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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경제민주화 일자리·물가안정이 가늠자
입력 : 2012.11.12 11: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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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 사상이 배어 있는 서구에선 고용과 물가는 경제 운영의 기본철학으로 깔려 있다. 거시경제학의 지평을 연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도 고용이란 단어가 가장 앞에 놓여 있으며, 한·미 FTA에 관한 미국 국제무역기구(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와 미국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 경제정책연구원(Economic Policy Institute) 등의 분석 자료들도 모두 미국 사회의 고용 증가와 물가하락이라는 주제로 서술을 시작한다.
대조적으로 한국 정부 및 한국 정책연구소들의 분석에서는 ‘FTA가 체결되면 향후 10년간 GDP가 6.0% 성장한다’는 등의 GDP 증대효과로 FTA를 바라본다. 서구는 경제를 인본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만 한국은 인본적인 문제는 뒤로 제쳐두고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주의 입장에서 경제를 먼저 본다.
경제민주화란 바로 국민보다는 국가라는 낡고 오래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정부의 경제철학에 대한 서민들의 반기가 아닌가 싶다.
I. 첫 번째 과제, 고용증가 고용에 대한 한국 정부 정책은 대기업을 먼저 키워 국민소득을 늘리고 그 혜택이 흘러내리면 일반 국민의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스필오버(Spill-Over)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문제는 예전에는 그랬으나 요즘엔 세계화로 무한 경쟁이 일어나면서 그렇게 흐르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1990년에 한국은 실질가치로 10억원을 생산하기 위해서 49명을 고용했으나 2010년에는 23.4명으로 줄어들었고, 2020년엔 고용인원이 17.5명까지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0년 상위 10대 기업이 올린 순이익은 전체 순이익의 30.0%를 차지했지만 이들 10대 기업의 고용비중은 1.7%에 그쳤다. 산업별로 보면 정보기술(IT)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 4개 업종의 순이익은 전체 순이익의 45%에 이르렀지만 이 업종들의 고용 비중은 불과 5%에 머물렀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2010년 순이익은 2009년에 비해 75% 이상 급증했지만 직원은 오히려 760명 감소했고, 포스코도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20%, 32% 이상 증가했지만 직원은 오히려 125명 줄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국가 전체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보다 청년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1990년에는 전체 고용인원 4명 중 1명이 청년이었지만, 2000년에는 5명 중 1명, 2010년에는 7명 중 1명까지 줄어들었다. 청년 취업률은 60%대에 머물고 있다. 2012년의 경우 전문대 이상 졸업자 중 300만명 이상이 취업을 포기한 비경제활동 인구로 분류되고 있다.
청년실업의 고착은 노동숙련을 줄이고 노동생산성을 감소시켜 국가의 인적자본을 감소시킨다. 청년들의 실업으로 국가의 인적자본이 감소된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국가의 인적자본이 감소하면 2050년에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5%까지 하락하며, G20 가운데 가장 못사는 나라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II. 두 번째 과제, 물가안정 올해 들어 한국의 물가 문제는 심각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물가인상 소리만 들리지 하락 요인은 보이지 않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에 의하면 한국의 물가 수준은 59개 나라 중 52위로 높아 서민들의 가계생활을 압박하고 하고 있다. 한국의 높은 물가상승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인식을 못했을 뿐이지 한국은 오랫동안 가파른 물가 오름세를 보여 오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근간의 2008년 금융위기 이래로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돈이 많이 풀려 나갔다. 2007년 이후 올해 5월까지 한국은행에서 풀린 돈(본원통화, 평균잔고 기준)은 53%나 늘어났으나 소비자물가는 17%밖에 안 올랐다고 한다. 워낙 나쁜 경기로 풀린 돈의 물가압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부터 그동안 풀린 돈들이 물가 압력의 뚜껑을 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수출 지향적인 고환율 정책이 물가상승에 기름을 붓고 있다. 미국의 통화증발로 달러가치는 계속 하락하는 추세이지만 한국의 대미 환율은 요지부동이다. 환율이 내려가면 수출이 악화될까봐 1100원 선에서 계속 묶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주요 21개국 중 우리나라의 환율 상승률(월평균 환율 기준)은 2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위였다. 이 기간 동안 달러에 대해 일본의 엔화가치는 34.7%나 올랐으며, 중국(10.9%) 싱가포르(10.9%) 말레이시아(6.6%) 호주(13.6%) 등의 화폐가치도 많이 올랐다. 이 시기에 10% 이상 통화가치가 하락한 나라는 주요 국가 중에서 영국과 한국 두 나라 뿐이다.
환율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유가의 4배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고환율 정책을 유지한다는 것은 달러가치 하락으로 인한 국제원자재, 원유의 달러가격 상승을 국내 물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경제민주화란 서민들이 팍팍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인본주의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가계소득을 안정적으로 이을 수 있도록 고용이 보장되고 가계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물가가 잡힌다면 경제민주화의 바탕이 큰 무리 없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중심주의의 경제성장 정책을 좀 더 지속해야 할지 혹은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고용과 물가를 안정시키는 경제민주화로 정책의 변환을 시도해야 할지 선택할 때이다. 아직은 경제민주화란 단어가 무상복지, 재벌 때리기 등의 개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대선주자들의 화두로 회자되는 것을 보니 국가경제 철학을 서민의 삶 중심으로 선회해야 할 시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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