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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자생력 강한 베이비부머 한국의 미래 지속가능하다
입력 : 2012.11.12 11: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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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말 한국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이며 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인구학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가 보기에 한국 사회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물론 지금과 같은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면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지금처럼 고령자들의 수명이 길어지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지출의 부담이 급증할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인구의 수만이 아니라 질적인 특성을 함께 고려해 보면 우리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충분히 지속가능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이 현재가 아니라 10~20년 후인데, 이때의 고령자는 질적으로 지금의 고령자와 크게 다를 것이다. 오늘의 고령자는 대부분 신체적 정신적 노쇠현상을 이미 경험했고, 빠른 사회문화적 변화에 적응이 쉽지 않으며, 경제활동을 위한 생산성이 매우 열악한 수준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미래에 고령자가 될 사람들은 주로 1960년대에 1970년대 초반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당시 거의 매년 100만명씩 출산했음) 이들이 모두 오늘의 고령자와 같은 특성을 지닌다면 그야말로 사회적인 부양 부담이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의 고령자와 매우 다르다. 어린 시절의 경험 (전쟁 혹은 보릿고개와 같은 극심한 기아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 컴퓨터로 시작된 지식정보산업을 직접 열었다는 것, 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 전반적으로 양호한 건강 상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 등 오늘의 고령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인적자원 수준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65세를 넘어 고령자가 됐을 때 과연 신체 및 정신 건강이 노쇠해질 것이며 생산성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 크게 낮아질 것인가? 그렇지 않게 될 가능성이 그럴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즉 노동시장에서 끊임없이 노동 참여를 지속할 것인데 그것도 본인이 원래 지니고 있던 직업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그럴 것이다. 이들이 건강 수준을 유지하고 노동 참여를 지속한다면 고령인구 비중의 급증이 반드시 사회적 부양부담의 급증으로 이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한편 지금도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높은데 고령자가 은퇴하지 않고 계속 노동시장에 남아있게 되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젊은 연령층에서 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수년전 프랑스가 정년을 2년 연장했을 때 수많은 20대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높은 인적 자원을 지닌 고령자의 급증은 매우 큰 사회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프랑스와는 매우 다르다. 만일 노동시장에 유입되는 젊은 세대에 비해 은퇴를 통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는 고령자가 적으면 노동시장의 압력이 커지게 돼 프랑스와 같은 세대 간 갈등이 발생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출산율은 물론 출산아 수도 매우 적기 때문에 고령자들의 노동 참여 연장이 젊은 세대의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젊은 세대가 고령자들이 은퇴하는 것을 반대하고 노동 참여를 연장하라고 시위할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 매년 100만명이 출생한 반면, 2000년 이후 매년 40~50만명만이 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고령자들의 노동 참여 연장이 젊은이들에게 노동시장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가 아무런 준비 없이 현실화 될 리 없다. 최소한 두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하나는 미래의 고령자가 노동 참여를 지속할 수 있는 건강수준을 유지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건강수준의 유지는 개인과 사회의 적극적인 건강증진 의지와 실현을 위한 시스템 마련을 통해 가능하다. 현재 건강증진은 국민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에 맡겨져 있는데 이는 부족하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에서도 근로자들의 건강증진에 신경을 쓰고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숙련된 노동자가 건강문제로 퇴직하면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 일조차 매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자의 생산성 유지는 이들에게 젊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들은 이미 10~20여 년 동안 노동 참여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면 연령과 관계없이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증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인구의 감소로 앞으로 수많은 대학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대학 교육의 대상을 다원화해 40~50대의 재교육을 대학의 새로운 기능으로 추가하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하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필자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반드시 지속가능성이 미약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특히 1960~1970년대 초반에 출생한 사람들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증진시키는가에 따라 한국사회의 미래는 지속이 가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물론 이들도 다 사망하게 된 이후의 한국 사회(아마도 2050년 정도)는 또 다르게 변하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고령사회로 가장 걱정하고 있는 2020~2050년까지의 한국 사회는 충분히 지속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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