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inion] 시진핑 호(號)가 떠안은 짐

    입력 : 2012.12.07 16:10:50

  • 중국 새 지도부. 사진 왼쪽부터 시진핑·리퀴창·장더장·위정성·류윈산·왕치산·장가오리
    중국 새 지도부. 사진 왼쪽부터 시진핑·리퀴창·장더장·위정성·류윈산·왕치산·장가오리
    시진핑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시 총서기가 차기 총리로 내정된 리커창 등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한 명씩 소개하는 것으로 진행된 첫 상견례는 중국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그의 취임 일성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었으나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임무와 사명을 완수하고, ‘인류에 공헌’하며, ‘엄중한 도전’을, ‘개혁개방’으로 극복하겠다는 자신감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 개혁·개방 30여년의 눈부신 업적인 세계 2위 경제대국을 자산으로 물려받았다. 동시에 고속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방치되고 심화되어 온 사회 각 분야의 첨예한 모순과 갈등들도 부채로 떠안았다. 이제 막 출항한 ‘중국 호’가 순항할지, 아니면 심한 풍랑에 휘말릴지는 이런 갈등과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지도부가 직면한 문제는 정치 경제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돌출해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당대회에서 인정했듯 부정부패와 부진한 정치개혁, 불평등과 불균형, 빈부격차와 도시·농촌 간 격차 확대, 의료·교육 등 복지 결함 등 중국이 풀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30년 쌓인 모순·갈등 부채로 떠안아 중국 최고 지도자가 공식 업무보고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인정하고 반성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시 총서기는 후진타오 주석의 주문에 따라 ‘포괄적’이고, ‘균형적’이며,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발전의 3대 원칙을 기반으로 정치·경제·문화·사회·생태 등 5개 분야에 걸친 전 방위 개혁으로 현재의 난관을 돌파한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이번 18차 당대회에서 지도사상으로 채택된 ‘과학적 발전관’과 ‘5위1체’의 방식의 해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은 중국 사회 모두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신지도부가 직면한 모순들은 개혁개방 30여년에 걸쳐 축적된 모순의 총 집약이다. 또 개혁·개방의 혜택을 입은 일부 수혜자와 그렇지 못한 대다수 간에 존재하는 모순이요 갈등이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은 “일부가 먼저 부유해져야 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을 제창했다. 이 덕분에 중국 내 신흥 부유층이 탄생했고 이들은 급속한 부(富)를 축적했다. 상위소득 10%와 하위소득 10% 사이에 무려 23배의 소득격차가 난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조건과 여력을 갖춘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개발한다는 발전전략은 그렇지 않아도 차이가 나는 연안과 내륙 간 격차를 더욱 확대시켰다.

    중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매진한 산업화 전략 또한 빈부격차 확대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업화에 따른 노동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농촌인구의 상당수가 도시로 유입됐다. 결과적으로 농촌은 황폐화됐고, 도·농간에는 발전 속도와 내용 면에서 메울 수 없는 격차가 나타났다. 국영기업과 민간기업 간 불균형도 같은 이치다.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은 국영기업은 금융, 통신 등 기간산업에서 눈부신 도약을 거듭함으로써 세계 50대 기업으로 줄줄이 올라섰다.

    이에 반해 정책지원이나 국가자원 배분에서 상대적으로 홀대 당한 민간기업과 중소기업은 갈수록 왜소해졌다. 중국인들이 ‘국진민퇴(國進民退·국영기업은 흥하고 민간기업은 쇠락한다는 뜻)’라고 부르는 양극화 현상이다.

    따라서 시 총서기의 개혁은 기득권층인 수혜자들에게 희생과 고통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출발하고 있다. 빈부격차 해소 방안으로 계획 중인 세제개혁과 소득분배 구조개혁, 국영기업 독과점 방지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개혁조치가 가동되면 이들은 전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국영기업은 과거 자신들이 누렸던 정부지원 등과 같은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할 처지다. 그러니 달가워 할리 만무하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개혁조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농민공들이 의료·교육 등에서 차별 받지 않고 도시에서 일할 수 있으려면 현행 호구제도 철폐는 필수적이다. 도시 호구가 없으면 자녀들의 학교 입학은 물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구제도 철폐는 이런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민공들은 의료, 교육 등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대도시를 선호할 게 분명하다. 이 경우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가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이미 2000만명을 돌파한 엄청난 인구 때문에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벌떼처럼 밀려오는 농민공들을 감당하기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다.

    정치개혁은 더욱 민감하고 난감하다. 근본적 문제는 원자바오 총리의 지적처럼 “권력이 공산당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고, 이를 견제해야 하는 사법부가 독립돼 있지 않으며, 권력을 감시·감독해야 할 언론이나 야당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을 하려면 선거제도를 고쳐 직접선거를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당 지휘를 받는 사법부도 독립시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뿌리째 위협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에선 “살코기는 다 발라 먹고 뼈다귀 밖에 없다”는 말로 현 상황을 비유하고 있다. 요컨대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손쉬운 개혁은 이미 끝났고 지금부터는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는 개혁만 남았다는 얘기다. 한 곳을 건드리면 온갖 문제가 고구마 줄기 딸려 나오듯 파생되는 상황은 문제 해결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미국과 힘의 균형 과제 중국이 직면한 외교적 난제도 만만치 않다. ‘전략적 再균형’을 표방하며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미국과 세계 도처에서 충돌하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과는 남중국해 영유권, 일본과는 댜오위다오 주권문제로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지도부는 이 모든 배후에 대중국 포위망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믿고 있다.

    시 총서기는 지난 2월 미국 방문 시 ‘신형 대국(大國)관계’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양국이 상대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고 미국은 중국에 대해 국력에 걸맞은 전략 공간을 허용해달라는 뜻이다. 미국도 중국의 협조가 절실하다. 북한 핵 문제는 말할 것 없고 이란, 시리아 등 중동문제 해결에 중국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미 양국은 당분간 기존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양국 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치열한 탐색전을 펼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도 관심사다. 과거 지도부에 비해 신지도부는 정치적 성향이나 성장 배경이 사뭇 다르다. 우선 정치국 상무위원 7인 모두 빈번한 교류와 접촉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고 시각도 비교적 우호적이란 평이다. 반면 북한과 관계에 있어 과거 지도부에 비해 접촉빈도나 이해도는 많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방북 경험이 있는 상무위원은 시진핑과 리커창 등 단 두 명이다. 따라서 한반도를 대하는 출발점이 매우 실용주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특수배려 관계를 탈피해 정상적인 국가 간 관계로 전환을 시도할 것이며 개혁개방 유도를 위해 유·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진설명
    [문일현 중국정법대 객좌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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