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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륙 피케티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 2014.09.02 17: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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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물이 바로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보다 올해 영역본이 나왔을 때 미국에서 더 큰 돌풍을 일으켰다. 가장 자유로운 자본주의체제를 확립한 나라에서 700쪽이나 되는 경제서를 그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하며 사 본 까닭은 무엇일까. 보수적인 학계나 정치·경제계로서는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이 현상을 ‘피케티 신드롬’이라고 불렀다. 그 신드롬이 한국에까지 번지고 있다.
피케티의 주장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 ‘r > g’ 라는 부등식이다. 지난 300년에 걸친 자본주의 역사를 볼 때 자본수익률(r)이 늘 경제성장률(g)을 웃돌았다는 뜻이다. 보통사람들의 소득은 평균적으로 경제성장률과 같은 속도로 늘어난다. 1700년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1.6%에 그쳤다. 그중 절반은 인구 증가에 따른 것이니 1인당 소득 증가율은 1%에도 못 미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성장률이 3%에 이르렀지만 지금처럼 인구가 늙어 가면 앞으로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
이에 비해 토지나 건물, 주식이나 채권, 공장이나 설비처럼 저절로 수익을 내는 자본은 그보다 높은 수익을 낳는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자본수익률은 대략 5% 안팎이다. 피케티는 프랑스혁명 후 사회상을 보여주는 ‘고리오영감’이나 대영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성과 감성’ 같은 소설 속에서도 토지 임대료든 국채 이자든 모든 재산의 수익률은 공통적으로 5%였음을 발견한다.
이처럼 평균적인 성장률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자본은 계속해서 쌓여 가기 마련이다. 선대에서 물려받은 것이든 당대에 쌓은 것이든 자본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충격이 남아 있던 1970년대 초까지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은 불평등이 줄어든 예외적인 시기였다. 과거에 쌓은 자본이 전화(戰火)로 철저히 파괴된 데다 각국이 고소득자들에게 매우 높은 세금을 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혁명’이 있었던 1980년대부터는 다시 자본이 득세했다. 이제 자본수익률은 3~4%로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자본총량이 국민소득의 2~3배에서 5~6배로 다시 늘어났다. 다시 말해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을 가진 이들의 몫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피케티가 21세기의 세계는 다시 19세기의 ‘세습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당대의 노력보다는 선대가 물려준 부가 더 중요해지는 더욱 불평등한 체제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인구 증가율과 성장률이 떨어질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에 대한 피케티의 처방은 여러 가지다. 그는 특히 지식과 기술의 확산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교육 개혁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해법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해법은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다. 예컨대 재산이 100만유로(약 14억원) 미만이면 0.1%, 100만~500만유로이면 1%, 500만~1000만유로면 2%, 몇 억, 몇 십억 유로이면 적게는 5%, 많게는 10%까지 해마다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다. 이때 과세 대상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개인의 모든 재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이다. 각국 정부가 은행 정보를 공유하며 긴밀히 협력해야 과세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상적인 형태의 글로벌 자본세 과세가 어렵다면 우선 지역적인 협력체제라도 구축해 불평등의 끝없는 소용돌이를 막아보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피케티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그는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극찬했다. 특히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탄 크루그먼은 ‘21세기 자본’이 앞으로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책이 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반면 그레고리 맨큐, 마틴 펠드스타인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학자들은 피케티의 진단과 처방 모두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파이낸셜타임스 지가 피케티의 통계분석에 많은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자 이코노미스트 지는 설사 사소한 오류가 있더라도 대세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처음에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에서처럼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학자들과 진보적인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도 어느 때보다 심각한 부의 양극화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므로 이런 논쟁은 상당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머지않아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한다면 저성장과 양극화의 악순환은 갈수록 끊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교육개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세제 개혁은 정치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상태라면 피케티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무거운 화두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 절차가 얼마나 건강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식인들이 얼마나 열린 자세로 담론을 이끌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피케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논쟁은 ‘귀머거리들 사이의 대화’가 되기 십상이다. 실증적인 데이터와 치밀한 논리를 뒷받침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쟁은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낼 수 없으며 되레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마침 지난 5월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국부(국민순자산) 통계를 처음으로 내놓아서 피케티와 같은 연구에 필요한 자료에 목말라했던 학계에 단비가 되고 있다. 2012년까지 우리나라 가계와 정부, 기업이 쌓은 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7배인 1경630조원에 이른다. GDP 대비 순자산 비율에서 우리는 일본(6.4배), 프랑스(6.7배), 캐나다(3.5배)와 같은 선진국들보다 앞선다. (하지만 구매력을 따지면 우리나라 가계의 순자산은 아직 미국의 63%, 일본의 82%에 그친다.) 한 해 동안 창출하는 소득(GDP)에 비해 축적된 자산(국부)이 많을수록 당대의 노력보다는 선대에서 상속받은 재산이 중요해진다. 장기 저성장과 부의 양극화와 관련해 많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지구 반대편의 한 젊은 학자가 던진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진지하고 열린 자세로, 이념보다는 사실을 중시하며 올바른 답을 찾아가려는 태도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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