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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엽 칼럼] 선비정신
입력 : 2011.12.29 15: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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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어떤 이들은 부실한 국내 은행에서 돈을 빼서 선진국에 본점을 둔 외국계 은행에 돈을 맡기기도 했다. 국내 보험사 고객들이 해약하고, 유명 외국계 보험사로 옮겨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상황은 그렇게 변했다. 요즘 ‘유명’ 외국계 보험사들도 회사 이름이 별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미국계 유럽계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위기 때 줄줄이 무너진 때문이다.
국제경제와 세력 판도가 유동적이라는 게 한국에 그리 유리하지만은 않다. 강대국들에 낀 한반도는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들어가 있다. 더욱이 지난달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라는 ‘급변사태’를 맞았다.
글로벌 경제는 터널 속을 헤매고 있다. 2012년 새해를 맞는 한국은 녹록치 않은 여건이다. 알다시피 총선 대선이 겹쳐지는 해다. 미국·중국·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열강들이 새 지도자를 맞게 된다.
한국 사회는 지난 몇 년간 복지와 개방, 상생과 공정, 경쟁과 보상이라는 이슈를 놓고 편을 갈라 싸워 왔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외피일 뿐이다. 실제로는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친소관계에 따라 파워게임을 해왔다.
2040세대의 기성 정치권 불신은 그들이 스스로 치졸한 속내를 내보인 탓이다.
여기에 일자리를 찾지못한 청년들은 실패자라는 낙인을 두려워하면서도, 사회를 원망하곤 한다. 서민들과 샐러리맨들은 ‘은수저를 물고 나온 이들’에 막연한 반감을 내비치곤 한다.
누구든지 생존 위협이 벼랑 끝까지 다다르면 기득권 세력과 ‘가진 자’에 대한 ‘묻지마식 적대감’으로 돌변하기 쉽다. 그 화살이 정치 쪽을 향한다면 어느 정도 순화될 여지가 있다. 만일 아무나 모두 적으로 돌리는 상황이 된다면 사회적 수용 한계의 임계점을 넘어 폭발할까 우려스럽다.
우리 사회가 처음 맞막딱드리게 된 상황이다.
한국은 이제 우러러 볼 나라가 별로 없다. 벤치마킹 할 수 없다면 스스로 갈 길을 개척하는 수 밖에 없다. 만일 그런 국가가 있다손 치더라도 높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무리다. 2012년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홀로서기’다. 새해 소위 지도자들,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는 글로벌 경제와 강대국 판도를 정확히 읽고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가치와 철학, 그리고 구체적 대응책을 제시할 숙제가 던져졌다.
이 대목에서 문득 올곧은 선비정신이 떠올랐다. 사대부들의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이 담긴 선비정신은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핵심 중 하나였다. 물론 21세기에 맞게 재해석돼야 할 것은 당연하다.
[조경엽 / Luxmen 편집장 ch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6호(2012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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