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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혁신 라운지 ⑦ 휴먼에러 퇴치법 | 기업의 대형 산재 사고 80%는 부적절한 결정이나 행동서 발생
입력 : 2020.10.13 10: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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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필연적이고 당연한 ‘정상사고’ 1979년 3월 28일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스리마일은 서스퀘헤나강 가운데 위치한 섬인데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길이가 3마일이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스리마일섬 발전소는 1974년 9월 원자로 1호기의 상용가동을 시작했다. 약 4년 뒤인 1978년 12월 원자로 2호기를 증설하여 상용가동을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난 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정각에 사고가 발생했다. 약 12만 리터의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면서, 인근주민 20만 명이 대피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사고의 여파는 컸다. 냉각수가 다시 공급되고 원자로 온도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약 한 달이 걸렸고, 3년이 지난 1982년에야 내부 연료봉 피해를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 이후 약 14년간에 걸친 방사능 오염제거에 100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다. 하지만 아직도 서스퀘헤나강에서는 기형 물고기가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사고의 시작은 원자로 스팀발생기에 공급되는 응축수 이송 펌프에서 비롯됐다. 응축수 펌프의 필터가 막히자 운전절차에 따라 역세척을 실시하던 중 오염물 덩어리가 역류하면서 펌프가동이 중단됐다. 응축수 공급이 중단되자 스팀발생기의 내부 압력이 올라가고, 안전밸브가 작동됐다. 안전밸브는 작동 후 원래 위치로 돌아와야 하나 정비 불량으로 리셋 되지 않았다. 보일러 튜브에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튜브과열로 파열위기에 있었지만 비상공급 펌프는 작동하지 않았고, 비상냉각 장치가 가동이 됐지만, 운전원이 다시 꺼버렸다. 튜브 내 소량의 물이 끓어오르면서 발생한 레벨게이지 오작동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튜브는 파열됐고 방사능 오염수가 쏟아져 나왔다.
‘정상사고’의 개념이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원자력이나 핵무기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안전확보를 위한 안전관리와 사고예방 조치는 이루어져야만 한다. 또한 동일한 정도의 위험수준과 편익수준을 갖는 동종의 기업이라 해도 사고가 발생하는 조직이 있고, 사고를 철저히 예방하는 조직이 있다. 조직의 총체적인 안전관리 기술과 실행력이 사고의 발생여부를 결정한다는 주장이 ‘조직사고’ 개념이다.
▶사고원인이 조직 안전관리체계 경영철학과 연관된 ‘조직사고’ 2005년 4월 25일, 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후쿠치야마선에서 7량으로 편성된 쾌속열차가 커브 구간에서 탈선하여 인근 아파트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기관사를 포함한 107명의 인원이 사망하고, 562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2차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뒤따르던 특급열차가 100m 전방에서 가까스로 멈추는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 열차 탈선으로 인해 전력공급이 끊어지면서 열차방호 무선장치가 작동불능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사고를 목격한 인근 주민이 건널목에 설치된 특수신호 발광기 스위치를 수동으로 작동시켜 가까스로 충돌을 막았다. 이후 급정거한 특급열차 기관사에 의해 방호무선이 발령되고 사고 조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고원인 분석결과, 사고 기관사는 23세의 경력 11개월 차 기관사로 그동안 열차 정지 위치를 지나쳐 버리는 ‘오버런’을 몇 차례 반복했었고, 사고 당일도 이전 역에서 ‘오버런’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허위기록과 보고의 전력이 있으며 이에 따라 3차례나 일근교육을 받은 이력도 드러났다. 일근교육이란 과실이 있거나 근무태도가 나쁜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 규정의 필사, 시말서 작성, 상사면담, 선로청소 등을 시키는 징벌적 조치다.
사고 초기 기관사 개인의 직무 부적격성이 속속 드러나면서 근본원인으로 대두되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와 전문가들의 분석이 진행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들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철도 운행사 간의 과도한 경쟁에 따른 과밀한 운행시간표, 정시운행, 소요시간 단축, 차량편성 증가 등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과도한 직무환경과 직무여건이 드러났다. 특히 정시운행을 위해 열차를 고속운행한 후, 정차역 직전에 강한 제동을 거는 편법 운행이 상시화되어 있는 점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어서 사고차량 모델의 브레이크 기능 취약, 차체 경량화로 인한 측면충돌 취약성 방치 등 설계상의 하자가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차체 경량화에 따른 설계 결함, 선로 회전구간 반경 등 건설시공상의 결함, 기관사의 운전미숙, 경험부족 및 심리적 압박 등 개인적 특수 성향, 수익 최우선의 경영, 징벌적 안전관리 등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사고였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일본 사회에서는 후쿠치마야 탈선사고가 사회적 안전의식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였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고의 원인이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안전관리체계, 경영철학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조직사고’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이해되고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휴먼에러는 시스템의 성능·안전·효율을 저하시키거나 감소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는 ‘인간의 부적절한 결정이나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종합적 판단과 조치가 가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실수나 불안전한 행동이 불가피한 특성도 동시에 지닌다. 분석에 따르면, 일반적인 작업의 경우 하루 약 2만 번의 행위가 이루어지며, 인간은 직무수행에 있어 1000~1만 번에 한 번꼴로 실수를 저지른다고 한다. 관리자건 작업자건 모든 인간은 하루 2번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개인과 조직이 함께해야 휴먼에러를 막을 수 있다.
휴먼에러를 단순히 개인의 실수나 부주의, 안전의식의 결여로 치부해서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의 80%는 대책도 예방도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조직의 책임만 강조해서 징벌적 책임추궁을 강화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휴먼에러는 결코 개인의 약점이나 결함이 아니며 인간이 가지는 본래적인 특성일 뿐이다. 따라서 교육이나, 경고, 처벌을 통해 휴먼에러를 방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인간의 특성이라는 관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실수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개선 가능한 영역이다. 또한 OECD 최저수준의 산업재해율을 극복하고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씻기 위해 보다 철저히 집중하고 산업재해 저감의 핵심 포인트다.
휴먼에러 예방의 어려움은 획일적 한두 가지 대책으로는 예방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휴먼에러의 다양성은 근로자 인원수와 동일하다. 각 개인의 숙련도와 직무지식이 다를 뿐 아니라, 노출되는 위험의 종류와 내용, 심각성 또한 서로 같지 않다. 따라서 조직관점에서 낮출 수 있는 위험도가 있고, 개인차원에서 낮춰야 하는 위험요인이 있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유형을 빈도와 강도를 기준으로 분류해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발생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대형재해로 이어지는 사고유형이다. 둘째는 경미하고 작은 사고지만 높은 빈도수로 발생하는 유형이며 셋째는 개인적이고 부분적인 오류가 대규모 재해로 확장되는 사고유형이다. 첫 번째 유형은 안전공학과 안전관리 기술의 적용 등 조직이 주도적으로 분석과 대책을 수립하고 책임져야 한다. 두 번째 유형은 개인차원에서 오류의 발생가능성을 인지하고 위험을 회피, 차단하는 노력이 중요하며,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은 조직과 개인의 협력과 협동이 필수적인 영역이다.
산업재해는 가해자가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과 기업 모두가 치명적인 피해자가 된다. 산업재해율이 0.5%대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사고의 원인이 설비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고의 원인이 달라지면 대책과 실행 또한 달라져야만 한다. 휴먼에러는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고, 조직만의 책임도 아니다. 인간과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개인과 조직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지 않는 한 휴먼에러는 줄일 수 없고 사고는 예방할 수 없다.
[김기홍 가온파트너스 대표]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1호 (2020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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