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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자작나무 그늘에 앉아…잠 못 이루는 깻잎을 위하여
입력 : 2012.09.07 17: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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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사다 넣은 양상추가 3주를 지났는데도 변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썩기는커녕 푸른빛조차 변하지 않으면서 싱싱함을 넘어서서 생생할 때 그 양상추가 무서웠다. 도대체 무슨 약품을 얼마나 들어부었기에 3주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양상추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 무서운 양상추를 버리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그 슈퍼마켓에서만은 이제 물건을 사지 말아야겠다는 겨우 그런 것이었다.
나는 금년 여름 삼계탕을 버렸다. 삼계탕 먹기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여름이면 그나마 즐겨먹던 보양식 가운데 하나가 삼계탕이었는데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닭에 대한 단 한마디의 정보 때문이었다. 최근 수입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 닭의 품종 가운데 한 달이면 다 자라서 시중에 유통되는 닭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인가 어디에서 개발된 품종이라고 했다. 한 달에 다 커버리는 닭도 있다니 놀라웠는데 이 닭을 기르는 계사가 경악에 가까웠다. 기르고 있는 닭과 닭장의 넓이를 계산하면 이 닭들은 태어나서 상품이 되어 팔려 나갈 때까지 겨우 A4용지 반장 크기에서 자란다는 것이었다. A4용지 반장 크기에서 평생을 보내고 식탁에 오르는 닭을 먹는다고 생각할 때 삼계탕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삼계탕 개시’라는 현수막이 너울거리는 식당을 지날 때마다 여름내 나는 겨우 중얼거려야만 했다. 이제 내가 닭을 먹나 봐라.
내 서재가 있는 서울 근교의 군에서는 면단위로 특화된 채소들을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내고 있다. 예를 들자면 a면은 상추, b면은 깻잎, c면은 부추를 지정해서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식이다.
내가 있는 면에서는 이 비닐하우스에서 비름을 주로 생산한다. 입과 줄기가 연한데다가 살짝 데쳐서 나물을 해 놓으면 향기가 감도는 감칠맛 때문에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채소의 하나가 비름이었다. 내 고향 강원도에서 쉽게 기르던 채소였기에 내 입맛이 기억하는 추억의 맛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사는 면에서 비름을 주로 기른다는 것을 안 후 늘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이제는 시골 어디엘 가도 눈에 띄는 농협의 하나로마트는 물론이려니와 동네 야채가게엘 가도 도대체 비름을 볼 수 없다. 널려 있는 것이 비름을 기르는 비닐하우스인데 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에서 기르는 비름을 슈퍼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일까.
그 비밀 아닌 비밀을 안 것은 마을 식당 주인의 입을 통해서였다. 손님이 뜸한 저녁시간이었다. 주인 남자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물었다. “이 면에서 기르는 것이 비름인데 왜 슈퍼에서 비름을 팔지 않나 모르겠어요. 비름이 참 맛 있는데. 식당에서도 비름을 반찬으로 내놓는 곳이 없고요.”
주인이 웃으면서 한 대답이 나에게서 웃음이 사라지게 했다.
“이 면 사람들은 비름 안 먹습니다. 비름을 반찬으로 내놓는 식당도 없고요. 왠지 아세요? 농약을 얼마나 치는지를 다 알거든요. 그러니 자기들은 차마 못 먹는 거지요.”
※ 24호에서 계속...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4호(2012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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