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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혁신 라운지 ① 동적 역량론(Dynamic Capability) 불황은 지속 가능 혁신 시스템 구축의 기회
입력 : 2020.04.01 11: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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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가온파트너스 대표
▶마스크를 쓰고 하는 열띤 혁신 전략 재정립
필자는 현재 한 기업과 2020년 혁신 방향을 재정립하기 위해 함께 고민 중이다. 오랜 기간의 혁신 활동으로 혁신의 수준과 역량이 남다른 기업이다. 신임 CEO의 판단에 따라 현재의 혁신 체계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한 단계 도약이 가능한 새로운 혁신 체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협의 때마다 체온을 재고 마스크를 끼는 불편함도, 직원들의 뜨거운 열의 앞에서는 사소한 절차에 불과했다. 혁신 역량의 객관적 측정을 위해 2019년 경영실적을 분석했다. 수치로 나타난 우수한 경영실적과는 달리, 기업이 통제할 수 없었던 환경요인을 배제하고,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의 혁신 성과를 집계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처참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1년간의 경영 성과를 좌우한 것은 구성원들의 노력이 아니라 경영환경의 변화였다. 혁신 활동이 환경변화에 매몰돼버린 것이다. 해당 기업은 기술수명과 제품수명 주기가 긴 업종이어서 더욱 충격이 컸다. 혁신체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CEO의 직관이 돋보였다.
해당 기업의 혁신성과 매몰은 조직의 혁신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충분한 혁신 역량과 왕성한 실행력이 한계에 부딪혀있을 뿐이다. 혁신 성과가 낮아지면 기업은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다. 왕성한 실행력과 의지가 있으니 새로운 관점에서 과제만 찾아낼 수 있으면 이를 성과로 연결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혁신의 한계상황은 새로운 과제가 아니라 새로운 과제를 찾아낼 수 있는 혁신 체질과 구조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관심을 갖는 경영이론으로 동적 역량론(Dynamic Capability)이 있다. 기존의 ‘핵심 역량’ 이론만으로는 기업의 지속적인 생존과 성장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동적 역량이다.
핵심 역량은,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가 있고 경쟁사가 모방하기 어려우며, 희소성이 있는 자원과 역량의 확보가 사업 성공의 원천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업환경의 변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정태적 자원의 활용만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동적 역량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내부 및 외부 역량을 통합, 구축,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역량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며, 자원 배분을 통해 변혁을 이루는 3단계의 구성요소로 설명된다. 요컨대 역량을 만들어내는 역량이고 지속 가능한 혁신(Sustainable Innovation)을 지향하는 경영 시스템이다.
동적 역량론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고 불명확한 미완성의 개념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실행개념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실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완성된 개념이라고 해서 현장의 성공적 적용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경영이론의 발전과정에 있어 학계가 책상이라면, 현장은 항상 기업이었다. 극복해야 할 한계의 실체가 있고, 극복을 위한 도전이 있으며, 성공과 실패라는 도전의 결과가 구현되는 곳은 경영현장인 기업이었다. 올바른 개념이라면 실현해낼 수 있다. 시도하지 않을 뿐이다. 혁신 성과는 단순한 과제해결이 아니라 혁신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다. 혁신 시스템은 마구잡이식 문제해결의 확대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해결 결과를 하나의 차별적 경쟁력으로 일관성 있게 취합해준다. 혁신 시스템 속에서 새로운 과제의 도출에 필요한 역량이 제공되고, 해결을 위해 필요한 지원이 이루어진다. 다양한 영역에서 추진되는 단위조직의 성과가 절대적 혁신목표를 향해 균형 있고 일관성 있게 정렬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른바 균정(均整, Balance & Alignment)이다.
지속 가능한 혁신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CEO를 비롯한 기업의 혁신 리더들의 관점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절대적 혁신이라고 믿었던 성과중심사고에서 벗어나, 혁신을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관점만으로도 성공적인 출발을 할 수 있다.
▶지속적 혁신 시스템 구축을 위한 4가지 관점
현재 차별적 혁신 성과가 답보상태에 있고, 지속 가능한 혁신 시스템을 고민하는 CEO와 혁신리더는 다음 4가지 사항을 통해 스스로의 혁신 관점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전환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최소한 중기적 관점으로 혁신을 보라.
성공적인 혁신 기업의 공통점은 혁신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느 한두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획기적 성과가 아니라, 전사적 관점의 고유한 혁신 시스템과 문화를 성과로 이야기한다. 혁신이 경영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혁신 자체가 경영의 목적이 됐던 것이다. 혁신 시스템의 구축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섬세하고 치밀한 진단과 지속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초기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구성원들의 이해와 동참을 만들고 새롭게 설계된 혁신 시스템 속에서 작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하기까지 최소 7~10개월은 소요된다.
2. 성과가 아닌 시스템을 점검하고 재구축하라.
혁신 시스템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기능하는 한 성과는 지속적으로 창출된다. 현재 새로운 성과 창출에 한계를 느끼는 기업은 혁신 시스템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한계 돌파를 위한 해결책이 참신하고 새로운 과제가 아니라 혁신 시스템의 취약성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바람직한 혁신 시스템은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은 물론,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외부의 지식을 조직 내부로 끌어들이며, 내부의 경험과 노하우를 인큐베이션(incubation)하여 하나의 혁신 목표로 정렬시켜준다.
3. 과제가 아닌 경영을 보게 하라.
과제는 혁신의 출발이다. 기업의 운영 전반에 걸쳐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새로운 성과를 추구할 수 있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혁신 과제란 현재의 모습과 이상적인 모습의 격차(Gap)다. 따라서 좋은 과제 도출을 위해서는 경영전반에 걸친 검증된 지식이 갖춰져야만 한다. 자신의 담당 업무가 지식의 전부라면, 과제는 자신의 업무에서 찾아진다. 내가 업무가 아니라, 부서와 부문의 업무를 이해하고, 각 기능 업무의 상호 연계성을 전사적 경영관점에서 이해할수록 과제의 수준은 높아진다. 혁신 역량을 ‘이상에 도전하는 힘’이라고도 한다. 이상에 도전하는 힘은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그 이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에서 온다.
4. 목표 달성이 아닌 혁신 시스템의 지속을 고민하라.
마지막 남은 일은 혁신 시스템이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혁신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성과는 따라온다. 더 높은 수준의 혁신 성과를 원한다면, 시스템 내에 필요한 지식과 지원을 넣어주고, 더 높은 수준의 혁신 목표를 구성원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으면 된다. 조직 구성원들이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혁신 시스템은 유기체처럼 작동한다. 한 번 완성됐다 하더라도 곧 한계에 빠진다. 혁신 시스템의 유지는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구성원의 역량이 향상되고, 혁신 과제의 수준이 높아지면 혁신 시스템도 그에 따라 꾸준히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지금이 지속 가능한 혁신 체계를 위한 최적의 기회
야구 경기에서 승리를 하는 것은 모든 타자가 홈런만 쳐내기 때문이 아니다. 안타도 치고, 번트도 댄다. 포볼을 골라 나가기도 하고, 도루를 하기도 한다. 혁신 시스템이 기업혁신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모든 구성원들이 혁신이라는 큰 경기 속에 항상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업이 가진 최대의 역량을 결집시키고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경기 침체기를 호황에 대비한 포지션 구축의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포지션 구축은 침체기 속에서의 혁신성과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호황기에 폭발적 크기의 성과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이다. 잠재성과를 극대화하는 가장 획기적인 방법은 혁신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혁신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김기홍 가온파트너스 대표]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5호 (2020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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