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休 나무 그늘 아래 머물다

    입력 : 2013.07.15 09: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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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편안하게 눕는다. 양팔은 손등이 마루에 닿도록 적당히 늘어뜨린다. 눈을 가만히 감고, 머리는 좌우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고정시킨다. 온몸에 긴장을 푼 상태에서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며 호흡한다. 이것이 ‘사바 아사나(Shava-Asana)’, 8만여 가지의 다양한 자세로 이루어진 요가 수행에서 가장 기본이자 궁극으로 알려진 자세다. 얼핏 보면 별다른 노력이나 기술이 필요 없이 그냥 누워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자세를 정확하게 취할라치면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몸의 어느 한구석도 긴장하지 않고 완전히 이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스스로 호흡을 헤아리며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요가에서 사바 아사나는 완전하고 조화로운 휴식의 자세이다.

    사바 아사나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송장 자세’ 혹은 ‘시체 자세’다. 죽음이야말로 영원한 쉼에 다름 아니라는 뜻일 테다. 사바 아사나를 정확히 잘 취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수행을 하는 것이 필수다. 제대로 수행을 마치고 완료하는 동작으로 사바 아사나를 하면 수행을 하기 전과 달리 더없이 편하고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잡스러운 생각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이런 휴식이 마지막이라면 죽음도 아주 나쁘지는 않을 게다.

    잘 쉰다는 것이 점점 쉽지 않아진다. 일주일 중 하루 혹은 이틀이 휴일로 정해져 있지만 모든 일에 효율성과 실용성을 따지는 현대인들에게는 휴일조차 과제나 마찬가지다.

    날씨가 좋으면 어디론가 놀러 나가야 한다. 꽃이 피면 꽃을 봐야 하고 축제가 열리면 축제장에 찾아가 뭐라도 재미난 것을 봐야 한다.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것도 일이다. 인터넷으로 맛집 검색을 하고 남들의 품평까지 바지런히 읽어야 한다. 휴일의 막바지는 꽉꽉 미어터지는 고속도로 위에서 보내기 십상이다. 자신도 도로를 메운 사람 중의 하나면서 질세라 자동차를 끌고 나온 다른 사람들을 욕한다.

    어떤 이들은 일주일 동안 누적된 피로를 풀겠노라고 휴일을 몽땅 이부자리 위에서 보낸다. ‘불타는 금요일’을 보낸 후유증으로 해가 중천에 뜬 후에야 부스스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시켜 먹는다. 소파에 길게 누워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가수면 상태에서 몽롱한 오후를 보낸다. 아무리 자도 쌓인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월요일이 시작되면 또 다시 쳇바퀴를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하릴없이 뒹굴면서도 괜스레 초조하다.

    그런가 하면 무한경쟁 시대에 앞서 나가기 위해 휴일을 자기계발의 기회로 불사르는 열혈한들도 있다. 어학원에서 주말 강좌를 들으며 외국어 실력을 쌓고 골프장에서 접대 겸 인맥 형성에 주력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한다. 휴일은 평일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는 기회일 뿐, 마냥 퍼질러져서는 ‘루저’가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일을 보내고 나면 피로감이 말끔히 사라지고 산뜻하게 재충전이 되었다는 기분보다는 새로운 피로감에 젖기 십상이다. 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쉼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 워커홀릭(Workaholic), 일중독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해 마침내 명백한 질환으로 분류되기 전까지 ‘월화수목금금금’을 외치며 일하는 사람들은 성실하고 뛰어난 일꾼으로 찬양받았다. 그러나 일중독은 수집, 경쟁, 먹기, 낚시, 도박, 달리기, 거짓말, 완전주의, 종교, 모험, 섹스, 쇼핑, 텔레비전 등과 함께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아치볼드 하트(Archibald D Hart)의 저서 <숨겨진 중독(Healing Life’s Hidden Addictions)>에 엄연한 중독으로 명시되어 있다. ‘숨겨진 중독’은 범법은 아니지만 건강하지 못한 원인에서 비롯되고 장애나 유해 스트레스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는다. 일하고 있지 않을 때 불안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일중독은 결국 쉬지 못하는 병이다. 중독을 진단하는 몇 가지 기준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더욱 명백해진다. 중독에는 내성이 생긴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일하지만 일단 그것을 성취한 뒤에는 더 강도 높은 목표를 세운다. 중독에는 금단 현상이 있다. 일을 멈추면 불안해지고 더 큰 피로감을 느낀다. 중독된다는 것은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을 잊거나 배척한다는 뜻이다. 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스스로 휴일이나 휴가도 반납한다.

    또한 중독은 그로 인해 생리적이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생겨도 멈추지 못하고 지속된다. 금전이나 지위의 보상을 얻는 대신 건강이나 가족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도 일중독자는 그것을 놓지 못한다. 중독에는 자기파괴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중독자는 정말로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동안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었다.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애당초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변화는 숨 막히도록 빠르고, 그 속에서 실패가 두렵고 패배자가 되기 싫은 사람들은 잠시도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열심히 달렸지만 제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처받은 앨리스들에게 세상이라는 이름의 붉은 여왕은 싸늘하게 말한다.

    “이곳에서 제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달려야만 해!”

    하지만 오로지 뒤처지지 않기 위해 헐떡거리며 달리는 삶은 결국 모든 앨리스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OECD 1위국을 넘어 마침내 전 세계 자살 1위국에 등극한 한국 사회에 간절한 것은 일단 멈춤, 그리고 쉼이다.

    쉼은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일하기 위한 재충전의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끼기 위해 절실하다. 한자로 쉴 휴(休)자는 나무 그늘 아래 사람이 자리한 형상이다. 그래서 쉼은 자연의 일부분으로 자신을 깨닫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자연은 오직 스스로 그러하다. 햇볕은 뜨겁기를 시험하지 않고 바람은 거세기를 경쟁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쉼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를 다그쳤던 나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과 조바심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사바 아사나 자세로 고요히 누워 있으면 절로 마음에 행복감이 깃든다. 이름은 무시무시한 송장 자세지만 완전한 휴식 속에는 과거의 상처도 미래의 공포도 없다. 온전한 나와 오롯한 현재의 삶이 있을 뿐이다. 쉼은 삶이다. 삶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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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별아 소설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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