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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회 칼럼]오기의 유산
입력 : 2025.06.26 13: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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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일할 사람 뽑으려면
흠보다 실력에 초점 맞추고
정책 철학·실행력 검증해야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전국시대 명장으로 오자병법을 쓴 오기(吳起)만큼 극단적 평가를 받은 인물도 드물다. 손자병법의 손무(孫武)와 쌍벽을 이루는 병법가였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늘 따라붙는 ‘패륜’ 오명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 장례식에 불참해 불효의 상징이 되었고, 야망 때문에 아내를 살해한 비정의 아이콘으로 전락했다. 사실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유가적 시각이 지배하던 후대에 냉혹한 인물로 낙인 찍혀 평가절하된 측면이 크다.
오기의 전장을 꿰뚫는 통찰력과 용병술, 수많은 승전 기록은 그가 실전에서 손무를 뛰어넘는 전술가였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론뿐 아니라 실제 전장에서 특별한 재능을 발휘했다. 귀족의 특권을 허물고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자며 독려해 백전백승했다. 탁월한 군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차례 정치에서 쫓겨났고, 끝내 정적에게 죽임을 당했다. 반대 세력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했던 탓이 크지 않나 싶다.
오기는 말이 아닌 성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인간적인 온기나 정치적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의 비정함은 실력을 두려워한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낸 서사였는지도 모른다. 오기의 정치적 실패는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그런 인물을 받아들일 그릇이 없었던 사회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과정만 봐도 그렇다. 능력을 보겠다고 하면서도 개인사에 흠결이 드러나면 단번에 낙마시킨다. 청문회는 정책 역량보다 과거의 실수나 가족사를 들추는 데 집중된다. 초점은 ‘일할 자격’보다 ‘털어낼 먼지’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유능한 인물조차 부적격자로 몰리고, 사회에 기여할 기회는 사라진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정무 감각’이나 ‘국정 수행 능력’은 뒷전으로 밀리고, 무난한 인물들로 고위직이 채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는 정책 혼선과 소통 부재로 이어진다. 이쯤에서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폭넓게 인재를 등용해 국정을 안정시켰던 DJ정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DJ는 관료 출신 전문가와 실용적 리더를 두루 기용해 IMF 외환위기를 빠르게 수습했다. 그 때 중시한 것은 완벽한 도덕성이 아니었다. 위기를 돌파할 실행력과 책임감이었다.
정치는 성자의 게임이 아니다. 모든 고위 공직자에게 도덕적 결벽을 요구하고 한점 흠결 없이 통과하길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물론 흠을 감싸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흠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낼 수 있느냐다. 지금은 선의만 가진 무능보다, 다소 흠이 있더라도 유능한 인물이 더 절실한 시기다.
그런 인재를 발탁하려면 청문회부터 달라져야 한다. 지금처럼 ‘신상털이 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정책 철학, 실행 능력, 문제 해결력 같은 핵심 자질을 검증하는 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젊은 시절의 실수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오기의 정치적 실패는 ‘지나치게 유능하고 냉철한 자의 비극’이었다. 그 비극을 오늘 되풀이할 까닭이 없다. 결과로 실력을 증명할 만한 인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2000여 년 전 오기의 유산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