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엽 칼럼] ‘코리아 명품’ 머지않았다

    입력 : 2012.03.26 17: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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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이라는 도시는 미국이 ‘멜팅 팟’, 인종의 용광로라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9·11테러의 상흔이 남아 있어 조금 경직됐다고는 하지만 개방성과 포용성은 세계 주요 도시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이 도시는 클래식과 현대음악, 미술과 영화, 언론과 프로스포츠의 본고장이다. 뭐니 뭐니 해도 뉴욕은 세계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간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장점과 경제력이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디자이너 지망생이라고 하면 선망하는 곳이 바로 뉴욕에 소재한 파슨스 스쿨, FIT 등이다. 그런데 이들 학교에 한국 학생 비중이 너무 높아서 쿼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패션은 미국을 주축으로 영국, 프랑스 커넥션이라는 3각 구도로 짜여졌다. 세 나라 패션 디자이너들의 커넥션이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를 끌어내 소비자들의 패션 선호를 만들어내 왔다. 기득권 세력으로 꽉 짜여진 세계 패션 시장에 10여년 전부터 균열이 생겼다. 바로 ‘코리아 커넥션’이 한 무리의 파워그룹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뉴욕은 물론 런던, 파리, 밀라노에 한국계 디자이너들이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 기업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요즘 전문 기업들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하다. ‘메이드 인 코리아’ 화장품 브랜드들이 아시아에서 프리미엄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로만손의 패션 주얼리 브랜드 제이에스티나는 뉴욕 플라자 호텔에 매장을 내고 미국 본토를 두드리고 있다. 대기업들은 외국 유명 브랜드를 사들여 경영하고 있고, 점차 대형 브랜드를 M&A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서울은 이제 글로벌 명품시장의 아시아권 ‘테스트 베드’라는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소비자들의 기호를 점쳐보는 시험장이 바로 서울이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 도쿄가 아시아권에서 명품 소비를 주도했지만 서울로 옮겨온 지 오래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줄지어 서울 주요 백화점이나 청담동에, 또 부산 해운대에 매장을 내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 명품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은 따지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나라의 ‘종합적인 품격’이 바탕이 된다. 유럽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가 명품을 주도해온 것은 장인들이 가업을 이어온 오랜 역사적 전통에다 산업화를 주도한 고소득국가들,즉 개도국들이 우러러보는 선진국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이유다.

    이제 ‘코리아 명품’이 탄생할 여건은 무르익었다. 드라마,영화,대중음악,한식 등으로 범주를 넓혀 온 한류에서 보듯이 아시아권에서는 ‘코리아’라는 브랜드는 분명 달라진 대접을 받고 있다. 내부에서는 정치적 후진성을 자책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민주화의 성숙도와 경제성장, 문화적 정체성이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과 LG브랜드를 단 휴대폰과 텔레비전, 현대기아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코리아 이미지를 높여온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소중한 성공 경험이 바로 패션, 가방, 신발, 시계와 같은 분야에서 코리아 명품을 만들고, 세계 시장에서 먹혀들게 할 수 있는 자산이다.

    명품 브랜드 ODM 전문회사인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은 코리아 명품이 언제쯤 가능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 회장은 “분명히 가능하고 길은 있다. 인재와 제품 노하우,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높아진 이미지를 고려하면 분위기는 많이 성숙해 있다”면서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차근차근, 작지만 강하게 하나씩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소니, 도요타, 캐논 등이 세계를 주름잡던 그 좋은 시절에 일본은 ‘재팬 스타일 명품’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를 보였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G7대열에 합류했던 고도성장에 발맞춰 한때 일본 문화가 서구에 먹혀들었지만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쇠락해가는 기미가 뚜렷하다.

    패션 명품 시장을 시간에 대비한다면 일본은 오후 4시쯤, 한국은 이제 낮 12시에 와 있다. 상하이는 오전 9시 전후로 보면 어떨까. 세계 곳곳에 포진한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과 글로벌 시장을 일군 경험이 풍부한 기업인들이 손을 맞잡는다면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 구체적인 비전을 담은 정책과 문화적 자부심에 가득한 국민들이 어우러진다면 코리아 명품은 머지않았다고 본다.

    서울 청담동에 지금은 외국 명품들의 플래그숍이 즐비하지만 수년 내에는 코리아 브랜드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조경엽 LUXMEN 편집장 ch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9호(2012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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