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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의 기업 전략 下 | 퍼블릭 어페어즈(PA) 역량 강화로 규제환경 정책 리스크 대응해야
입력 : 2020.05.07 11: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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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움직이는 힘인 ‘보이지 않는 손’과 비교해 비시장(非市場, Nonmarket)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정책과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은 ‘보이는 손’으로 기업이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면 관리할 수 있다. 이러한 ‘보이는 손’과의 소통을 통해 효과적으로 기업이 당면한 이슈나 어젠다를 사회와 정부, 정치권에 전달하는 과정을 퍼블릭 어페어즈(Public Affairs: PA)라 한다. PA는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논의를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활동에 영향을 주는 의회,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 언론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대중의 공감과 동의를 얻기 위한 전략의 핵심이다. 교육 수준의 향상과 전 세계의 소식과 트렌드가 함께 전달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시장 밖의 외부 환경에서 제기되는 쟁점은 글로벌화되어 있고, 관여하는 이해관계자도 시장과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환경운동이 우리나라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들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빠르게 관련 어젠다들이 전파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전 세계로 얽히고, 각각의 주장이 서로 경쟁하는 기업 경영 현장의 대표적인 국내외 사례들을 통해 기업이 이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정치 사회적 외부 환경 변화를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 가는지 살펴보자.
이해관계자들과 새로운 관계 설정해 기업 혁신 사회 변화 이끌어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Walmart)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날마다 낮은 가격” 정책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영업방식이었다. 이 회사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자 기존의 영업방식에 배치되는 각종 쟁점이 제기되었다. 낮은 임금과 근로조건, 취약한 의료보험 적용과 뒤떨어진 복지제도, 불법 이민자 고용, 반노조 정책, 골목상권 보호, 쓰레기를 포함한 환경 문제 등이 이슈가 되었다. 다양한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 단체들이 월마트를 반대하는 운동을 격렬하게 전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이 회사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관련 쟁점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이해관계자(정치인, 사회운동단체, 언론 등)들과 접촉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순차적으로 설정해갔다. 2015년에는 10억달러를 투입해 최저임금을 인상했을 뿐만 아니라, 동종 업계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연방의회에 최저임금 인상 입법을 지지하기도 했다. 또한 전 세계 거래처를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오고 있다. 월마트의 슬로건 “언제나 낮은 가격, 언제나(Always Low Prices, Always)”도 변화하는 시장과 비시장 환경에 맞춰 “비용 절감, 더 나은 생활(Save Money, Live Better)”로 변경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월마트의 영향력이 거래하는 모든 가치 사슬의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관련 기업과 산업의 혁신, 나아가 사회변화까지 이끌었다는 점이다.
▶페덱스
환경단체들과 협업해 비용 절감 온실가스 배출 감소 성과 거둬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지구온난화 등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자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 정책을 도입했다. 2004년 글로벌 물류기업 페덱스(Fedex)는 주요 운송 수단인 트럭의 연료 사용 효율화를 통한 경비 절감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라는 사회적 요구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연료와 전기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전기 트럭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장애 요인은 이 트럭의 제작비가 기존 트럭보다 75% 더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이 회사는 환경단체들과 함께 연방정부에 기존 트럭의 연료효율 기준치를 더 높이도록 하고, 연방 환경부와 주(州)정부가 이 트럭의 제작비를 보조하게 하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페덱스는 전 세계적으로 각종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트럭 1800대를 보유하고 있다. 페덱스는 비용 절약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 감소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전기 트럭 운용의 기술적 우위와 회사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켰다. 이 사례는 기업이 사회적 요구를 현명하게 받아들이면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서서 내부 혁신도 만들어내고, 비시장 외부환경에 속한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 밖 환경 변화 적극 관리해야
기업의 비시장 전략 중 하나인 PA 활동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투명하게 표출되고 논의될 수 있는 환경이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이러한 비시장 전략은 주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이룩한 이후 오랜 기간 이러한 논의들에 대한 사회적 훈련을 받아왔고,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빠른 변화로 인해 주요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개별 소비자들도 자신의 의견을 쉽게 표출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 아직 PA가 성장하기 힘든 정경유착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기업들이 제기되는 쟁점을 중심으로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소통 협력하는 데 있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가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CSR 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 활동을 강화해 오고 있다. 아직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혁신을 이루는 활동보다는 기업에 대한 불신에 대응하기 위한 ‘착한 기업’의 이미지를 만드는 활동이 주를 이루지만, 최근의 SK가 제시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회계기준인 ‘더블 보텀 라인(Double Bottom Line)’이나,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등은 기업의 자율적인 노력의 씨앗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환경으로 인해 기업과 정부가 먼저 가면서 충분한 사회적 지지가 이뤄지지 못한 분야들도 있다. A사가 추진 중인 수소차 프로젝트는 화석 연료에 기초한 현재의 산업 구조를 바꾸고 수소사회의 도래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선도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A사는 수소사회에 관한 비전을 함께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이뤄야 한다. 영국 석유회사 BP가 석유와 석탄 등 화석 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석유를 넘어서(Beyond Petroleum)’라는 캠페인을 통해 화석 연료 이후 시대를 대비하면서 평소 적대적이었던 환경론자를 비롯한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기업 평판을 높인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경제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수용하고 이를 통해 경영혁신과 사회변화를 이루어내는 활동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의 시장 전략과 비시장 전략이 균형 있게 결합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업전략이 탄생할 수 있다.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사 내에 대관팀, 법무팀, 홍보팀 등으로 PA 기능이 분산되어 있다. 많은 선진기업들은 이들 부서를 하나로 통합하여 시장 전략과 비시장 전략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PA 역량 강화를 통해 ‘보이는 손’과 악수하며 날로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장 밖의 외부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시점이다.
[이보형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6호 (2020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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