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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엽 칼럼] 컴패션(Compassion)
입력 : 2012.12.27 11: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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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1년 열두 달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1년 열두 달로 나눈 것은 동서고금의 선조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태양과 달을 관찰해 만들었다고 하지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지만, 2013년 역시 면면히 흘러온 장구한 세월의 한 매듭일 뿐입니다. 그래도 한 해라는 기준이 있기에 지난 가닥을 마무리하고, 다음 가닥을 잡아가는 길잡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은 새해를 맞아 작심 3일을 빗대어 ‘작심 30년’을 구상해봤습니다. 3일도 어려운데 30년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플랜을 갖고 있느냐, 생각이라도 해봤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2040세대나 5060세대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은 다르겠지요. 얼마 전 대기업 CEO에서 은퇴한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앞으로 28년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동양철학을 배우려고 대학원에 다니고, 새로운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월은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러가고 맙니다. 먼 훗날이 돼서야 옛일을 되돌이켜 회한에 잠기는 게 인생살이겠지요. 굳이 여러 숫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에 훌쩍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마치 개도국인듯 중진국인듯 어정쩡한 입장에 서려고 합니다. 당당하게 선진국임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는 품격을 쌓아 올라가야겠지요. ‘Quality Korea’ 기획을 통해 우리 앞에 다가온 선진국의 조건을 따져봤습니다. 이미 법과 제도만을 놓고 보면 한국은 서방 선진국 못지않게 높은 기준, ‘서구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투명성이 부족하지요. 제도는 좋치만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 문제이지요.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 시리즈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는 “한국과 중국,일본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서방에 우호적이었던 탓에 서양 제도를 오리지널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진단했습니다. 중화주의로 똘똘 뭉친 중국과, 화혼양재(和魂洋才)로 자기 것을 잃어버린 일본과 한국은 서양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이 교수는 한국이 지닌 독특한 전통과 서방 제도가 어우러지면서 요즘 한류로 폭발하고,김연아 박세리 싸이가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선진 한국’에 닥칠 난제가 더 많습니다.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는 한국을 잘 아는 교수로 꼽힙니다. 그는 지난해 세계지식포럼 강연에서 “한국이 저성장 구조에 접어들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3~4% 성장이 한계라고 보고 있지요. 그는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을 높이고,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것 등 6가지 제언을 내놓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 현대사에서 첫 여성 대통령으로 등장했습니다. 박 당선인이 지난 12월 19일 광화문 광장에서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당선 인사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통합 대통령과 행복 대통령,약속 대통령을 다짐했습니다. 박 당선인은 지지해준 1580만표보다 반대표를 던진 1470만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큰 숙제를 안고 출발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확고한 지지세력에 힘입어 당선됐으나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로 임기 중에 함께 추락했습니다.
모든 대통령들이 숙명처럼 겪는 하나의 공식이 돼버렸습니다.
박 당선인은 지지자든 반대자든 국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대통령이 되기를 믿어봅니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컴패션(Compassion)”이라고 말합니다. 지역간 세대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기득권 세력과 반대 세력이 맞서고 있습니다. 고대 셈족 언어에서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을 라흐민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어머니와 아이의 원초적 관계처럼 사심없이 서로에게 헌신하는 게 바로 컴패션입니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어머니와 누나 같은 배려심으로 깊이 이해하고 화합하고,어려운 이들에게 빛을 던져주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대결하고 승부를 다투는 남성 리더십을 넘어서,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그리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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