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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49) PTA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vs 토머스 핀천 <바인랜드>
입력 : 2026.01.26 10: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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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가 자라지 않는 땅에서
개인적으로 2025년에 개봉했던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끝내 심장에 오래 남은 작품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하 <원 배틀>로 표기)였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토머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가 원작인 이 영화는, 폴 토머스 앤더슨(PTA) 감독과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조우만으로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025년 12월 중순으로 <원 배틀>은 2026년 1월 중순 발표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9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3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도 본상 수상이 유력합니다. 하지만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원 배틀>이 남긴 잔상은 참으로 오래 지속될 것만 같습니다. 600쪽이 넘는 원작 <바인랜드>와 영화 <원 배틀>을 살펴봤습니다.
혁명단체 ‘프렌치75’의 선두에 섰던 폭탄 전문가 밥 퍼거슨은 16년 전의 전투를 잊고 신분을 감춘 채 외딴곳에 은둔하며 10대 딸 윌라와 살아갑니다. 아내 퍼피디아는 윌라가 아기였던 시절 집을 나가버렸고, 지금은 행방이 묘연합니다. 오래전 ‘혁명가’ 퍼피디아를 뒤쫓다가 퍼피디아와 불륜관계를 맺은 군인 스티븐 록조 소령은, 퍼피디아의 딸 윌라가 밥의 딸이 아니라 자신의 딸이라는 봉인이 풀리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윌라를 납치합니다. 딸의 실종 소식을 들은 밥은 록조를 추격합니다. <원 배틀>의 밥 퍼거슨, 윌라, 퍼피디아, 스티븐 록조는 원작 <바인랜드>에선 각각 조이드 휠러, 프레리, 프레네시, 브록 본드란 이름으로 등장함을 기억하시길 바라며 글을 엽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TV와 방전된 휴대전화우선, 영화와 소설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매체’입니다. <바인랜드>에서 지속 등장하는 매체는 텔레비전이었습니다. 젊은 혁명가들이 활동했던 1960년대는 분명하게도 ‘TV의 시대’였고, 프레네시(영화의 퍼피디아)는 TV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원작자 핀천은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프레네시가 연방검찰 브록 본드(영화의 스티븐 록조)와 성관계를 맺는 이유도 매체의 영향을 받았음이 소설에 기술됩니다.
“프레네시는 엄격한 페미니스트가 뭐라고 지껄이든, 세상에는 자기처럼 남자들의 제복 입은 모습을 미친 듯이 좋아하고, 프리웨이에서 일어나는 고속도로 순찰대와의 환상적인 만남을 마음속에 그리거나 심지어는, 자신이 지금 그럴 생각이지만, 텔레비전에서 재방송되는 폰치와 존을 보며 거리낌 없이 자위를 즐기는 여자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140쪽)
프레네시는 소녀 시절 TV에 나오는 ‘제복 입은 남성’에 매료된 소녀였고, 훗날 브록 본드와 만났을 때 부정을 저지르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원 배틀>에서 퍼피디아의 불륜이 그저 타고난 외도 기질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과 상이하지요.) 반면 <원 배틀>에 나오는 주요 매체는 TV가아닌 휴대전화입니다. 시대적 배경이 2000년대로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휴대전화는 TV가 <바인랜드>에서 차지하던 은유적 위치를 영화적으로 바꿔내고 있습니다. 영화 주인공 밥은 이동 중에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의 충전기를 지속적으로 찾는데, 아무리 충전하려 해도 충전되지 않는 휴대전화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딸 윌라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
TV는 저항의 기억을 무력화하는 장치입니다. 과거의 혁명 언어는 TV 속에서 그 혁명을 ‘소비’하도록 하며, 그 과정에서 혁명가들의 ‘행동’은 ‘실천’되지 못했습니다. <바인랜드>에서 중요한 주제인 미디어 비판은 <원 배틀>에서 주인공 밥이 전설적인 영화 <알제리 전투>(1966)를 보는 장면으로만 변주돼 압축적으로 나오는데, 밥의 긴장감은 이렇듯 어느덧 나른해져서 그는 혁명의 중심에서 벗어나 일상의 가장자리에 살고 있고, 이로써 밥은 전투의 당사자가 아닌, 전투극의 ‘소비자’로 전락해 있습니다. 영화 속 방전된 휴대전화는 저항 동력이 소진돼버린 밥의 심리상태를 반영합니다.
<바인랜드>의 TV가 집단적 상상력을 일원화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적인 은유를 차지한다면(인간 사유를 조종한다는 의미에서), <원 배틀>의 휴대전화는 연결에의 강박을 느끼게 하면서도 접속이 불가능해진 밥의 불가능성을 드러냅니다. 방전된 휴대전화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밥의 저항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와 단절돼 있다.’
‘이사야서 2:4’<원 배틀>과 <바인랜드>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등장인물의 이름들입니다. 우선 소설 <바인랜드> 초반부엔 프레리의 한 친구에 대한 조이드와 프레리의 대화가 서술됩니다. 프레리의 친구 이름은 ‘아이재이아 투 포(Isaiah Two-Four)’인데, 저 기이한 이름을 두고 조이드가 그건 도대체 무슨 이름이냐고 비웃자 딸 프레리가 답합니다. “아빠 친구인 걔네 히피족 부모가 1967년에 전쟁을 평화로 바꾸고, 창을 두드려서 가지치기용 낫이나 다른 바보같은 평화운동가의 물건으로 만드는 것에 관한 구절이라며 남겨주셨대.”(30쪽)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를 확인하려면 성경 구절을 되짚어야 합니다. ‘아이재아아’는 이사야서를, ‘투 포’는 2장 4절을 뜻하는데 성경 원문을 찾아보니 윌라의 말이 이해됩니다. ‘그가 여러 나라 사이에 판결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단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즉, 전쟁과 폭력과 갈등이 사라지고 평화가 도래한 세상을 말하는 성경 구절이 이사야서 2장 4절입니다. 아이재이아 투 포의 부모는 전쟁이 사라진 평화의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던 바람을 이름에 담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이재이아 투 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전쟁은 종결되지 않았고, 되려 더 첨예한 전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핀천식 아이러니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지요.
아이재이아 투 포. 이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핀천 연구자들에 따르면, 핀천은 등장인물의 이름에 자주 ‘장난’을 쳤습니다. 외국 논문을 찾아보니 핀천의 <바인랜드> 이름 작법은 전부 농담투성이였습니다.
<바인랜드> 주인공 조이드 휠러(Zoyd Wheeler)는 어원적으로 ‘Avoid’와, 제자리를 순환하는 바퀴, 즉 떠돌이를 뜻하는 ‘Wheeler’의 합성어입니다. 조이드 휠러는 ‘그저 살아남았지만 제자리를 맴돌 뿐인’ 인간의 다른 말이 되지요. 조이드 휠러의 아내 프레네시(Fre… nesi)의 이름 어원은 광기 혹은 흥분을 뜻하는 스페인어이며, 딸 프레리(Prairie)는 평야나 초원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합니다. ‘빈 땅’에는 아무런 과거도, 미래도 적혀 있지 않았으나 그 땅 위에 전쟁과 평화 중 어떤 ‘서사’가 적힐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상태입니다. 프레리는 바로 그 점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원 배틀>의 작명법까지도 살펴볼까요. <바인랜드>의 조이드 휠러는 <원 배틀>에선 밥 퍼거슨(Bob Ferguson)으로 나오는데, ‘Bob’은 가장 평범한 남성 이름이고 ‘Ferguson’은 평범한 아버지를 뜻하니, 이는 밥 퍼거슨이 더 이상 과거의 특별한 혁명가가 아니라 무력한 일반인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밥의 딸 윌라(Willa)는 영단어 ‘Will(의지)’과 유관해 보이는데 <원 배틀>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가 물려준 투쟁적 상황에서 스스로 결단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세대가 딸 윌라의 이름에 투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눈여겨볼 만한 이름은, 밥의 아내이자 윌라의 엄마인 퍼피디아(Perfidia)입니다. 그녀 이름은 그 자체로 ‘배반’을 뜻하는 영단어 ‘perfidy’의 변형입니다. 퍼피디아는 자신이 소속됐던 공동체를 배반하고(제1차 배반), 심지어 자신을 딸과 남편을 버리고 도주하며(제2차 배반). 결국 자신을 흠모했던 스티븐 록조까지도 배신합니다(제3차 배반). 퍼피디아는 윤리와 균열, 질서의 붕괴를 자신의 이름으로도 증명합니다.
무전기에서 들려온 목소리
<원 배틀>의 후반부는 록조가 자신의 흠결(?)을 지우기 위해 윌라를 납치하고, 이후 록조를 밥이 추격하는 장면으로 채워집니다. 아마도 2025년 최고의 장면으로 기억될 마지막 도로 추격전은 <원 배틀>에만 등장하며 <바인랜드>엔 이 장면이 없습니다.
사실 <바인랜드>에선 프레리(영화의 윌라)의 납치극 자체가 나오지 않으며, 프레리와 브록 본드(영화의 스티븐 록조)가 대면하긴 하지만 그저 자신의 신분(친부)을 알리는 정도로만 전개됩니다. “그런데 프레리, 내가 네 아빠야. 조이드 휠러가 아니라, 내가. 너의 진짜 아빠야.”(600쪽) 따라서 <바인랜드>는 급진적으로 세상을 뒤바꾸고자 했던 이들의 후일담 서사이며, 영화 제목처럼 ‘전투 이후의 새로운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습니다.
<원 배틀>은 끝없는 싸움이 반복되는 세상을 탐구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일까요. <원 배틀>에서 윌라는 오클랜드의 위스키 사워란 곳으로부터 “지금 싸우고 있다”는 무전을 받습니다. 무전을 들은 윌라는 차량으로 ‘3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그곳까지 직접 향합니다. 아빠 밥과 엄마 퍼피디아의 전투는 폭력으로 점철된 급진운동이었고 이에 대립하는 진압자 록조의 방식 역시 위선적이었는데, 윌라로 상징되는 다음 세대의 싸움은 부모 쪽도 록조 쪽도 아닌,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싸움입니다. PTA 감독은 무전을 받고 오클랜드로 떠나는 윌라와, 그런 딸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이해해주는 아버지 밥의 대화를 마지막 장면에 짧게 담아냈습니다. 따라서 영화는 ‘다음 세대의 싸움은 과연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진행될 것인가’를 담담하게 묻습니다. 무기 없이 진행되는 평화의 싸움. 그것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저 마지막 장면과 제목으로 상징화합니다.
소설 제목인 ‘바인랜드(Vineland)’는 포도나무(vine)의 땅을 의미합니다. 포도나무의 땅을 곧 와인을 의미하고, 이는 풍요와 약속의 땅, 유토피아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바인랜드>엔 유토피아가 없었으며, 한때 유토피아를 갈망했던 나약한 인간들만 등장합니다. 반면 <원 배틀>의 윌라가 안온해 보이지만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은 치열한 전투를 선택한다는 점은 <바인랜드>와 거리를 둔, 주제적 변주를 강화합니다.
[김유태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