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엽 칼럼] 생활의 발견

    입력 : 2011.11.28 14: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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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믿을 나라는 하나도 없게 되는가 보다. 불과 몇 년 전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전 세계 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리더니 이제는 유럽이다. 그리스, 스페인이 속한 남유럽만이 문제라더니 이탈리아를 거쳐 자존심 강한 프랑스까지 북상해가고 있다. 한 신용평가회사가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메일을 잘못 보낸 일이 전세계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프랑스가 멀쩡하다면 신용평가회사가 이메일을 잘못 배달한 일이 웃음거리가 돼야 마땅한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과장도 많고, 거짓말도 하는 스타일이라서 진짜 속내는 알 길이 없다. 유럽에서 독일 한 나라만 빼놓고는 다 속병이 들었다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가는 듯 하다. 오만하던 유럽인들이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아직 생소하다.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사회가 문화적으로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신화’가 점차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세계화=서구화’라는 등식이 지배하던 시기에, 국내에 불붙었던 명품 선호 현상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파리와 로마, 밀라노, 런던에 본사를 둔 명품 브랜드들이 본국과 거점 도시 이미지에서 ‘이탈’할지 어떨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수년간 지속된 명품에 대한 맹신과 묻지마식 소비 행태가 조금은 잦아들지 않을까 싶다. 이미 한국에서 명품 과열이 식어들 시기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비 트렌드는 그 나라의 소득 수준에 따라 가기 마련이다. 서울 시내 면세점의 명품 매장을 가득 채운 중국 관광객 모습에서 조만간 명품 쇼핑의 격전지는 이미 중국으로 바뀌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일본을 거쳐 온 한국의 명품 열기가 점차 중국으로 넘어가는 단초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시계, 핸드백, 악세서리 패션 명품회사들이 아시아전략의 핵심을 중국으로 잡고 있다고 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은 단연 미국이었다. 가끔 역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덴마크와 같은 유럽 국가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일시적 유행에 그치곤 했다. 압도적인 지식인들이 미국 각지에서 유학하고, 미국 제도를 배워 한국에 적용하려 애썼다. 학자들은 물론 공무원, 기업인까지 각계각층이 대열에 동참했다. G2시대라면서 한쪽에선 중국의 급부상을 주목하지만 한국의 각계에 뿌리를 내린 ‘미국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내색이 역력하다.

    이번에 미국이 먼저 비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많은 뜻을 담고 있다. 9.11테러와 서브프라임 부실로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된 곳이 바로 미국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동맹국을 끌어들여 경제를 재건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분위기가 상하원이 거의 동시에 협정을 비준하는 이례적 선례를 만들어냈다. 식민지를 겪은 개발도상국으로서, 한때 미국 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이 당당히 양자 협정을 맺었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겠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결국 통과될 것이고, 새로운 무역의 장이 열리게 된다. 일본 기업이 미국 수출을 유리하게 하려고 한국에 다시 진출하고, 돈 많은 중국 기업들이 한국 수도권과 서해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세계 1위 경제국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한 이후 어떤 이득을 챙길 수 있을지는 한국이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 세계가 요동치면서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우리나라 어느 시골이라도 글로벌 경제의 움직임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개방의 거센 물결은 누구든지 가만 놔두지 않는다.

    2012년 총선·대선이 겹쳐, 국내 변동성이 극대화될 전망이다. 새해에는 어느 쪽이든 서민들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경제가 움직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 돈불리기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면 내년을 기약하길…

    [조경엽 / Luxmen 편집장 ch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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