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inion] 정치과잉의 시대 空約 구별법

    입력 : 2012.01.27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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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의 세계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특히 선거철에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선심 정책을 남발하는 일은 그리 드문 게 아니다. 1870년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끈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포퓰리즘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대중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도 그 대표적 예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나, 우리 사회도 그동안 적지 않은 포퓰리즘의 영향을 받아왔다. 1870년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선거 공약은 상당수가 유권자 표심을 겨냥해 급조된 포퓰리즘적 정책이었다.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지역균형 개발이라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의 표심을 얻기 위해 급조된 것임은 부인할 수 없고, 이명박 후보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이나 7·4·7공약(성장률 ·소득 4만 달러·세계 7대 강국 진입)도 결국은 비현실적인 약속이었다. 이러한 공약들은 정권 출범 이후 대부분 보류되거나 폐기됐고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해 정치 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금년은 메가톤급 통상 현안들이 도사리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 캐나다 쇠고기 수입, 30개월령 이상 미국 쇠고기 수입 허용, 한·중 FTA 협상 개시, 쌀 시장 개방 준비 등이 그것이다. 더구나 세계 경제의 불황으로 인해 사회 양극화와 고용문제 해결이 최대 현안이 되고 있어, 경제통상 분야의 포퓰리즘이 극성을 이룰 위험이 있다.

    벌써부터 야당은 한·미 FTA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삭제 내지 FTA 전면 폐기를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진보정권에서 이미 수용하기로 한 ISD제도를 빌미로 이제 와서 이를 삭제하지 않는다고 한·미 FTA 전면 폐기를 선언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5년여 동안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달성한 역사적 과업을 원점으로 돌리면, 막대한 매몰비용과 국론 분열의 비용만 남게 된다. 향후 거대 경제권과의 FTA 협상 진행을 당분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에 환태평양파트너십협정(TPP) 등으로 점점 더 불록경제화하고 있는 아·태지역에서 우리 기업들만 해외 수출시장에서 (FTA 미체결로 인해) 차별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 의한 ISD제도의 남용 가능성이 문제라면, FTA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ISD제도의 남용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 기준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양국간 추가협의를 모색해야 한다.

    ISD나 FTA 자체를 폐기하게 되면, 미 의회가 원래 한·미 쇠고기합의서 내용대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도 재개하자는 등 막대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김정일 사망 등으로 한·미 안보협력 관계의 강화가 절실한 시점에 한·미 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됨도 물론이다. 쌀시장 개방(관세화)을 추가적으로 유예(猶豫)하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이 제시될 위험성도 있다. 쌀 관세화 유예는 2014년까지만 허용된다는 것이 WTO 농업협정의 규정은 물론 2004년 말에 행해진 쌀 수출국과의 다자협상에서의 합의 내용이다. 2014년 이후로도 개방을 미루기 위해서는 WTO 협정을 개정하고 쌀 수출국들이 모두 동의해야 하는데, 한국과 같은 무역대국을 위해 쌀 관세화를 재차 연기해주려고 WTO 협정을 개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설령 이러한 일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관세화를 추가 유예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양보를 제공해야 하는 바, 이미 저관세(5%)로 수입되는 의무수입물량 때문에 국내 쌀값이 하락하고 정부의 보관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 의무수입량 증량은 오히려 우리 쌀 농가의 조기 몰락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선거철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농민 표심 공약을 경계해야 한다. 국가 이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결국은 농민 자신의 생존에도 해가 되는 포퓰리즘이 개재해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건설 및 금융실명제와 같이 국가 경제를 위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한 공약과 단순한 포퓰리즘적 공약을 가려내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의 몫이고 책임이다.

    [최원목 /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7호(2012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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