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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잡식 혹은 편식
입력 : 2011.09.15 16: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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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먹는 행위가 고역일 때도 있습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강요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할 때 등입니다. 가리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적 외가엘 가면 밥상을 내오시는 외할머니께서 으레 많이 먹으라며 덕담을 합니다. 덕담으로 그치면 좋으련만 밥을 더 내오시고 물까지 말아 먹으라 강권합니다. 적게 먹을라치면 맛이 없냐는 견제구가 들어옵니다.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요. 즐거움이 아니라 고문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음식을 마련해 대접하고 대접받는 것을 우리는 미덕으로 여깁니다. 간소한 상차림은 상대를 무시하는 의미라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 잔칫집 가서 배 터지게 먹었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마도 먹을 게 많지 않았던 시절, 맛있게 먹는 즐거움보다는 많이 먹는 즐거움이 먼저였던 문화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이라는 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는 양에 따라 또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마이클 폴란은 이를 잡식동물의 딜레마라고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먹을거리와 관련된 모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입니다.
대구한의대 설립인으로 올해 여든 살인 변정환 명예총장은 10대 후반부터 채식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평일에는 한끼 식사만 하고 일요일에는 그마저도 하지 않은, 철저한 소식주의자입니다. 저에게도 일요일 하루쯤은 굶으라고 권합니다. 몇 차례 시도는 했지만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떤 식습관이 좋고 나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과식보다는 소식이,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단이 좋다는 것이야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식단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음식 저 음식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었던 식생활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다거나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입안에서 잘근잘근 씹히던 육고기의 질감부터 포기하려 합니다. 대신 최대한 소화가 잘 되는 채소 위주로 편식을 합니다. 과식하지 않은 습관을 들이기 위한 과정쯤이라고나 할까요. 당연히 몸도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도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엄마 젖을 떼고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얘야, 골고루 먹지 말고 편식해라.”
[한정곤 / Luxmen 편집장 jkha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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