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권의 뒤땅 담화] 골프 매너 부실했다가 비즈니스 망쳐

    입력 : 2025.09.10 15:46:05

  • “티오프 시간에는 비가 그친다는 예보를 알려줬는데도 골프를 진행해야 하느냐고 아침부터 전화로 계속 다그쳐 아주 불편했어요.”

    종종 골프를 함께 하는 70대 중견기업 회장이 우중 라운드 진행을 놓고 속 상한 일화를 털어놓았다. 꽤 지났음에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그는 잘 아는 기업인들로 두 팀을 구성해 사건 한 달 전에 포천힐마루CC 12시 대로 예약했다. 그것도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였다. 당일 장마 중이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래도 기상예보로는 오후부터 그쳐 출정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골프장에서 제법 먼 거리에 사는 후배 기업인이 전화로 비가 많이 오는데 괜찮겠느냐고 말했다. 단정적인 화법은 아니지만 실제론 강행하고 싶지 않다는 다분히 부정적인 어조였다.

    여기에 또 다른 멤버가 가세해 몹시 난감했다. 일기예보로는 티오프 시간에는 비가 그친다는 말만 반복했다. 장마 날씨는 예측하지 못한다며 둘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은 카톡으로 중간에서 눈치만 보고 입을 다물었다. 결국 소수 강경파에 밀려 골프를 취소했다. 이후 비가 뜸해지더니 12시부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날이 화창해졌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골프에 더할 수 없는 여건이 조성됐다. “실은 뭔가 다른 일을 하려고 비를 빌미로 내세운 것 같아요. 의도는 숨기고 딴 핑계만 대는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죠.” 더구나 한 명은 그의 회사에 포장 관련 납품까지 하는 터여서 무례하다는 생각도 치밀었다. 이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젠 거래처를 바꿀 생각이라며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런 매너를 가진 사람과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가져가면 후환을 초래한다며 단호했다. 당사자는 왜 거래가 끊기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장본인은 약속을 이중으로 잡아 놓고 조금이라도 불리한 여건이 만들어지길 기다렸다가 아침부터 내리는 비에 주목했을 수 있다. 옳거니 싶어 빠져나갈 핑계를 찾은 것이다.

    양다리 걸쳤다가 사업을 날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골프 매너 문제로 당사자 평판은 물론 비즈니스도 망치는 사례다. 누구라도 이런 고약한 심보를 고치지 않으면 결국 외톨이로 남는다. 아무리 돈이 많고 골프를 좋아해도 몇 번 누적되면 멤버들이 떨어져 나간다. 치고 싶어도 함께 할 사람이 없다. 느림보(슬로) 골퍼의 종말도 외톨이다. 함께 하는 느린 리듬에 지쳐버려 동반자 샷마저 무너진다.

    필드에서 거북이 진행으로 손님이 다 끊기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연습 스윙을 세 번 이상 하거나 클럽 전달을 전적으로 캐디에게 의존하면 절대 평균 속도로 진행하지 못한다. 잠을 자는지 드라이버를 티에 갖다 대고는 무한정 부동자세를 취한다. 그의 백 스윙을 무한정 기다리다 결국 동반자 멘털만 무너진다.

    사진설명

    티샷을 날린 후 카트를 타고 가다 공과 라인 선상에서 내려 무장해제 상태로 페어웨이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공 앞에서 캐디에게 소리질러 거리를 물어보고 클럽을 요구한다. 당연히 진행 시간이 길어진다.

    카트에서 대략 거리를 물어본 다음 클럽 두 개를 가져가서 거리측정기나 캐디에게 다시 확인하면 서로 오가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없앤다.

    슬로 플레이 주범이 자기 공 쪽으로 가서 준비 동작을 취하는 대신 동반자 공을 찾아 준답시고 시간을 날려도 대책이 없다. 그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카트에서 내려 퍼터를 들고 그린에 올라서는 순간부터 라인을 읽어야 하는데도 딴 곳에서 넋을 놓는다. 멍하니 서 있다가 자기 순서가 와서야 퍼터를 받아 갑자기 이리저리 다니면서 라인을 살핀다.

    복장 터지는 순간이다. 그린에서 진행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움직인다. 동반자 리듬을 끊어 스코어에 절대적인 악영향을 불러온다. “분명히 본인은 느림보 진행을 모를 거야. 말해줘야 할지 말지 고민되는데 상대 루틴을 바꿀 정도로 민감한 부분이어서 망설여져.” 얼마전 슬로 플레이어를 두고 동반자와 둘이 카트에서 나눈 대화이다. 평소 인간관계도 좋은데 골프장에서만 애물 취급을 당한다.

    “외적 요소를 가능하면 차단하고 자기 경기에만 성실히 임해야죠. 군 동작을 없애 깔끔하게 진행하면 하수라도 느림보 고수보다 훨씬 인기 좋습니다.”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의 말이다. 함께 골프를 하자는 요청이 확연히 줄면 자신이 느림보인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돈 문제도 골프 멤버가 깨지는 대표적인 사유이다. 골프 전후 식사비, 라운드 도중 식음료 비용, 그린피 계산 문제 때문이다. 갈등 누적으로 결국 팀을 해체하거나 불만 있는 멤버가 빠져나간다. 특정 멤버를 빼고 몰래 따로 팀도 만든다. 헤쳐 모인다.

    식사를 각자 해결하기로 했는데 불가피하게 클럽하우스에서 해결한다면 본인 몫이다. 그늘집에 들를 때마다 습관적으로 음료나 과자를 집어들면 그 또한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커피나 맥주 한잔에 만원이다.

    조승호 대주회계법인 공인회계사는 “특별한 상황을 빼고는 공평하게 경비를 나눠야 현명하다”며 “정확하게 룰을 정해 놓아야 편안하게 라운드를 즐긴다”고 강조한다.

    내기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패자에게는 어느 정도 돌려주는 게 현명하다. 그래야 동반자로 오래 남는다.

    “직장 후배하고 골프를 했는데 18홀 내내 호주머니가 털려 완전 멘털붕괴됐어요. 오랜만에 선배 체면에 타수 조정하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끝까지 끌려 다녔어요.”

    경기 후에 잃은 돈을 아예 돌려주지 않고 캐디에게 선심을 팍팍 쓰는 그의 행위가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고 기억했다. 트라우마가 남아 그 사람과 골프는 그 날로 끝났다.

    회원권 보유자가 동반자를 초청하면 전체 그린피에서 n분의 1로 나누는 게 배려다. 혼자만 회원 대우 가격으로 처리하면 곤란하다. 그린피 관계를 사전에 동반자에게 공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카풀도 자칫 동반자 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 자기 차는 골프백이 두 개밖에 안 들어간다며 늘 남의 차에 얹혀 가면 밉상이다. 한 두 번은 모르지만 그 경우에도 식사비 정도는 내는 게 좋다. 캐디피나 스킨스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배려도 현명하다.

    몇 백억원대 부자도 단돈 만원에 서운하고 분노하는 게 골프다. 평소 씀씀이가 큰 부자도 호구로 비치면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어느 순간 골프를 함께 하자는 사람이 확 줄면 내가 골프 진상일 가능성이 높다. 몸가짐에 신중하면서 늘 성찰해야 한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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