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철현 교수의 人間과 神] ① 종교는 향기다

    입력 : 2012.01.27 16:40:44

  • 사진설명
    1988년, 88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필자는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보스턴 로건비행장에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도착해, 그 후 12년간의 ‘유배지’ 생활을 하면서 종교와 문명, 특히 그 근저가 되는 고전어를 전공하였다. 하버드대학 종교학대학원(Divinity School)에 입학하여 전혀 밟지 않은 길을 가게 되었다. 필자는 운 좋게 록펠러가 지어준 기숙사에서 1년 동안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기숙사는 4층 건물로 한 층에 20명 정도 살고 부엌을 공유한다. 한 층은 화장실과 샤워장을 둘러싸고 5개의 조그만 방이 있다. 5명이 싫든 좋든 1년 간 살아보라는 학교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다양한 종교를 접해 보지도 못했고 배울 기회도 없어서 ‘종교적으로 무식한’ 나는 4명의 기숙사 동료를 보고 한참 적응해야 했다. 다섯 명의 프로필은 이러하다. 스탠리는 남침례교회 대형 교회 목사로 키가 2m 정도 되는 흑인이었고, 이브라힘은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이슬람 수니파 임맘(사제), 느왕은 티베트 출신 불교 라마승으로 현재는 시카고대 티베트어 교수, 존은 무신론자로 현재는 FBI 암호 해독가, 그리고 필자.

    기숙사 생활은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 필자는 공부 잘하고 좋은 학점 따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 목표였고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형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처음 보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 특히 종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종교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모여 사니,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과 샤워장 청소문제였다. 스탠리 흑인 목사가 화장실이나 샤워장을 사용하면 지독한 냄새로 한 시간은 족히 출입금지였다. 그 누구도 바쁜 아침에 화장실 가기를 꺼렸다. ‘머리 좋은’ 필자는 동료들에게 학교 헬스클럽에서 샤워를 해결할 테니, 화장실 청소를 면해달라고 통보했다. 나머지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든지 상관없이 나는 그 상황을 빠져나왔다. 내 삶의 원동력은 ‘나-먼저’라는 이기심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화장실과 샤워장이 항상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향까지 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알아보니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 느왕이 항상 남모르게 청소하고 향을 피웠다. 그는 1년 간 묵묵히 자신의 수행처럼 청소했다. 나는 느왕을 보면서 붓다가 생각났다. 붓다의 중요한 가르침은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저 종교적 경험이나 자기증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깨달음을 경험한 후, 북적이는 시장에 돌아와서 모두를 향한 헌신적인 삶을 실행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불행을 경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붓다는 말한다. 그는 열반을 얻은 후에, 초월적 평화에 탐닉하려는 유혹에 빠질 뻔했지만, 그 대신에 남은 생애 40년을 길거리에서 자신이 터득한 바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쳤다. 마하야나 불교에서 영웅은 ‘보살(bodhisattva)’이다. 그는 깨달음의 직전에 열반의 희열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세상의 고통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1년 뒤 기숙사를 떠나기 전 무신론자 존이 우리 모두를 불러놓고 하는 말이 자신이 종교를 가지게 된다면 티베트 불교를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종교는 신념체계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종교에선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행동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선행을 위해 종교의 교리가 존재한다. 21세기는 세계화시대이다. 세계가 하나로 융합되고 문화가 그 융합의 DNA이다. ‘문화’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간 행동의 일정한 형태와 상징이라고 정의하면, 문화 핵심들 중에 하나는 ‘종교’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 강력한 문화현상을 이해해야만 한다. 16억 무슬림들이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류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날에 예배 드리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원전 6세기 나라를 잃고 2500년 후에 국가를 건립한 이스라엘인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한가? 중국의 지도자들은 13억 인구를 이끌고 G1을 꿈꾸면서 그들이 채택한 ‘유교’란 무엇인가. 글로벌 사회에서 종교, 특히 세계 주요 종교들의 핵심과 그들의 현황, 더 나아가 각 종교들의 특징을 이해하는 일은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는 세계인을 자처하는 지식인들에게 필수이다. 다른 어떤 지식보다도, 종교에 대한 실질적이고 지혜로운 이해는 21세기 리더들의 기본 자질이다.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융합의 시대’에 성급한 종교의 비교는 종교간 우열을 매기고 자기 종교의 기준에서 다른 종교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제 그 ‘다름’을 ‘참아주는 행위(톨레랑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는 처사는 지난 2000년 이상 면면히 흘러와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에 대한 모독이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독특한 상징체계와 행동양식이 있는데, 이것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다 보면, 개별종교에서 지향하는 ‘길’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금 G1 미국의 몰락을 목도하고 있다. 17세기 유럽에서 종교박해와 경제자유를 위해 온 청교도들이 ‘언덕 위에 예루살렘’을 건설하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미국에서 시작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20세기 말 부시 정부 당시 ‘테러와의 전쟁’의 기조를 이루었고, 미국은 돌이킬 수 없는 퇴락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의 동양에 대한 몰이해, 특히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의 이슬람 이해와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기원전 7세기 북이스라엘의 몰락을 목도한 예언자 미가는 당시 종교의 구태의연함과 자기기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신이 원하는 것은 선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전 단어는 ‘토브’인데 그 본래의 의미는 ‘향기’이다. 신이 원하는 삶,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상대방의 기준 안에서 향기가 나는가?”를 질문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이런 삶이 바로 인간됨의 삶이 아닌가?

    ■ 배철현 교수는?
    사진설명
    우주기원을 성서를 통해 탐구하고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한 후 허송세월하다 정신 차려, 인류를 변화시킨 위대한 성인들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성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경전들의 언어인 고대근동언어, 특히 쐐기문자와 성각문자, 셈족어에 매료되어 하버드대학교 고대근동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와 올해부터 신설될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이며, 2009~2013년까지 베이징대 고대근동학과 연구교수로 고대근동언어들을 격주로 가르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축의시대’. 인류를 변화시킨 성인들과 그들이 남긴 경전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7호(2012년 0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