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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쓰레기 기억 상실증
입력 : 2026.03.25 09: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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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일종의 제국주의다. 지방을 식민지 삼아 그 이익을 부풀리고 번영을 누린다. 좋고 건강한 것은 서울로 몰리고, 질 떨어지고 약해진 것은 밀려나 지방으로 배출된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리고, 나이들어 효용을 다하면 지방으로 흩어진다. 2024년 서울시 인구는 4만4692명 줄었으나, 20~30대 청년 인구는 오히려 증가했다. 지방 청년들은 ‘홀로’ 서울로 와서 일자리를 구해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나이 들어 경제적으로 쓸모없어지면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물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서울은 지방의 모든 자원을 빨아들여 사용한 후, 용도가 다하면 쓰레기로 내보낸다. 서울은 거대한 쓰레기 생산 공장이다. 2026년 1월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그 실상이 분명해졌다. 서울 쓰레기가 소각장을 찾아서 경기, 충청, 강원 등 전국으로 흘러나가고, 이에 따른 지방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 사는 사람들은 무감각하다. 20ℓ에 490원만 내면, 무한히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듯 착각한다.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쓰레기 문제를 잊고 무시하는 집단적 ‘쓰레기 기억상실증’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잔여』(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리베카 슈나이더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소위 새로운 것이란 본질적으로 습관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관심은 유한하고 주어진 공간은 고갈되기에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이 새로운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낡은 걸 가리고 치우는 습관을 퍼뜨린다. 뒤처진 것, 한물간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상품들 옆에 나란히, 여전히, 그대로 잡동사니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직 멀쩡한, 그러나 뒤처진 것들을 쓰레기로 만들어 어딘가로 옮기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땅에 묻어 가리고, 지방으로 보내 감추며, 해외로 내보내서 기억 밖으로 내몬다.
이 책에서 세계적 미디어 고고학자인 유시 파리카는 자본주의가 폐기 습관을 만들고 지속한다고 말한다. 생활 쓰레기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일회용 플라스틱은 그 선명한 증거다. 플라스틱 제품은 얼마든지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대개 한 번 쓰고 버리도록 약하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소비하도록 권장된다. 넘쳐나는 과잉 생산 능력 때문이다. 플라스틱 제품은 오직 폐기되기 위해 생산된다.
다른 상품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휴대전화는 세 해만 지나면 저절로 작동을 멈추도록 디자인된다. 면도날은 한번만 쓰면 크게 물러지도록 생산된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한 번 구매하면, 죽을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게 구독제로 바뀌었다. 구독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일회용품, 한 해만 지나면 저절로 쓰레기로 변하는 물건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컴퓨터 내부의 저장공간을 차지하지만,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이 쓰레기를 쉽게 처리하게 하는 인프라 구축은 자본주의의 핵심 조건이다. 『쓰레기 기억상실증』(역사공간)에서 임태훈 성균관대 교수는 쓰레기를 중심으로 현대 한국 사회를 다시 읽는다. 그는 잔여(remains)에, 즉 한국 사회가 서둘러 폐기한 후 어딘가에 묻어버린 것에 주목한다. 쓰레기 처리란 손 때 묻은 물건들과 함께 형성된 개인적·사회적 기억을 폐기하는 행위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이 생산한 쓰레기를 애써 외면하고 쉽게 잊도록 만든다. 임 교수는 이런 삶의 태도를 ‘쓰레기 기억상실증’이라고 부른다. 쓰레기를 말한다는 것은 이에 대항해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책은 문학 작품을 재료 삼아 1978년부터 2025년까지 쓰레기 매립지 시대의 한국 사회를 다룬다. 이 기간의 쓰레기 처리 방식은 직매립이었다. 서울 등 도시에서 대량 생산된 쓰레기를 실어 날라 땅에 묻고 쌓아 올리면서 전국 곳곳에 거대한 쓰레기 산이 형성된 시기다.
문학 작품엔 쓰레기봉투에 담아 우리가 폐기하고 묻어 버린 삶의 흔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하성란의 「곰팡이 꽃」을 보자.
“남자는 욕조 안에 흐트러진 쓰레기를 다시 봉투 안에 쓸어 담는다. 매듭을 묶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시 일층으로 내려가 쓰레기통 안에 집어넣는다. 그 여자의 쓰레기를 볼 수만 있었다면 남자는 그 여자의 성격에 대해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까닭 없이 코발트색에 약하고 입심 좋고 단정한 옷차림의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을 알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품은 1995년 중반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된 직후, 서울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남자는 돈을 아끼려고, 이웃의 쓰레기봉투를 집으로 가지고 와 자기 쓰레기와 합쳐 버린다. 타인의 쓰레기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내밀한 삶을 살피는 것과 같다. 그건 그가 가장 감추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임태훈은 말한다. “종량제 봉투는 불편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진 내용을 망각의 차원으로 이전하는 사회 기술적 매개체다.” 사람들은 약간의 돈을 치르고, 문밖에 내놓음으로써 사물들과 맺었던 한때의 관계를, 그 불편한 기억을 쉽게 단절한다. 타인의 쓰레기봉투를 연다는 것은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과 같다.
그 엿보기 행위는 남자에게 되돌아온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그가 버린 쓰레기를 추적해 남자를 찾아온다. 그 안에 남자가 사모했던 여자의 결혼을 말리는 편지, 가장 감추고 싶었던 기억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치웠다고 쓰레기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건 언젠가 불현듯, 악몽처럼 우리 곁에 돌아온다. 마치 공기 중에 내버린 이산화탄소가 기후 재앙으로 돌아오듯이 말이다.
한때 서울시 쓰레기를 매립한 난지도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간 운영되었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으로 불리는 그 아래엔 여전히 1억t 이상의 쓰레기가 폭탄처럼 묻혀 있다. 정연희의 『난지도』,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등은 그 쓰레기가 압축 성장 시대의 우리 삶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이 책은 가축 전염병 탓에 살처분해 땅에 묻은 동물, 사회 곳곳에서 위험한 폐기물 쓰레기를 처리하다 죽어간 노동자들, 세월호 등 비극의 현장이 담긴 잔여들, 고독사한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작업 등 문학의 기억을 통해 우리가 파묻었던 기억을 되파낸다. 저자는 말한다. “한 사회가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가치 체계를 반영한다.”
경제 논리에 취해 쉽게 물건을 버리고 잊어버리는 세계는 인간마저 그와 똑같이 취급한다. 일회용 생산-소비 방식이 널리 퍼진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인턴이 되고, 비정규직이 되며, 상시 구조조정의 대상에 오른다. 하나의 일에 평생 몰두하면서 숙련성을 높여가는 예술적 장인 정신은 파괴된다. 인간의 유연한 적응력이 칭송되고, 새로움에 관한 집착이 일상화한다.
그러나 일은 곧 삶이기도 하다. 이 일을 포기하고 저 일로 옮겨가는 순간, 인간은 과거와 단절되고, 인간관계를 잃으며, 그에 따라서 자아도 약해진다. 평생 해오던 일이 한순간 쓰레기가 되는 건 얼마나 처참한가. 쓰레기를 무겁게 여기고 이를 성찰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일과 같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