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inion] 오리무중 대권가도의 판세 읽기

    입력 : 2012.03.23 14: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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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한국 정치다. 박근혜가 3년 반이나 독주할 때는 2012년 대선도 싱겁게 끝날 줄 알았다. ‘두고 봐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도 늘 하는 ‘주장’으로 들렸다. 그랬던 대권구도가 작년 가을부터 급변하더니 이제는 판세를 짐작조차 못할 정도의 오리무중으로 접어들었다.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막연히 무언가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을지 몰라도 박원순과 안철수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뒤이어진 정치권 재편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과연 한국정치다운 역동성이다.

    변수는 변수로 남아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안철수 본인은 변수로 남아 있으려 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철수는 이미 절반 이상 변수로서의 역동성을 상실했다. 예상 가능한 수순을 밟아 예상 가능한 선택을 한다면 아무리 안철수라 한들 무슨 큰 충격과 감동을 주겠는가.

    아직은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있으나 그 기대가 ‘안철수 피로감’으로 변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 언론이 안철수를 톱뉴스로 다뤄온 지 어언 반년 가까이 되어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문재인의 상승은 예상했던 대로다. 문재인은 부산지역에서 직접 출마하는 배수진을 치고 나가면 상당한 상승세가 만들어 질 것이고 이를 통해 야권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측대로 움직였다.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움직였음은 문재인이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측 가능성은 곧 안정성을 의미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후보에 비해 문재인의 예측 가능성이 주는 안정감은 매우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가 여권이 아니라 야권의 대선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은 또한 문재인이 앞으로의 행보에서 ‘힐링캠프’와 같은 의외성과 재미, 그로 인한 충격효과를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이 문재인이 풀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숙제일지 모른다.

    4·11총선은 명실상부한 대선 전초전이다. 총선 후 8개월 만에 대선을 치르게 돼 있는 정치 일정을 보더라도 그렇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모두 제각각 처한 상황에서 제 나름의 방식대로 승부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대선의 전초전인 4·11총선에서 최대 관심지역은 단연 부산 사상구다. 문재인의 당락 여부가 이번 총선 최대의 승부다. 문재인이 노무현이 끝내 넘지 못했던 지역주의를 넘어설 것인가가 관심이고 부산을 정면 돌파해 박근혜-문재인 양강구도를 조기에 구축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야권은 일거에 문재인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정치를 할지 말지로 야권 지지자들의 애를 태운 안철수보다는 당당하게 사지로 나가 정면 돌파한 문재인에 대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안철수가 나서고 싶어도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이 최근 들어 부쩍 안철수를 높이 평가하고 함께 할 것을 역설하는 것도 야권의 대권주자를 꿈꾸고 있는 문재인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문재인의 자신감이 묻어 나오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문재인이 낙선하면 어떻게 되는가. 떨어지고 떨어진 끝에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노무현이 있지만 문재인이 그 길을 다시 밟아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에게는 그런 결기가 부족하다. 국민들도 문재인을 그런 대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문재인이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쓸쓸하게 퇴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다. 이 경우 문재인에게 몰렸던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은 김두관과 안철수에게로 흩어질 것이다. 한 사람은 정치권에 들어와 있고 한 사람은 아직 정치권에 입문조차 하지 않았다. 야권의 민심은 과연 어디로 기울어 질 것인가.

    여론은 문재인에게 나쁘지 않다. 그러나 좋은 여론이 좋은 결과로 바로 연결될 만큼 간단한 선거는 아니다. 박근혜는 민주당이 먼저 치고나온 FTA 폐지문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집권당이 추진한 FTA를 야당이 됐다고 반대하는 집단에게 어떻게 정권을 맡기느냐!”

    FTA 찬반논쟁을 다시 하자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가 FTA와 같은 정책 사안을 중심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문재인은 거의 모든 국정현안과 관련해 책임을 추궁당할 위치에 서게 될 수 있다. ‘정권심판론’으로 새누리당을 공격하기는커녕 ‘전 정권 실세 책임론’으로 역공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선거에서 공수란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법이다. 과연 문재인은 이 치열한 백병전에서, 피와 살이 튀는 목숨 건 육박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문재인의 승부는 김두관의 승부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같은 이력, 같은 스펙에 다른 캐릭터를 가졌다. 김두관의 승부는 문재인의 승부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김두관의 행보는 둔탁한 듯 무겁고 돌아가는 듯 정곡을 찌른다. 경남도민들의 반대와 비판을 감수하고 감행한 민주통합당 입당이 김두관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이나 그 결과가 어떻든 김두관이 그것을 소화해 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것 다 떠나서 김두관의 입당은 당이 필요로 할 때 움직이고 진영이 진정으로 요구할 때 행동한다는 김두관의 행동관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다.

    김두관 또한 문재인의 승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으나 자신의 선택을 통해 문재인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 밖의 안철수와 구별된다.

    당장은 종속변수이나 언제든 독립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김두관의 잠재력일 것이다. 문재인의 승부를 동시에 김두관의 승부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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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8호(2012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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