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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ennium Company] 현존 최고(最古) 호텔 호시료칸
입력 : 2011.01.17 14: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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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초오 대사는 1년 전 자신을 하쿠 산으로 안내해준 나무꾼의 아들 가료오에게 그 온천을 토대로 료칸을 지을 것을명했다. 이것이 ‘산신이 점지해준 터’에 지은 호시료칸의 시작이다.
신통한 온천 효과… 불교와 더불어 번창 호시료칸 온천의 영험함과 신통함은 아와즈 마을을 넘어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물론 온천의 신통력을 체험하고픈 사람들이 료칸으로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불교도 널리 전파되었다. 호시료칸은 불교와 함께 날로 번창했다.일본의 3대 영산인 하쿠 산을 끼고 있는 호시료칸은 일본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아 나갔다.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은 물론 연예인, 문학인, 순례자 등도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현재 객실80여 개를 갖추고 있으며 수용인원은 450여 명에 달한다. 연간 투숙객도 4만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여전히 성업 중이다. 지금도 언제든 홈페이지(www.ho-shi.co.jp)를 통해 접할 수 있을 만큼 우리 곁에 있다.
호시료칸의 매력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만 꼽자면수려한 자연경관과 전통이 깃들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 우수한 서비스 정신을 들 수 있다. 아늑하고 한적한 자연과 어우러진 호시료칸의 아름다움은 오래 전부터 일본의 여러 예술가들에게 극찬을 받아왔다. 몇 차례 자연재해와 화재로 1292년 전 설립 당시 그대로 모습은 아니지만 전통미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호시료칸의정면 건물은 일본의 전통적인 목조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실된 료칸을 재건축한 도쿠가와 막부 시대 건축 양식도 부분적으로남아 있다.특히 료칸 건물을 빙 두르고 있는 정원은 호시료칸의 큰 자랑거리중 하나다. 400년 된 적송과 바위가 건재하고 료칸 건물과 수목이절묘하게 어울린 호시료칸의 정원은 17세기 초 도쿠가와 막부 시대 르네상스인으로 불린 건축가 코보리 엔슈우가 설계한 것이다.
존경받는 귀족이자 건축가였던 코보리 엔슈우가 하루는 호시료칸을 방문했다. 시와 다도 등 일본의 전통예술에 심취해 있던 엔슈우는 아와즈 온천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그 속에 자리 잡고있던 호시료칸의 고요함에 흠뻑 취했다. 그는 호시료칸에 머무는동안 아와즈 지역의 자연경관과 호시료칸의 고요함이 한껏 어울릴 수 있도록 정원을 설계해주었다. 17세기 초 엔슈우의 설계에 따라 만든 정원이 지금까지 호시료칸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최근까지도 호시료칸에는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 등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데릴사위로 전문경영인 영입
때때로 지역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의 ‘호시료칸 보호정책’의 혜택을 받은 것도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브라이언트 대학 가족기업연구소 윌리엄 오하라 소장은 <세계 장수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이라는 책에서 “호시료칸의 성공과 장수는 분명히 호시가(家)의 헌신적인 노력에 기인한다”면서 호시료칸의 성공 경영 비결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전문경영인을 영입한다. 문자로 쓰인 사명선언문을 활용한다. 외부에 조언과 지원을 구한다. 명확한 후계 또는 상속 구도를 만든다. 외부 경험이나 교육을 중시한다’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전문경영인 영입이 눈에 띈다. 분명 장자 세습을 원칙으로 하는 가족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곳에서 ‘전문경영인 영입’이 성공 비결 중 하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족기업의 전통은 지키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 경영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기업에서 파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점, 즉 독단적인 결정의 폐해를 전문경영인이 보완해주는 것이다. 호시료칸도 독단적인 결정의 폐해를 여러 번 경험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1980년대 말에 있었다. 당시 호시료칸의 젠고로오는 료칸 본관 맞은편, 그러니까 정원 맞은편에 현대식 호텔 객실을 여러 층 지었다. 당시 젠고로오를 제외하고 호시가 사람들은 물론 종업원들, 외부 전문가들이 대부분 현대식 호텔 객실 착공을 반대하고 비판했다. 물론 젠고로오도 나름의 생각과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현대식 객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였다. 호시료칸의 가장 큰 매력과 경쟁력은 주변 경관과 어울린 전통적인 객실, 고요함과 아늑함이었다. 당시 젠고로오가 고집한 현대식 호텔 객실은 오히려 호시료칸의 매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젠고로오의 결정은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당시 젠고로오가 외부 전문가의 충고를 귀담아들었다면, 곁에 전문경영인을 두었다면 그런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장자 세습 원칙이지만 아들이 없을 경우 사위가 대신한다. 일본 가족기업에서 볼 수 있는 데릴사위제도는 일반인이 보통 알고 있는 그것과 차이가 있다. 일본 가족기업의 데릴사위제도는 단순히 사위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姓)과 호적까지 완전히 바꾸어 처가 쪽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위라고 해서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사명감과 윤리의식 등 후계자로서의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데릴사위제도가 전문경영인 영입의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오하라 소장은 또 “능력 없는 사람을 후계자로 세우거나 사업의 영속성이 깨지는 것을 감수하는 대신 바깥에서 경영자를 영입하는 데릴사위제도는 기업가문을 존속시키고 발전시키는 일본의 오랜 전통이 되었다”고 말했다.
일기일회 서비스 정신 계속 되기를
호시료칸의 서비스 모토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로 압축된다. 일기일회란 평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 혹은 어떤 하나의 일이 평생에 단 한 번뿐임을 일컫는 말로서 사람과의 만남과 그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을 뜻한다.
[임형도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호(201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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