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운명의 팡파르와 다모클레스의 칼, 차이콥스키가 연출한 운명의 드라마
입력 : 2022.01.27 15:09:04
어느덧 3년 차로 접어든 ‘코로나 시대’의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다. ‘5차 대유행’의 와중에 수은주는 수시로 영하 10° 아래로 떨어지고, 심심찮게 마주치곤 하는 폭설도 조바심을 부추긴다. 게다가 너무 어이없고 안타까운 사고 소식들까지…. 부디 이 모든 것이 마지막 고비의 일환이기를 바라면서 이 겨울에 어울리는 음악을 꺼내본다.
개인적으로 올해 처음 관람한 공연은 지난 1월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지휘자 성시연의 지휘로 진행된 이 음악회의 프로그램은 러시아 음악 일색이었다. 먼저 1부에서는 ‘러시아 근대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미하일 글린카의 박진감 넘치는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이 서두를 장식했고, 선우예권이 협연한 프로코피예프의 강렬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분위기를 한층 달궈놓았다. 그리고 2부에서는 차이콥스키의 의미심장한 걸작 <교향곡 제4번 f단조>가 연주되어 시련과 투쟁, 절망과 희망이 교차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했다.
▶패배를 모르는 압도적인 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인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는 여섯 개의 번호가 붙은 교향곡과 한 개의 ‘표제 교향곡’을 포함하여 모두 일곱 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교향곡 제4번>은 그중에서 가장 격정적이고 변화무쌍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 특유의 정서적이고 매혹적인 선율과 교묘하고 집요한 전개 수법, 다채로운 관현악 기법 등이 한데 어우러져 사뭇 강렬한 감흥을 자아내는데, 표면상으로는 (음악 외적 요소와는 무관한) 절대음악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분히 (음악 외적 내용을 표현한) 표제음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작곡가가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구절절 설명한 바 있다.
이 교향곡은 위협적인 금관의 팡파르로 출발하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운명’을 나타내는 동기(모티프)이다.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참고하기도 했던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고안한 ‘운명의 모티프’를 ‘다모클레스의 칼’에 비유했다. ‘다모클레스의 칼’은 고대 그리스의 설화에서 유래한 서양 속담으로 흔히 권력의 무상함과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서 인용되곤 한다. 다모클레스는 기원전 4세기경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신하였는데, 그는 늘 왕의 권세를 부러워하며 아첨하고 탐냈다. 하루는 왕이 호화로운 연회를 베풀면서 그에게 한 번 왕좌에 앉아 보라고 제안했다. 기꺼이 왕좌에 오른 다모클레스가 그 기분에 한껏 도취되어 있을 즈음, 왕은 그에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라고 말했다. 자신의 머리 위를 올려다본 다모클레스는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칼이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혼비백산했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실상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칼날 아래에서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권력자의 운명 아니던가.
차이콥스키가 ‘다모클레스의 칼’을 거론한 이유는 그 함의가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운명은 행복과 평화를 갈망하는 한 인간의 소망을 무자비하게 가로막고 “언제나 그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영혼에 끊임없이 독을 붓는”, 결코 패배할 줄 모르는 압도적인 힘이다. 그 힘은 인간에게 불행과 절망을 가져다주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달콤한 꿈속에서나 위안을 찾을 도리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은 괴로운 현실과 행복한 꿈의 교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일견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입장에서는 그런 확대 해석을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향곡에 투영된 인생 역정
<교향곡 제4번>은 차이콥스키의 인생과 창작 여정에서 중대한 전환점에 등장했다. 그가 이 곡에 착수한 것은 그의 나이 삼십대 후반에 이른 1877년의 일이었는데, 그 해에 그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 두 가지가 잇따라 일어났다. 먼저 ‘은밀한 후원자’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과 교류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매년 거액의 후원금을 보내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직접 대면은 피해야 한다는 특이한 조건을 걸었다. 어쨌든 폰 메크 부인 덕분에 차이콥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의 교수 업무에 얽매이지 않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음악원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가 열렬하고 집요한 구애를 해왔고, 그는 못 이긴 척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일정 부분 자신의 동성애 기질을 은폐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섣부른 결혼은 이내 파국으로 치달았고, 번민하던 차이콥스키는 급기야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른다. 자살은 미수에 그쳤지만 그는 결국 아내로부터 도망쳐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로 떠돌았고 여행지에서 작곡 중이던 교향곡을 마무리 지었다. 나중에 그는 제자 타네예프에게 “이 교향곡의 모든 마디들에는 내가 진정으로 느낀 것이, 내 마음의 감춰진 심연이 반영되어 있다”고 고백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제4번>의 네 개 악장에 운명에 맞서는 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투영했다. 앞서 언급한 ‘운명의 팡파르’로 출발하는 제1악장의 기저에는 ‘우리의 인생은 괴로운 현실과 행복한 몽상의 교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암시가 깔려있다. 운명적 고난과 시련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처절한 투쟁상이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흐름 속에 펼쳐지지만, 그 투쟁은 마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어둡고 답답하다. 느린 제2악장은 ‘일상에 지친 사람이 밤중에 홀로 방안에 앉아 있을 때 그를 에워싸는 우울한 감정’을 나타낸다. 느릿한 흐름 위로 오보에 솔로가 구슬픈 선율을 떠올리며 절망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비애를 대변한다. 경쾌한 제3악장은 고통과 비애에 지친 인간이 ‘술에 취했을 때 어지러이 떠오르는 갖가지 공상’을 나타낸다. 현악기가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뜨는 주법)로 빚어내는 리드미컬한 음률과 멀리서 들려오는 군악대의 취주악 소리가 사뭇 흥겹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질없는 환영에 취한 듯 허무한 기분도 감돈다. 제4악장에서는 투쟁으로 복귀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는 한편 ‘민중의 축제’의 떠들썩한 장면이 부각된다.
사실 결혼의 실패만 제외하면, 당시 차이콥스키의 삶은 더없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고 폰 메크 부인의 후원 덕택에 생활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랬기에 그는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과감히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했던 듯하다. 비록 내면의 위기는 아직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었지만, 대신 그는 외부의 환희에 기대어 다시금 희망을 꿈꾸고자 했던 것이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언제든 다시 엄습할 수 있는 ‘운명’에 대한 경계와 경고를 잊지 않았다. 한참을 신명나게 내달리던 축전적 피날레의 흐름이 중단되고 돌연 ‘운명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그 대목은 우리도 명심해야 하리라.