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열의 스테이블코인 돌아보기] (12) 24시간 돌아가는 해외 코인 거래소 ― 한국 증시의 ‘야간 나침반’으로

    입력 : 2026.09.28 11:02:38

  • 사진설명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그동안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자산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영역으로 여겨져왔으나, 최근 실물자산 토큰화(RWA: Real World Assets)와 암호화폐 기반 파생상품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해 두 시장의 경계는 급속도로 해체되는 중이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주들이 글로벌 코인 파생상품의 핵심 기초자산으로 부상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지난 2026년 8월 14일, 한국의 대표적인 IT·기술 기업인 네이버(NAVER), LG전자, 삼성전기, 한미반도체, 그리고 한국 증시의 심장인 KODEX 200 ETF의 가격 흐름을 24시간 추종하는 테더(USDT) 결제 방식의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 상품을 전격 출시했다. 무기한 선물은 만기일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투자자가 원할 때까지 포지션을 무기한 유지할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바이낸스는 이미 수개월 전인 지난 6월 2일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무기한 선물을 출시하여 막대한 글로벌 자금을 끌어모았으며, 최근에는 이들 상품의 최대 레버리지를 무려 50배까지 전격 확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규제 당국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역외 미신고 가상자산 거래소인 MEXC와 XT닷컴 역시 네이버와 LG전자 등에 최대 20배 레버리지를 적용할 수 있는 동일한 무기한 선물 상품을 상장하고 글로벌 투자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 증시의 간판 기업들이 24시간 멈추지 않는 글로벌 투기 자본의 거대한 디지털 놀이터가 된 것이다.

    사진설명
    국내 규제 강화와 해외 ‘규제 진공지대’의 극단적 온도 차

    이러한 국경 밖의 급변하는 상황은 국내 자본시장 규제 환경과 극단적인 비대칭을 이루며 대조를 보인다. 당장 2026년 8월 19일부터 국내 금융당국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새로 투자하려는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5거래일, 총 5시간 이상의 모의거래(Mock Trading) 이수’를 의무화하는 강력한 투자자 보호 대책을 시행한다. 이와 함께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의 괴리율 관리 한도를 기존보다 대폭 좁혀(국내 상품 3%→2%, 해외 상품 6%→5%) 가격 왜곡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조치도 병행한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들이 안방에서 겹겹이 쌓인 안전장치와 제약을 이수하는 동안, 국경 밖 해외 거래소는 그야말로 ‘규제의 진공지대’이자 완전한 야생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바이낸스는 지난 6월 22일,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KOSPI 3배 레버리지 ETF인 ‘KORU’를 추종하는 무기한 선물 상품을 출시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최대 레버리지를 50배로 확대했다. KORU 자체가 이미 한국 증시 하루 변동성의 3배를 추종하는데, 여기에 50배의 금융 레버리지를 얹음으로써 이론상 한국 증시 움직임의 최대 150배에 달하는 초고위험 베팅이 가능해진 것이다.

    비록 바이낸스가 한국 금융당국의 공식 요청이 있기 전에 선제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한국인 명의 계정의 거래를 자체 차단했으나, 가상자산 시장의 생리상 가상사설망(VPN: Virtual Private Server)이나 해외 우회 명의 계정을 통한 차명 거래 등 규제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우회로는 여전히 열려 있다. 국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촘촘한 빗장이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아무런 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주말과 야간의 공백을 메우는 한국 증시의 ‘심리적 선행지표’

    이러한 거대 파생시장의 등장이 고액 자산가들과 전통적인 한국 주식 투자자들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바로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기능의 전이’와 ‘심리적 선행지표로서의 가치’다.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정규장은 오후 3시 30분에 대체거래소는 오후 8시에 문을 닫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하지만 글로벌 거시경제의 심장인 미국 증시의 동향,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향방, 지정학적 돌발 리스크, 국제유가 및 외환시장의 요동은 우리가 잠든 야간과 주말, 공휴일에 쉬지 않고 발생한다. 전통적인 주식시장에서는 야간 시간대의 정보 충격이 고스란히 누적되었다가 다음 날 아침 8시 대체거래소 개장과 9시 정규장 개장 시 시초가 급등락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해외 코인 거래소의 한국 주식 무기한 선물시장은 야간 거래 공백 시간 동안 글로벌 투자자들의 실시간 심리와 정보 반응을 실시간으로 녹여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유진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6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10곳에서 거래된 KORU 무기한 선물의 누적 거래대금은 무려 463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국 증시 정규 거래일 기준으로 동 기간 KORU 현물 거래대금(260억 달러)의 1.7배를 훌쩍 넘어선 규모다. 더욱 놀라운 점은 시장 선점 속도로, 상장 초기에는 하루 거래대금이 현물의 23%에 불과했으나 7월 말 이후에는 현물의 2.81배, 최근에는 무려 3.3배까지 폭증하며 현물시장의 지배력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투기거래의 급증을 넘어, 주말과 야간 시간 동안 한국 증시에 대한 글로벌 정보와 투자 수요를 가장 먼저 빨아들이고 가격을 형성하는 사실상의 ‘보조적 가격 발견 시장’이자 ‘야간 나침반’으로 우뚝 섰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한다.

    고액 자산가의 포트폴리오 디펜스 전략

    ‘디지털 신호’를 읽는 법을 따라서 현명한 고액 자산가들은 이제 주식 투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아침 주식시장 개장 전, 단순히 미국 야간 선물 지수나 외환시장 야간 NDF 환율만을 체크하던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벗어나, 밤사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형성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등 개별 종목 무기한 선물의 시세 흐름과 ‘디지털 시그널’을 입체적으로 해독해야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표는 펀딩비(Funding Rate)와 미청산 약정(Open Interest)의 변화 추이다. 무기한 선물시장에서는 선물 가격이 기초자산의 현물 가격과 지나치게 괴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8시간마다 매수 포지션과 매도 포지션 간에 주고받는 펀딩비다. 펀딩비는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높게 형성될 경우 매수 포지션 보유자가 매도 포지션 보유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반대로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낮게 형성될 경우 매도 포지션 보유자가 매수 포지션 보유자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선물 가격과 현물 가격 간의 괴리를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한편 미청산 약정은 아직 청산되지 않고 시장에 남아 있는 계약의 총량을 의미하며, 이는 해당 시점에 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의 규모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이러한 두 지표의 변화 추이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와 포지션 쏠림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시초가 상승 갭 예측: 만약 밤사이 개별 종목 선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펀딩비가 높은 양수(+) 값을 유지하고 미청산 약정이 크게 늘었다면, 이는 글로벌 투기 세력이 밤새 강력한 상승(Long) 포지션을 구축했다는 뜻이다. 다음날 한국 증시 개장 시 해당 종목의 시초가가 강한 갭 상승으로 출발할 확률이 극도로 높아진다.

    시초가 하락 갭 예측: 반대로 주말 사이 악재가 터져 펀딩비가 음수(-)로 깊어지고 선물 매도(Short) 포지션이 누적되었다면, 월요일 아침 시초가 갭 하락과 함께 패닉 셀링(Panic Selling)이 유도될 것임을 선제적으로 경고하는 강력한 ‘적색경보’가 된다.

    멈추지 않는 디지털 금융 영토, 통찰로 무장하라

    우리 정부 역시 원화의 환전성과 자본시장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2024년 7월 외환시장 마감 시간을 새벽 2시로 대폭 연장한 데 이어, 오는 2026년 하반기에는 외환시장 24시간 전면 개방이라는 역사적인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제도권의 점진적인 개방을 추진하는 속도보다, 글로벌 디지털 금융 영토가 국경을 지우고 한국 자산을 파고드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파괴하며 돈의 흐름을 24시간 내내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이러한 대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액 자산가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명확하다. 변동성 60%를 넘나드는 초고배율 역외 투기판에 직접 뛰어들어 자산을 청산당하는 ‘불나방’이 될 것이 아니라, 밤새 링 밖에서 형성되는 정교한 디지털 신호를 예리하게 분석하여 아침 9시 내 영토 안의 전통 포트폴리오를 단단하게 방어하고 당당하게 자산을 운용하는 ‘나침반 리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투명한 질서 위에서 시장을 한 발짝 앞서 내다보는 통찰력이야말로, 24시간 분절화되는 글로벌 금융 시대에 부를 지키고 늘려가는 가장 강력한 방어 전략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정지열의 스테이블코인 돌아보기’는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사진설명

    정지열 한양대 교수

    한국자금세탁방지연구소 소장이자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자금세탁방지(AML)와 금융범죄예방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학문적 연구와 함께 금융당국, 국제기구, 민간 금융기관 등에 자문을 하며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