는 거의 외부 노출이 되지 않는 셈이다. 비산먼지가 일어날 일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제철소를 구석구석 견학하면서 시설 외부에서는 단 한 번도 원료를 구경할 수 없었다. 시설 내부로 들어가야만 철광석이나 석탄 등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시설이 밀폐형으로 돼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도 운반하고 가공하기가 수월하다.
이처럼 친환경 원료 처리 시스템을 거쳐 생산한 철강제품들이 다시 현대차그룹 내 자원형 순환 체계로 이어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친환경’이 떠나지 않는다.
두께 250㎜ 슬라브 약 6㎜ 후판으로 거듭 탄생고로에서 쏟아낸 쇳물을 담은 화차가 빠져나가는 모습
제철소를 떠나야 할 시간 빗방울은 더욱 거세졌다. 제철소를 둘러보는 내내 쓰고 있던 안전모를 때리는 강도도 세졌다. 빗방울이 안전모를 타닥타닥 때리면서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과 길을 재촉했다.
제철소를 빠져나오자마자 비는 눈으로 변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당시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자동차 와이퍼를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앞을 보는 데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 왜 제철소 내에는 비가 내리는 것일까. 눈을 비로 바꿀 만큼 제철소 내의 열기가 뜨거웠단 말인가. 제철소가 멀어질수록 쌀쌀한 기운이 한 움큼씩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당진 = 임형도 기자 hdlim@mk.co.kr / 사진 = 정기택 기자 kt@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호(2011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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